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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Apr 15. 2023

High and Dry에서 신념으로

일상의 고립을 극복하는 태도에 대해

오늘 갤러리 퍼플에서 개인전 High and Dry를 시작한 서상익 작가를 만났다. 전시 제목은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The Bends 앨범 수록 곡명에서 따왔는데, High and Dry는 밀물에 해안으로 밀려왔다가 썰물 때 갯벌이나 모래톱에 갇혀 꼼짝 못하는 형국을 묘사하는 관용적 표현이라 한다. 이런 표현인지는 작가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몰랐었다.  


우연한 붓질 한 번에 그림의 모든 걸 깨달은 듯 벅차다, 다음날 벽에 부딪혀 과거의 자신을 뒤적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다(작가노트 인용). 이런 고립된 시점에 작가는 프란시스 베이컨, 호크니, 헤르난 바스 같은 미술계 거장들의 얼굴을 그렸다 한다. 그들의 기법, 태도로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High and Dry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한다.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에도 도움이 되는 훈련이었고, 돌이켜 보면 그건 신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다. 그렇게 2012년부터 그려온 거장들의 얼굴은 '화가의 성전'이라는 시리즈가 되었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들이키며 서작가님께 주절주절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도 일을 할 때 High and Dry 같은 고립된 시기가 올 때가 있어요. 저는 금융업계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서적들을 읽었던 것 같아요. 그냥 우리 업계에서 생각하는 교과서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작가님 설명을 듣다가 저도 '화가의 성전'같은 나만의 기록을 남겨둘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닮고 싶은 누군가를 따라가다 돌아보면 신념이 될 수 있는 흔적들 말이죠."



*Temple of the Artist - Lucian Freud, 서상익






밀물과 썰물 사이의 고립을 맞이하는 순간이 앞으로도 많으리라. 그럴 때 한 번씩 내가 추구하는 바를, 또는 닮고 싶은, 배우고 싶은 누군가를 좇아가보는 것은 어떠할까. 그 기록들이 나만의 성전이 되고, 신념이 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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