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스러웠던 첫 산책 이후, 하쿠 운동시키기 장기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외과실 대학원생들은 항상 바빴기 때문에, A와 나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학부생의 특성을 이용하여 이런 자발적이고 모험적인, 단순 운동치료를 도맡기로 하였다. 주로 아침 학과 수업 전, 오후 수업 후 밤늦게 총 2번. 운동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적은 시간을 택해야 했다. 하쿠가 아무리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어도, 행인분들은 이내 설사 튀긴 뒷 꽁지를 바라보고 걱정스러운 눈길과 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던지셨기 때문이었다. 어린 설사 쟁이에게 안쓰러움을 담은 따뜻한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이를 설명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도 이 똥쟁이가 언제 차도를 보일지 또는 차도를 보일 수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괜찮아질 수 있어요?" 하는 질문에 "음.. 잘 모르겠어요.."하고 우물쭈물 대답하다 자리를 피할 뿐 달리 설명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또한 운동을 하면서 흐르거나 튀는 분변을 부산스럽게 닦아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이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는, 마음이 불편한 일이라 최대한 여러 시선들을 피하고 싶었다.
하쿠는 확실히 병원 바깥에서 배변하려는 자세를 더욱 취하곤 했다. 이는 시바견들의 특성상 산책 배변, 배뇨하려는 습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몇 차례 운동이 이어졌음에도 배변을 능동적으로 조절하진 못했다. 또한 배변을 하기 위한 노력이 실제로 정상적인 배변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산책 중에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양이 더욱 많았다. 건강한 경도와 색깔의 변이 아닌 그야말로 묽은 설사가 나오는, 변의 질 자체의 문제도 있긴 했지만, 배변활동 자체를 조절할 수 없는 실금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해 보였다. 하쿠의 경우는 본교 외과 교수님께서 수술비와 향후 관리 문제(지금과 같이 배변장애를 나타낼 수 있는)에 곤란을 겪는 보호자에게서 기증을 받아 학교차원에서 도의적으로 수술을 진행해주신 특별한 케이스이다.(따라서 이러한 경우는 강아지의 소유권이 학교로 귀속되고, 그로 인해 하쿠에게 이렇다 할 가족은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하쿠의 죽은 장을 잘라내고 항문을 만들어 붙이는 어려운 외과수술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누구도 그가 술 후 배변장애를 극복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었고, 작금의 실금 상태는 지극한 현실이었다. 안타깝게도 대개 항문 재건 수술을 하는 대부분의 개가 이렇게 배변 실금을 하게 된다. 또한 언제 이런 상황이 개선될지, 개선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유기되거나 끝내 안락사를 당하는 강아지들이 많은 것 또한 슬픈 현실이었다.
털을 깎고 열심히 닦아보아도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분변 때문에 깨끗하게 유지될 수 없었던 하쿠의 엉덩이게다가 하쿠를 산책시키면서 알게 된 것은, 이들 시바견들은(욕은 아니다.) 산책 배변(실내에서는 배변, 배뇨를 하지 않고, 실외에서만 용변을 해결하는 습성)을 지독히도 지키고 마는 족속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기 집을 깨끗이 하려는 시바견의 깔끔한 성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이 특이적인 똥쟁이는 특이적으로, 실내에서도 정해진 장소에서 용변을 보려 하고 배변 근육을 항진시키는 습관을 들이면 좋으련만, 이 또한 시바견이라고(욕이 아니다.) 바깥에 나와야지만 배변훈련이 되니, 앞으로 꼼짝없이 배변 운동을 위해서는 하루 세 번 꼬박 산책을 하는 생활을 지속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산책도 산책이거니와, 하쿠 또한 수시로 배가 아픈 것을 참아내야 하니, 병원 안에서 저 혼자 끙끙거리며 힘들어할 것이 분명해서 속이 탔다. 어서 빨리 소화장애와 배변 실금을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갔다.
