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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7. 2023

24화. 조선왕실의 내관과 김치볶음밥

조선 분식집3

여기... 유난히 고민이 많은 한 사람이 있다.

구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오직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소문난 효자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든 가난을 벗어나고자 정말 어렵게 줄을 대어 들어간 곳이 바로 궁!


궁의 생활은 꽤나 고되었지만 마음이 편했고, 무엇보다 수입이 좋아서 그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인생에 장성대군이 꼬이기 전까지는...


원래 장성대군은 그가 쳐다보기도 힘든 고귀한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인품도 훌륭하고, 용모도 출중하였던 데다...

신하들에게도 신분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잘해주는 장성대군이었기에, 구길은 내심 그를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나 고결하고 훌륭한 대군마마일진대... 곁에서 직접 모시고 보니,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아니! 정말 이 분이 내가 존경해 마지않던 그 대군마마가 맞는 거야?'


세상에 이렇게 자유분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성격도 제 멋대로인 데다가... 장난은 또 얼마나 좋아하며... 게다가 여인은 얼마나 밝히는지...


'하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구길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되고 힘들다.

틈만 나면 자리를 비우는 대군마마를 찾아 헤매는 것도 너무 힘들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해야 하는 거짓말도 너무 힘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필을 하지 못했다고 윗 분들에게 깨지는 것도 너무 힘들다.


'에휴...'


대체 왜 이 대군마마는 그를 이다지도 신임하는 것일까?

그가 구길을 신임하면 할수록 구길의 삶은 힘들어질 뿐이었다.


"휴우..."

"에휴휴휴..."


그는 오늘도 기방에서 놀고 있는 대군마마 때문에, 대낮부터 잔뜩 속을 태우고 있었다.


"아니... 대체 어쩌려고 그러실까...? 예전에도 기방을 밝히긴 하셨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대체 선미 그 아이가 뭐라고, 완전히 빠지셔서는... 이건 뭐 거의 매일 기방을 나가시니... 이미 궁내에서도 소문이 난듯한데... 대체 이일을 어찌해야 하나?"

"오늘은 또 얼마나 계시려고, 나를 굳이 내보내신 거야?"


구길은 조금 전, 아주 호탕하게 웃으며 자기를 기방 밖으로 내보내던 장성대군의 얼굴을 떠올렸다.


"뭐? 자기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놀다 오라고? 내가 그 속을 모를 줄 알아? 곁에 내가 있으면 신경 쓰이니까 그러시는 걸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신 건가? 흥!" 


그렇게 불만과 고민을 한가득 안고 걸어가던 그의 눈앞에 나타난 묘한 풍경!


"뭐... 뭐야? 이건? 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거야?"


그는 지나가던 행인을 잡고 이 기묘한 풍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보시오! 대체 저 줄은 무엇이오? 대체 저 앞에 뭐가 있기에 저리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그러자, 행인이 껄껄 웃으며 대답을 한다.


"놀랐나 보구려? 허허허! 내 이해하지! 나도 처음 볼 때 그랬으니까!"


마치 어리둥절해하는 구길을 놀리는 듯 여유를 부리는 행인의 모습.


"아이 답답해 죽겠네! 그러니까 이 양반아! 내가 묻고 있지 않소? 저 줄이 대체 무엇인지?" 


"허허~ 알겠소 알겠소. 내 대답해 주리다. 저건, 요즘 소문이 자자한 연아네 분식집에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오!"


"뭐요? 연아네... 분... 식?"


"그렇다니까! 연아네 분식집!"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에 구길은 더욱 답답해졌다.


"날 놀리는 것 아니오? 분...식집?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내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인듯한데..."


그러자, 행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한번 크게 웃으며 구길에게 말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오! 나도 그랬으니까! 내 여기서 아무리 설명을 해줘 봤자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니... 답은 직접 가서 찾아보는 게 좋을 거요!"


"직접 가서 찾아라...?"


"그러니까... 저 집에서 팔고 있는 분식을 직접 먹어보라는 소리요! 나도 아직 한 번밖에 안 먹어봤지만, 저 집의 분식은 정말 신기하고도 맛있는 음식이니까!" 


"그... 그렇소?"


구길은 여전히 행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의 말대로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래, 저리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어차피 대군마마도 금방은 안 끝나실 테니, 시간도 넉넉하겠다! 어디 그 분식이라고 하는 걸 한번 먹어볼까?'


구길은 행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길게 늘어선 줄의 제일 뒤로 가서 섰다.


'분식이라... 대체 어떤 음식일까? 어쩌다 내가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구나? 이것도 대군마마 덕분이려나? 거 참...'


어느새 그의 뒤를 따라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것 참 놀랍구나? 내가 줄을 선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렇게 사람들이...?'


