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6. 집개! 될 수 있을까?

by 전구슬

하쿠를 만난 것은 가을의 초입이었지만, 이내 한 달, 두 달, 세 달... 시간은 금방 지나가게 되었고, 결국 겨울이 왔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내가 살던 자취방에 하쿠를 초대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곳은 방의 크기는 넓었던 대신에 심야전기를 쓰는 곳이라, 가끔씩 난방을 제때 틀어놓지 못하면 사람이 사는 곳이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추운 곳이었다. 또한 그 무렵은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의무감과 체력적 한계가 부딪혀 혼란스러울 때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시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현재 사건이 갖는 의미를 충분히 해석하기 어렵다. 중요한 일인지 혹은 빨리 놓아야 할 일인지, 발전시켜야 할 일인지 꾸준히 해야 할 일인지... 어린 나이에, 더군다나 데이터가 0인 상태에서는 알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래서 그 시절 나도, 그 시절의 하쿠도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텨보려 노력했던 것 아닐까.


허술한 자취방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니까, 하쿠를 따뜻한 물에 목욕시키고, 집에서 몇 시간 만이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 결국 이 친구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신기하게도 아주 먼 옛날이긴 하지만(항문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병원 입원 생활을 시작한 친구이기에 가정집에서 살아온 날들은 며칠 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한번 살아본 경험이 있었는지, <보통의 집>이라는 공간을 마주하자마자, 그는 주저 없이 곧장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매우 신이 나보였다. 확실히 가정집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또한 그 생활을 매우 좋아했던 것 같다.

막 이사를 끝낸 직후의 자취방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신이 난 그를 얼른 붙잡아 앉혀놓고, 커다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꽤나 실내생활 강아지처럼 목욕도 별 무리 없이 곧잘 했다. 털이 엄청 빠졌는데 이는 털갈이 시즌의, 이중모 시바견이라 어쩔 수 없었다. 또한 긴 입원 기간 동안 수북하게 쌓여있던 죽은 털이 밀려 나오는 중이었다. 화장실 수챗구멍이 막힐까 잠시 걱정이었을 뿐. 여러 번 거품을 내고 따뜻한 물을 바가지로 수차례 부었다. 털을 말리는 것은 조금 더 힘들었다. 다 씻고 보면 어느새 설사 똥이 삐죽 나와있었다. 그래도 여차저차 똥이 더 흐르기 전에 말리고 닦고, 미리 사두었던 강아지 기저귀를 입혀놓았다. 꽤나 그럴싸한 집개! 가 된 것 같았다. 저 스스로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는지 더욱 신이 난 하쿠는 좁은 방이었지만 집구석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저렇게 집을 좋아하는 녀석을 어떻게 다시 입원실로 데러다 놓을까. 괜히 데려와서 현실의 격차를 느끼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완전히 적응해 버리기 전에 집에서 조금만 더 놀다가 보내야지 싶었다. 한바탕 난리를 친 후에, 고단했던 탓인지 하쿠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런 하쿠를 살포시 안고 있다 보니 잠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매우 깊은 잠이었는데, 자그마한 하쿠의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이 친구가 진짜 살아있구나, 내 옆에서 숨 쉬고 있구나 느껴지는 그 잠깐의 달콤하고 꿈같은 순간이 흘렀다.

이사 가기 전, 상당히 흐트러진 모습의 자취방. 그 무렵 나의 피곤한 정신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으로 대대적인 목욕을 하고 털을 말리는 일련의 사건들이 스트레스였던 것일까. 갑자기 무언가에 의해 놀란 듯 일어난 하쿠의 엉덩이에서, 뿌지직하고 가스가 배출되더니 다시 분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래 참았던 탓인지 그 양이 많아서, 이내 기저귀 바깥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사실 강아지 기저귀는 마킹, 즉 영역표시를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 하쿠같이 배변 실금을 하는 경우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냄새도 고약했다. 하쿠 또한 지금 어떤 상황이 펼쳐졌는지 잘 아는 것 같았다. 편안하고 안락한 순간은 사라지고 자신의 엉덩이에서 똥이 흘렀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낑낑거리며 안절부절못하고 똥을 핥아 없애려 안간힘을 썼다. 뒷수습에 실패하기도 했고,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착잡한 마음으로 하쿠를 다시 입원실에 데려다 놓았다. 결국 실패로 끝난 슬픈 경험이었지만, 이후로도 나는 하쿠가 집에서 클 수는 없을까? 우리도 따뜻한 실내에서 행복하게, 평범하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 하고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단 계속되는 운동과 적절한 식이로 인해 하쿠의 설사는 감소하는 추세였고, 변이 흐르는 빈도도 감소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크게 스트레스받는 일만 없다면, 설사는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분변이 일단 분출되었다 하면, 언제 사방으로 튈지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언제부턴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하쿠를 학교에서 데려와 키우기로 결심을 했었기 때문에 머릿속은 여러 가지 궁리로 복잡해졌다. 학교를 다니면서 케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졸업과 동시에 학교에서 데려와야 할 텐데, 그때 아무리 화장실이나 베란다와 같은 실내와 분리된 공간에서 키운다고 해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분변으로 뒤덮인 베란다와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의 걱정과 근심을 예상하는 것은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하쿠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하쿠를 위한 팬티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크리스마스 때 샀던 애견용 기저귀는 하쿠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마킹을 막는 용도라 꼬리 구멍도 넓을 뿐 아니라, 그 부분이 너무나도 얇아서, 꼬리 바로 밑에 항문이 있는 하쿠의 경우 분변이 그 구멍을 통해 줄줄 새게 되었다. 시중에 하쿠와 같이 배변 실금을 위한 강아지 팬티가 있나 찾아보았으나 내선에서는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더더욱 국내에선 그런 종류 자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개! 가 되기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로, 하쿠용 팬티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평상시 분변의 경도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왔으니 사방으로 튀지만 않아도 큰 무리 없이 베란다에서 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온전히 집안으로 들어오진 못해도, 반틈은 집개! 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하쿠 팬티의 가능성이나 실효성에 대해서도 걱정스럽긴 했다. 지난번 수술에 매우 기대를 했다가 낙담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시도한 결과물이 조잡해서 또 한 번 실망하게 되는 계기가 될까 무서웠던 것 같다. 날이 점점 추워지는 만큼,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들이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널 어쩌면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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