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간호사에서 통역사로의 직업 전환 만족감

by 통역하는 캡틴J

두 가지를 다 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이 두 직업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느 것이 더 만족감이 높은 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병동 간호사와 특수부서 간호사를 모두 해본 결과 간호사가 싫었던 이유는 이러하다.

우선 3교대부터 시작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D: Day E: Evening N: Night라고 할 때 내가 다닌 병원은 하나의 사이클이 사이클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다양한 형태였고 대략 한 달의 스케줄은 DDDEENNN 휴휴 DDDDD 휴휴 DEEENN 이런 식이었다. 휴식을 기준으로 세 번의 사이클이 있는 셈이었다. 각 사이클이 규칙적이지도 않고 매번 잠자는 시간이 바뀌어서 살도 빠지고 얼굴도 해골 같았다.


그러다가 운 좋게 갑자기 응급실로 빠져서 대리 선임을 하느라 주간에만 근무하게 되었는데 대신 응급실 전체 물품 카운팅/재산관리/인력관리/CPR 코디 지옥에 빠지게 되었다. 끔찍한 광경도 많이 봤고 119 직통 전화기라도 울릴까 늘 조마조마해서 마음이 늘 긴장 상태였다.


어쨌든 더 확실하게 3교대를 피하고자 마취과로 자원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거쳐간 곳 중에서는 만족감이 가장 높았다. 오더를 받아 처리하는 병동 간호사와 달리 자율성이 높았고 의사와의 소통도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연속성이 없어서 좋았다. 병동의 경우 각 환자마다 입원부터 퇴원까지의 흐름이 있고 중간에 내가 휴무로 빠져도 결국 다시 돌아오면 그 환자에 대한 인계를 받아 그동안 있던 일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수술실의 경우 내가 알아야 하는 시간은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오고 나가는 그 수술 기간 까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직업을 거의 버리고 30살에 다시 새내기가 된 이유는 아픈 사람을 보기 싫어서였다. 몸이 아프면 사람이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온갖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매일 수많은 환자를 재우고 깨우는 고상한 마취과의 세계에서도 서있는 나를 향해 기침하며 깨어나는 환자를 보면서 더 이상 아픈 사람을 이렇게나 집약적으로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잘못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긴장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른 일을 선택한 지금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아픈 사람은 내가 아파서 병원 갈 때만 보면 되는 지금이 좋다. 연봉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유일한 단점은 공부 지옥에 스스로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잠깐 과거 얘기로 돌아가보면, 간호사를 하던 시절에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일생에 딱 한 번 할까 말까 한 인공관절수술, 뇌종양제거수술, 코수술, 백내장 수술 일지라도 이러한 수술들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들어가게 되면 내가 마치 그 수술을 모두 겪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마취의 패턴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수술 종류는 수천 가지라도 그에 적용될 마취(과 의사의 개입이 필요한) 종류는 단 3종류이다: 전신 마취, 척추 마취, 상완신경총 마취.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수술에 들어가도 마취과 스탭으로서 내가 할 일은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의 마취 상태와 바이털 사인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이런 오만한 매너리즘에 빠진 벌이라도 받으라는 의미에서 나는 통역사로 이끌렸던 걸까? 통역사는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공부가 싫다면 절대로 이 직업은 해서는 안된다. 매일 새로운 주제의 회의와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통번역을 위해서는 세상의 흐름 속도에 걸맞은 지식 습득이 필수적이다. 매일 뉴스를 읽고 회사에서는 관련 공부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려서 때로는 이것으로 인해 숨이 막힐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취과) 간호사와 통역사는 많은 면에서 참 많이 닮아 있다.


1. 연속성이 없다

마취과도 하나의 수술이 끝나면 더 이상 그 환자는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 수술이 잘 시작되고 잘 끝난다면 나의 역할을 끝이 난다. 통역사도 마찬가지다. 통역사도 하나의 회의가 잘 진행되도록 통역을 제공하면 그 회의가 끝나는 순간 역할이 끝이 난다.


2. 고상한(?) 직업이다

마취과 스탭은 수술 스크럽/순회 간호사와는 다르게 마취기 옆에 앉아서 바이털 사인을 모니터링한다. 물론 이런 점 때문에 수술실 스탭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피칠갑과 쇳덩이가 난무하는 수술 필드를 가리는 텐트 너머에서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고상한 직업이라 생각했다. 통역사도 어떻게 보면 그런 직업 같다. 때로는 회의 참석자들의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회의를 통역할 때 나는 제삼자의 관찰자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나는 그들의 싸움과 상관없는 타인이라는 듯이...


3. 나름의 자율성이 존재한다(병원마다 다를 수 있음)

마취과는 비교적 소통이 잘되는 과라고 생각한다. 수술이 한창 진행될 때에도 의사는 나가고 나 혼자 모니터링하면서 마취 가스를 조절하기도 하고 정말 급해서 의사가 달려오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을 때 미리 약 주고 나중에 노티 할 때도 있었다. 물론 자율성은 주어지는 만큼의 훈련 기간도 필요로 한다. 힘든 수련 과정 후에 주어지는 자율성이긴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통역사도 주어진 말만 통역한다고 생각하면 무슨 자율성이냐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굉장히 자율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문장도 수십 개의 같은 의미를 지닌 문장으로 바꿔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미가 잘 전달된다는 목적이 지켜진다면 직역을 할지 의역을 할지 재밌게 말할지 센스 있게 말할지 근엄하게 말할지는 통역사의 선택인 것이다!



가끔 내가 힘들게 얻은 것들을 생각하면 과거의 직업과 경력이 지금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성장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내가 존재한 것일 테니 직업을 바꾼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30대 접어들어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를 해보는 것에서 얻은 각각의 인사이트와 시야가 나에게 주는 기쁨은 나를 멈추지 않게 하는 에너지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keyword
이전 08화통역사가 많은 곳 vs 적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