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시들어가는 자신이어도 더는 침묵하지 말기를
겉으로는 생을 입는 척을 해도
속은 시커먼 죽음뿐이니
매일, 눈을 감으면 죽고 싶을 수밖에
눈을 뜰 이유 하나조차 없다면
시들어 갈 뿐
스스로 손에 넣지 못한다면
그저 시들어 갈 뿐
나는 어디를 향하여 가는가
.
.
연기 같은 거야, 인생은
마침내 다다르겠지
재가 되고, 연기가 되어
아, 나른한 음악이 몸을 지배하듯이
인생이 흐르는 것 같다면 멈추고 싶어지지
겉으로는 생을 입고 웃어도
속은 그만큼 타들어 간다면
매일 연기만 하고 있다면
눈을 뜨기보다 감고 싶어지지
저물어 갈 뿐
침대 아래로 그 너머로
그저 저물어 갈 뿐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
나의 지친 등에 박수를
나의 힘들여 흘린 땀에 경의를
나의 고인 눈물에 다른 한 손을
시들어가는 자신이어도
무너져가는 그림자가 보여도
더는 침묵하지 말기를
.
.
예전에 한 좋아하는 가수가 '항상 갖고 싶던 말은 날 스쳐 가기 때문에 내게 왔을 때 잡아야 한다.'
라는 말을 하며 꼭 핸드폰에 메모를 해두다 작사할 때 꺼내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가수들은 아껴두는 벌스를 몇 년 동안 묵히기도 하고,
소설가들은 좋아하는 문장을 놔뒀다가 다음 소설에 쓰기도 한다.
나한테는 '눈을 뜰 이유 하나조차 없다면 시들어 갈 뿐'이란 말이 씨앗처럼 내 안에 있었다.
처음은 거의 십 년 전 발표했던 아델의 'Hello'를 들었을 때 떠올랐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마주해야 했던 나 자신, 하지만 제대로 사랑해주지 않고 놔뒀던 나 자신
꽃이든 뭐든 아름답게 피려면 결실을 보기까지 사랑을, 관심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지도 못하고 시들고 만다. 사람은 어떻겠는가.
난 날 어떻게 대했는가. 난 내게 받을 자격 있는 사랑을 제대로 줬는가.
이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눈 감을 때까지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나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면,
그래서 시들어버린 것 같다면 방관하고 침묵하지 않기를.
내가 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건 너무 비겁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