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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Oct 01. 2023

뇌를 속이는 주문, 이 고비만 넘기면 꽃길

“아, 이 작가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는 번역가라는 애가 뭔 놈의 책을 번역할 때마다 ‘모르겠네’를 입에 달고 사니?” 

“모르겠으니까 모르겠다고 하죠. 번역가라고 다 아나?” 

“너 그렇게 만날 모른다고 하는 거 알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냐?” 

“번역가가 눈으로 슥 보면 번역이 쫙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판타지라니까요, 엄마.” 


실제로 나는 책 한 권을 맡아 작업하는 동안 내내 “무슨 소리지?”라거나 “뭔 말인지 모르겠네.”란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산다. 번역가가 됐던 첫 해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이런 말버릇을 가진 번역가가 나 하나만은 아닐 거라고. 어쩌면 그런 번역가가 꽤 많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 경우에는 중국어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오래 배운 것도 아니라 모르는 단어가 다른 번역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번역가가 “무슨 말이지? 잘 모르겠는데.”라는 말을 할 때는 단순히 어떤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요번에는 무슨 책 번역해?” 

“법의인류학 책.”

“법의…뭐? 법의학이랑 인류학은 들어 봤는데.”

“법의학과 인류학을 합쳐 놓은 게 바로 법의인류학이지. 법의학이랑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데 책을 보니까 상당히 다르더라고.” 

“너 저번에는 뇌과학 책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다 했지.”

“볼 때마다 참 신기하네. 국문과 나온 네가 뇌과학에 법의인류학 책을 번역할 줄이야. 심리학이랑 철학 책도 많이 하지 않았나?” 

“그것뿐이겠냐? 고양이 수의학 책도 하고, 애들 동화책, 중국 정치 소설, 근미래 추리 소설, 에세이, 인테리어, 그리스로마 신화, 재테크, 경제서 기타 등등, 수학이랑 과학만 빼고 안 해 본 게 거의 없다.”

“어떻게 그렇게 여러 가지 분야의 책을 번역할 수 있어?” 

“어떻게 하긴, 먹고살려면 다 하는 거지.”

“너 간… 뭐더라?”

“간체자?”

“그래, 중국에서 쓰는 한자 말고, 타이완에서 쓰는 번체도 책도 번역하지 않나?” 

“하지. 먹고살려면 간체자든 번체자든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너도, 참. 번역 경력이 몇 년인데 엄살도 잘 부린다.” 

“엄살 아닌데?” 


 가장 친한 친구인 대학 동기에게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완벽한 전업 번역가가 된 뒤 나는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책이라면 각종 장르와 중국 책, 타이완 책을 가리지 않고 번역을 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중국에서는 글자의 모양이나 획수를 간략하게 만든 간체자를 쓰고, 타이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것과 같은 번체자를 쓴다. 중한 번역가들 중에는 간체자나 번체자 가운데에 하나만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보통은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로 중국어를 배우는데 운 좋게도 나는 초등학교 시절 한자 교육을 중시하셨던 교장 선생님 덕에 한자 공부를 따로 했었다. 물론 내 나이 또래는 중고등학교 시절 한자를 필수로 배웠으니 번체자에 익숙한 편이기도 했다. 덕분에 타이완 책 번역도 큰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다양한 책을 작업하다 보니 모르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노자의 철학에 관한 책을 번역하면 그가 주장하는 사상을 모두 이해해야 번역이 가능한데 번역가가 그런 것들을 일일이 알고 있을 리 없으니 “모르겠다.”는 말을 연발할 수밖에. 법의인류학이나 뇌과학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기본 개념 자체가 생소한 데다 전문 용어가 마구 튀어 나오는 책을 번역하게 되면 “뭔 소리지?”라고 말하는 횟수가 더 잦아진다. 


또 때로는 작가의 문체가 번역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좋은 작가는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서 쓸 줄 알고, 문체 자체도 잘 정리되어 있어 번역가가 할 일이 별로 없다. 당연히 모르는 내용이 나오는 책일수록 자료 조사는 필수지만 군더더기 없이 글을 쓴 작가의 책은 번역에 어려움이 많지 않다. 


