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5. 정신적 거리가 가까워지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나 또한 하쿠에게 상상 이상으로 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강아지를 잃고, 방울이가 아닌 다른 강아지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시간의 힘이 대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과는 달리, 방울이를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었고 , 점점 그와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온 힘을 다해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랑하는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무언가는 상실로 인해 깊어진 마음의 싱크홀을 점점 채워주기 시작했다. 한없이 까만 슬픔의 구덩이 속에 내려온 사다리처럼 어느새 자라난 마음의 힘이 점점 나를 빛으로 끌어올려주는 느낌이었다.
대형견 입원실 밖을 나서면서 하루의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보는 하쿠의 눈동자가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비치는 하쿠의 그림자는 입원실 문을 닫고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 있었다. 문득 오후 산책까지 끝난 후 불을 끄고 나갈 때, 하쿠는 어떤 생각을 하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사실 대형견 입원장이 넓다고 해서 그 생활이 마냥 편할리 만은 없었다. 소형견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대형견 입원장은 원래 목적과는 달리, 대개 대형견이 주로 이용하기보다 때때로 실험실 비글들이 수시로 오고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실험실 비글견은 실내 생활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입원장 이곳저곳에 대소변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분변을 잔뜩 밟고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묻혀놓기 일쑤였다. 그리고 비글의 특성상 이들이 매우 혈기왕성한 터라 꽤나 시끄럽기도 했다. 따라서 같이 지내기 좋은 이웃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깔끔’에 예민했던 시바견 하쿠는 그 친구들이 오고 가는 게 싫은 것 같았다. 때때로 비글들이 오고 가는 일이 많던 날에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담장 너머를 향해 낑낑거리고 이불을 물어뜯는 등 짜증을 내곤 했다.
사실, 하쿠를 처음 대했을 때는 이러한 하쿠의 표정이나 언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불편한지 행복한지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 없이, 배변장애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또한 방울이는 언제든지 사람 곁에 몸을 붙이고 있고 싶어 했고, 틈만 나면 쓰다듬어 달라거나 놀아달라고 다가오곤 하던 애교가 많은 강아지였다. 하지만, 하쿠는 배가 아주 고플 때가 아니면 그다지 사람에게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하쿠의 똥 묻은 엉덩이를 닦아주려고 하기만 하면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며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한바탕 실랑이를 하고 난 후면, '내가 이 친구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일까? 오히려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자괴감이 들어 하쿠를 마주 보고 앉아 멍하니 쳐다보게 되는 날도 있었다.
하쿠는 항상 사람을 경계하는 듯 멀뚱히 바라보기만 할 뿐, 곁으로 오는 일이 잘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에게 정이 덜 들어서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다른 강아지들처럼 다가오거나 꼬리를 흔드는 일이 좀체 없자, 인지장애 일까 깊이 고민하기도 했다. 인지장애란 사람의 치매와 같은 증상을 강아지들에 대입하여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쓸쓸하고 사랑이 고플 법 한데, 이렇게 무덤덤한 걸 보면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고 잘 모르던 학부생 시절에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있다.(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인지장애의 양상은 이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런 의심을 말끔히 씻어주는 사건이 있었다. 반복적인 산책 끝에 알아낸 것인데, 하쿠는 산책을 하다 종종 마주치는, 조끼를 입고 머리가 약간 쇤 중년 남성에 매우 기민하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차림새의 사람이 멀리서 나타나기만 해도, 아주 구슬픈 소리를 내면서 여기 좀 쳐다봐 달라는 듯 애처롭게 울었는데, 멀쩡히 산책을 하다가도 그런 상황이 펼쳐지면 잔뜩 흥분한 하쿠를 데리고 어찌할 줄 몰랐다. 그저 하쿠를 안아주고 달래주면서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처음에는 우연으로 치부했지만,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아마 이전 주인이 그런 차림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애달파서 하쿠는 감정이 없거나 부족할 거라는 의심이 싹 사라지게 되었다. 그저 영락없는 철부지 또는 인지장애가 의심되는 강아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또한 그리움을 느끼는, 사랑이 필요한 아기 강아지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좀 더 충분한 사랑과 치유의 시간을 주어야 하리라. 단순히 속 답답하게 바라봤던 강아지의 깊은 내면에도 저 나름의 마음 아픈 스토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저 하쿠의 외면적인 문제점만 보고 편견과 걱정에 둘러싸여 그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아마도 내가 인지장애를 의심할 정도로 하쿠를 무덤덤하고 약간 모자란 친구라고 느꼈던 것은, 시바견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바견들은 대체로 씩씩하고 독립적이다. 겁이 없고 자신감에 차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그런 긍정적인 면들 덕분에 그 길고 외로운 입원실에서 시간과, 배변 실금을 하는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하쿠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격과 감정은 별개의 것일 뿐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또 한 번 배웠다. 그리고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그를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는데, 내가 오기 전이면 웅크리며 자다가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근대는 기대의 눈빛으로 문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듯 하지만 멀리 떨어지지는 않고 이내 내 곁을 맴돌려고 한다는 점 또한 보였다. 하루 중 마지막 산책 후, 대형견 실의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불투명한 유리문에 서서 혹여나 다시 열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그의 실루엣이 보였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많이 들곤 한다. 정말 순수한 기쁨 내지는 속상하고 슬픈 마음. 제각각 이를 마주할 때도, 저를 마주할 때도 있다. 그 과정 중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때로 뿌듯한 일을 하기도 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한번 패인 깊은 마음의 상처는 꽤 오래가기도 한다. 힘이 들 때에, 우리는 아름다운 이상향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고 희망을 품는다. 이렇든 저렇든 힘든 삶 중에서, 하쿠의 묵묵하지만 굳센 생명의 의지와 순수함, 그리고 핸디캡이 있음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나의 깊은 마음을 울렸던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