호기롭게 산책을 시작했으나, 프로토콜 하나 없던 운동치료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선택지에 봉착하기도 했다. 산책의 정도에 관한 문제로, A와 나의 의견은 항상 상충하곤 했다. 나는 최대한 많이 걸으려고 했고, A는 바깥에만 나오면 된다고 했다. 나는 학교를 지나 인근 강가까지 걷고자 했고 A는 학교 옆 작은 공원만 돌면 된다고 했다. 아마도 나는 '운동' 자체에 중점을 두었고, A는 운동과 에너지 소모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학교 전체를 도는 선에서, A는 자기 차례에는 적당히 산책코스를 도는 선에서 산책은 이루어졌다. 또 하나, 산책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로는 하쿠가 잦은 설사에 더하여 운동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로 인해 허기가 지는지 무엇이든 자꾸 주워 먹으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낙엽이든, 꽃이든 안 그래도 짧아진 장에 이물이 들어가서 좋을 것이 결코 없으니 우리는 최대한 이를 막고자 했다. 하쿠가 입질을 하려고 하기만 하면, 연신 "하쿠!~! 안돼 ~안돼~~~ "하며 소리 질렀다. 심지어 A는 페트병까지 동원해서 애꿎은 자신의 다리를 팡팡 치며 큰 소음으로 겁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스꽝스럽지만, 스스로와 순간순간의 딴에는 간절한 상황들이었다.
산책이 계속되면서, 이 똥쟁이 강아지가 달리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전까진 그저 단순 케이지 너머에 주저앉아있는 약간 소심해 보이던, 걱정스러운 똥쟁이 아기 시바견일 뿐이었다. 하지만 산책 후 보이는 하쿠의 빛나는 눈빛과 발걸음은 그를 달리 보이게 만들었다. 바깥에 나가면 눈이 반짝이고 코가 촉촉해지는,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강아지. 하지만 겁이 많아서 잘 위축되는, 아픔이 무섭고(어린 나이에 아픈 수술을 해서인지, 엉덩이 근처는 손도 못 대게 했다.), 똥이 흐른다는 핸디캡이 있는, 안쓰러운 강아지. 심지어 이 예민한 강아지는 ‘똥’이라는 단어에 민감해서, 사람들이 저 앞에서 ‘똥이 어쩌고~'하면 굉장히 기민하게 반응하고, 이내 그 뉘앙스를 알아듣고는 엉덩이에 붙은 똥을 핥아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하쿠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똥 좀 흘리고 때론 스트레스를 받게 해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하쿠가 꽃냄새를 맡게 화단 위로 올려 주기도 하고, 바람 잘 드는 곳에 가서 둘이서 밤에 오붓이 앉아있기도 했다. 때로는 하쿠를 화단과 인도를 가르는 직사각형의 경계석 위를 걷게도 했는데, 그냥 큰 뜻은 없고, 좁고 평평한 돌 위를 열심히 종종 걷는 그 발자국들이 내가 보기 귀여워서 이기도 했다.(그것이 습관이 되어 가끔씩 아직도 그러는 것을 보면 하쿠 뒤에서 혼자 웃는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갔다. 누군가는 힘들지 않냐고 물었었지만, 우리들은 그저 생각 없이, 때론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희망을 가지고 나아갔던 것 같다. 하쿠와의 산책 시간은 나 스스로에게도 힐링의 시간이었다. 온갖 복잡한 선택지들에 대한 생각에 진로에 대한 혼란함과 비견되는 현재라는 느린 시간의 답답함. 대학 생활 내내, 스스로 골치 꽤나 썩이면서 살던 나에게, 이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하는 단순한 운동은 나 또한 점점 정화시켜주고 있었다. 오로지 ‘운동으로 배변활동을 조절하자!’라는 표어 아래, 사실 이것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므로. 하루하루 그렇게 쌓여가는 시간은 마치, 아직 갈길이 많이 남은 마라토너처럼, 마음을 정제하고 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상은 차곡차곡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