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가을 n.1 변화의 열매

# 가을 (2019)

by 전구슬

Chapter 2 # 가을 - n.0 변화의 계절

어쩔 수 없이 변하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그 변화에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혼자’는 아무래도 힘들다.

‘혼자’는 외롭고 쓸쓸한 길이다.


날씨는 하루아침에 쌀쌀해졌지만,

우리는 '함께'라서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Chapter 2 # 가을 -n.1 한 바퀴 부지런히 걸어 돌아오니 열매가 열려 있었다.

‘여름’이 계절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끝이 나고, 새로운 2학기가 시작되었다. 무더웠던 날씨가 달아남과 동시에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는 건 해마다 있는 일이었지만, 그 해는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유달리 그 변화들이 비장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또한 다가오는 자격증 시험이 두려워 학과 수업은 잘 듣지 않고 매일 교실 뒷자리에서 시험 대비만 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부끄러운 시절이다. 쌀쌀한 날씨만큼 초조한 마음과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학업에 대한 재미나 흥미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푸릇푸릇 열심히 공부하던 예과 때(수의과 대학은 본과와 예과로 나누어져 있다.)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깊은 상념에 빠진 한 명이 우두커니 앉아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탓에, 하쿠가 춥지 않게 털을 더욱 잘 말려주어야 했다. 그러고서도 하쿠는 추운지 이불에 폭 파묻혀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뒤를 돌아보면 하쿠는 항상 우두커니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산책을 가야 해서가 아니라, 꼭 밥을 먹고 싶어서 가 아니라. 그냥 그 존재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끙끙거리며 공부를 하다 가도 쉬는 시간에는 꼭 하쿠 옆에 붙어서 여유를 찾았다. 꼭 거창한 목적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존재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안정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동안 쌓인 우리의 시간과 신뢰로 인해 생긴 따뜻한 감정들이 주는 온기는 이 세상에서 혹여나 내가 낙오하거나 실패하더라도 계속 지펴질 것이며, 그래서 나를 한 발짝 더 옮기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내가 하쿠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그간에 쌓아온 우리의 신뢰와 사랑은 서로를 향해 항상 따뜻하게 지펴질 것이다.

늦은시간에 안자고 있으면 저렇게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하쿠.
트렁크 가방만 꺼내면 꼭 붙어서 데려가라고 침묵의 시위를하는 하쿠. 눈치는 빠르지 않은 듯 빠른 편이다.


비록 쌀쌀하고 낙엽 지는 가을이지만 이 시기는 추석을 내포한 다는 점에서 큰 메리트가 있다. 그 해 추석은 처음으로 오빠네 부부와 하쿠가 함께하는 명절이었다. 옛날 방울이를 포함한 다섯(명과 마리)의 가족에서 너무나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 새 언니와 하쿠가 함께 한다는 점이 그 해 추석에서 달라진 풍경이었다. 방울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슬픈 빈자리를 따스한 존재들이 채워줌에 감사했다.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1년 전에도 추석기간에 병원 문을 닫게 돼서, 하쿠를 잠시 본가 베란다에 옮겨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더욱 아기 강아지였고 학교에서만 자란 터라 사회성이 너무 없어서 틈만 나면, 엄마 아빠를 물려고 하고 대들었었다. 그리고 똥도 줄줄 흘리는데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베란다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고, 하쿠가 다시 학교로 가고 나서도 엄마 아빠가 베란다를 계속하여 청소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번 추석의 하쿠는 그간의 하루 3번 배변훈련과 양질의 사료, 깨끗한 주거환경, 그리고 사람들과의 사회화 훈련,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입는 팬티 등등으로 완전한 집개로 완전무장해 있었다. 가끔씩 나는 왜 이 똥 흘리는 강아지의 재활에 그렇게 열성이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준다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조금만 더 운동을 한다면, 조금만 더 사랑해주거나 희망을 준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어찌 보면 무턱 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던데, 정말 그런 노력의 결실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힘들긴 하지만 노력하였을 때, 그 노력이 0이 되어 바스러지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혹여나 0이면 어쩌지 또는 내 삶이 이로 인해 (-)가 되면 어쩌지 하고 고민하지만,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한다면 0인 상태인걸.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마는 것인데, 정지한 그 자체가 (-)인걸. 고민할 시간에 어떠한 노력이라도 해본다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나에게 있어 하쿠는 그러한 믿음과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산 증견(?)이자 결실이다.

추석날 모두 음식 준비를 끝내고 쉬고 있는데, 하쿠 혼자 우두커니 앉아 식탁을 바라보고 있다.
하쿠를 닮은 송편. 이제 뭘 하든 가족행사에 빠지지 않는 하쿠.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되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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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추석의 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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