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2. 첫 산책

by 전구슬

흡사 재난과도 같았던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집에 가서도 머릿속엔 이 불쌍한 똥쟁이 강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강아지가 설사와 같은 연변을 시도 때도 없이 줄줄 흘린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어떤 이가 언제든지 똥 폭탄이 될 수 있는 강아지와의 평생을 약속할 수 있겠는가. 시각적인 불편함도 주된 문제 중 하나였지만, 온 사방으로 튀기는 분변은 냄새마저 아주 지독했다. 이런 상태라면 어떤 공간이든 사물이든 이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학부생의 수준에서 처음에 든 생각은 하쿠에게는 진정 배변을 조절하는 괄약근이 조금이라도 없는 건가? 하는 단순한 물음이었다. 원래부터 없는 항문을 만들어 내서 장과 이어 붙였으니 괄약근 또한 선천적으로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설사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사방으로 흐르고 튀는 똥을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것일까. 여러 번의 고민 끝에 마치 하늘에서 정답이 내려오기라도 하듯, 운동을 시키자! 운동을 한번 시켜보자! 하는 생각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필자는 어렸을 적부터 체육선생님 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체득하고 있었다. 운동으로 인한, 세포 수준의 건강한 신진대사뿐 아니라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근육의 발달, 그리고 이로부터 기인하는 힘이 얼마나 하루의 삶에 중요한 에너지를 부여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 작은 강아지도 운동을 열심히 다니다 보면 항문 괄약근은 다소 없더라도 배변에 필요한 주변 근육들을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배변 활동이 조절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과 기대가 생겼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체내의 힘을 재건하여 똥 폭탄을 막아보자는 생각의 일부였다(이때까지만 해도 내과학적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설사 자체를 멈출 방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KakaoTalk_20211022_155512979_02.jpg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 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다음날 바로 외과실 대학원생분들을 통해 우리는 이 강아지를 산책시켜도 된다는 허락을 얻어내었다. 그래서 햇볕이 따스히 내리는 어느 날에 하네스를 하고 처음으로 병원 밖에 산책을 나가 보았다. 대학교 부속 동물병원 옆으로 소담스럽게 펼쳐진 센트럴 파크가 목적지였다. 낙엽이 잔잔히 깔려있는 가을날이었다. 아마도 하쿠에게는 동물병원에 온 이후로, 입원장을 벗어나는 실질적인 첫 외출일 것이었다. 하지만 하쿠는 바깥세상의 공기와 발끝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촉감이 무서웠는지 그 순간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쿠야~~ 하쿠~ 아이 잘해~~!!”하고 돌고래 소리를 내며 하쿠를 응원했다(내 주관적인 경험에 의하면, 강아지들은 이런 고주파의 신나는 목소리에 힘을 얻는 것 같다). 감사하게도 이 작은 강아지는 그 응원에 보답하여 주었고, 갑자기 신이라도 났는지 통통통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냥 그 작고 소소한 이벤트만 해도 나 스스로에게는 감동이었다. 날씨도 따뜻했고, 희망이 보이는 듯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이벤트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더욱더 감동스러웠던 한 가지는 산책 중에 하쿠가 ‘응가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를 키워본 사람이면 다 알듯한 이 응가 자세라는 것은 앞의 두 다리를 직립한 채 뒤의 두 다리를 굽혀 중력 방향으로 소화기관을 위치시키는, 응가하기 적합한 자세를 뜻한다(너무 적나라한 표현인가? 하쿠가 민망하다면 미안해). 비록 응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은 이 자세를, 인위적으로는 쉽게 유도하지도 못할 이 자세를 첫 산책만에 하쿠가 스스로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 깊이 고무되었다. 삶의 본능이란 이렇듯 신비한 것이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힘을 주어 배변에 필요한 근육을 키우는 재활 운동을 하다 보면, 배변 실금을 줄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벌써부터 확신에 가까운 긍정적인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 번만 더 운동하면, 하쿠의 배변장애가 말끔히 해결될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었다. 하쿠도 산책이 금세 익숙해졌는지 재미 삼아 건넨 나뭇가지 한쪽 끝을 입에 물고 아장아장 꿋꿋이 걸어가기도 했다. 단순히 이 똥강아지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건넨 나뭇가지였는데, 하쿠는 그것이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한 끝을 입에 물고 오래 열심히도 걸었다. 그 순간 뭐랄까 내가 내밀어본 '재활'의 메시지에 하쿠가 응답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어린 생명체와 공동의 목표에 대한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만 같은 느낌. 나도 돕고 하쿠도 잘 따라와 주고, 이렇게 함께 운동하다 보면 소화장애와 배변 실금을 해결할 수 있는 기쁜 날이 오지 않을까?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차올랐다. 포기하지 말자. 하쿠는 해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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