그에 비해 분명 책의 콘셉트나 다루고 있는 내용은 괜찮은데 그걸 효과적으로 풀어서 쓰지 못하는 작가들도 가끔 있다. 필요 이상으로 글을 어렵게 쓴다든지 중언부언하며 한 말을 반복하거나 곁다리 이야기를 늘어지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쉽게 말해 기획력은 있는데 글발은 별로인 작가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고생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번역가다.  


“아 나, 이 작가가 왜 앞에서 한 말을 자꾸 하는 거야?”

“자기가 꽈배기야? 쉽게 풀어서 해도 될 말을 뭐 이렇게 꼬아 놨어?”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독자가 어떻게 이해를 하란 거지?” 

“아이디어는 좋은데 글은 참 대충 쓴다. 아냐, 작가도 대충 쓰려고 한 건 아니겠지.” 


이렇게 덜커덕거리는 구간들이 나타나면 번역가 입장에서는 “모르겠다.”란 말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 고비를 만났네. 이걸 어떻게 하지?’ 란 걱정에 머리를 싸매게 된다. 작가가 글을 애매하거나 복잡하게 썼다고 해서 번역가도 그대로 똑같이 글을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는 책의 내용 자체가 어렵다고해서 번역가가 이해하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문을 외운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 고비만 지나면 금방 꽃길이 나올 거야. 당장은 모르고 어려운 것 같지만 이 고비만 잘 넘기면 금방 쉽고 편한 길이 펼쳐질 거라고.”      


하지만 이건 솔직히 잠시 뇌를 속이는 주문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번역하다 보면 덜커덕거리는 구간이 한 번만 등장할 수는 없다. 어려운 구간을 하나 넘어갔나 싶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어려운 구간이 등장한다. 이것은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다. 덜커덕거리는 이유나 횟수가 다를 뿐 아예 덜커덕거리는 구간이 나오지 않는 책은 없다. 심지어 글이 몇 줄 되지 않는 그림책이라고 해도 어린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번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 17년 동안 50여 권의 책으로 직접 임상 실험해 본 결과, 이는 어느 책이든 예외가 없었다. 때로는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 또 때로는 작가가 글을 애매하게 써서, 때로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정서적인 차이가 있어서, 또 때로는 우리나라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힘들어서 등등 번역가는 반드시 ‘모르겠는’ 구간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때, “이 고비만 지나면 금방 꽃길이 나올 거야.”라고 주문을 외우듯 되뇌면 신기하게도 번역하는 동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고비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잠시 뇌를 속이는 건 끝까지 그 책의 번역을 완주하기 위해서다. 


돈을 받고 계약서를 쓴 이상 번역가는 무사히 그 책의 번역을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고통이 계속 이어질 거야.’라고 생각하기보다 ‘조금만 지나면 이 고통도 금방 끝이 나겠지.’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참고 버텨 낼 수 있다. 게다가 ‘이 고비를 지나면 금방 꽃길이 나타난다.’는 주문을 수십, 수백 번을 외우다 보면 결국 책 한 권의 번역 작업이 끝나게 되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다른 책을 번역하게 되면 또 다시 덜커덕거리는 구간이 등장하는 것일 뿐.      


“아, 지겨워. 이놈의 중간고사 언제 끝나?” 

“벌써 그런 말을 하냐? 너희 학교 중간고사 며칠이나 보지?” 

“5일. 근데 중간에 주말이 끼었어.”  

“이제 이틀 봤나? 아이고, 주말 지나고 사흘은 더 봐야 하네?” 

“그러니까! 오늘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그냥 시험 다 끝나 있으면 좋겠다.”

“크크, 그러면 좋긴 하겠다. 그래도 어차피 봐야 하는 거니까 열심히 해.” 

“열심히 하기야 하지. 근데 중간고사 끝나도 또 모의고사, 기말고사가 있잖아.” 

“이제 1학년인데 벌써 지치면 어떻게 하려고? 3년 내내 그럴 텐데.” 

“사람 약 올려?” 

“사는 게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넌 항상 열심히 하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또 시험 잘 못 보면 다른 거 하면 되지.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어.”


올해 고등학교에 올라와 처음 중간고사를 치른 조카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10대 학생도, 40대 번역가도 고비가 자꾸만 등장하는 인생을 산다는 건 다르지 않은 셈이다. 적어도 나는 사방이 지뢰밭이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고비를 피할 순 없지만 그래도 완주를 위해 오늘도 주문을 외워 본다. 


“이 고비가 지나면 금방 꽃길이 나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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