그렇게 줄을 서 기다리며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게 된 구길.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분식집 담벼락에 가까워졌나 싶더니, 생전 처음 맡아보는 듯 생소하면서도 맛있는 음식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허... 이게 대체 무슨 냄새인가? 분명 내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인데, 어찌 이리 침이 고이고, 갑자기 허기가 질까?'


그리고, 마침내 그의 눈앞에 펼쳐진 분식집의 모습!

낮은 담장을 사이데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구길은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게 대체 무엇일까? 그냥 평범한 뚝배기로 보이는데... 빨간 밥?'

'저기 저 노란색의 음식은 또 무엇일까? 허허... 궁금하다 궁금해!'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마침내 구길도 분식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드디어 들어가는구먼! 이거, 밥 한 끼 먹자고 대체 얼마나 기다린 거야?'


그런 그를 진아가 웃으며 맞이한다.


"혼자 오셨어요? 그럼 저 쪽 평상에 앉으세요!"


"흠흠... 고맙구나!"

"그래... 내 이 집이 처음이라 그러는데...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내게 알려주겠니?"


"아... 처음이시구나... 그럼... 김치볶음밥을 드셔보세요!"


"김치... 볶음밥? 그게 무엇이냐?"


"예! 김치와 밥을 기름에 볶은밥입니다."


"기름에 볶은밥...이라고?"


"예! 정말 맛있으니 꼭 드셔 보세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밥이에요."


"그렇구나... 네가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그걸로 한 그릇 부탁하마!"


"예!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진아는 구길의 주문을 받아 부엌으로 향했다.


'허허... 어린아이인데도 참으로 예의가 바르고, 말하는 것도 무척이나 다부지구나!'


그런 진아의 뒷모습을 보며 구길은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구길에게 나온 김치볶음밥!

뚝배기에 담긴 빨간색의 볶음밥 위로 노랗고 하얀 반숙 계란프라이가 무척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비빔밥... 도 아닌 것이... 뭐지? 이 묘한 음식은?'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뿐인가?'


구길은 국밥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김치볶음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새콤한 김치의 향이 고소한 참기름 향과 섞여 그의 코를 자극했다.


'어찌 이리 코를 자극하는 냄새를 풍긴다는 말인가?'

'밥 위에 올려진 이 계란은 무엇일까? 어떻게 먹으라는 거지?'


그는 그의 옆에서 식사를 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중 단골인 듯 보이는 한 명이 아주 능숙하게 계란 노른자를 터트려 김치볶음밥을 먹는 것을 본 구길!


'오호... 저리 먹는 것이었구나?'


구길도 얼른 숟가락을 들어 계란프라이의 반을 갈라 노른자를 터트려보았다.

그러자 서서히 흘러내리며 빨간 김치볶음밥에 스며드는 노른자.

구길은 옆 사람이 하던 대로, 노른자가 스며든 김치볶음밥과 흰자를 함께 떠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뭐... 뭐지! 아니 무슨 밥이 이렇게 맛있어?"

"잘 익은 김치의 적당한 신맛과 칼칼한 매운맛이 밥과 이리 조화롭게 섞여 있다니!"

"게다가 이 계란이 가진 고소함이 김치의 강렬한 맛을 중화시키며 오히려 그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어!"


김치의 자극적인 매운맛! 게다가 라드유로 볶아 감칠맛을 잔뜩 머금은 김치볶음밥은,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던 구길에게는 마치 천상의 음식과도 같았다. 

그렇게 김치볶음밥의 맛에 감탄을 하던 그는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아니... 이리 김치를 넣어 만든 밥인데... 따로 김치를 반찬으로 내어주다니...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


김치볶음밥과 함께 반찬으로 나온 김치의 존재가 신경 쓰인 구길.

그는 김치볶음밥 위에 빨간 김치를 얹어 한번 먹어보았다.


"오오!"


시원한 신김치의 강렬한 맛이 김치볶음밥 자체가 지니고 있던 맛에 자극을 더해 밥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게다가 김치의 서걱거리는 식감은 김치볶음밥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맛있어! 맛있어!'

'심지어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맛있어지는구나!'


구길의 숟가락은 점점 더 빠르게 그릇과 그의 입 사이를 왕복하기 시작했다.


- 달그락 달그락 -


'헛! 벌써 끝났나?'


어느새 김치볶음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 구길.


"얘... 얘야! 여기 김치... 볶음밥 한 그릇 더 갖다 주겠니?"


"예! 알겠습니다."


고민 없이 한 그릇 더 추가 주문한 구길은 생각했다.


'그래...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힘내서 일해야겠지!'


**********


이날 조선의 한 분식집에서는, 조선 왕실을 위해 일하는 한 내관이 김치볶음밥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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