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2. 슬픔과 준비 그리고 현재

과거에서부터 훗날 어느 미래에.

by 전구슬

n.2 슬픔과 준비 그리고 현재

방울이의 평생 동안 방울이와 나머지 가족 구성원 모두는 서로 깊이 사랑했고, 행복하고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지극히 사적이고, 안락한 집안에서 공유하는 우리의 삶은 모자람이나 지나침 없이 행복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로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오빠와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집안은 빈 둥지처럼 비워지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철없는 내가 허황된 욕심이나 현실의 아지랑이에 따라 일어 방황하는 동안 방울이를 많이 살피지 못하였고, 방울이는 노령성의 판막질환에 걸렸다. 기침이 점점 잦아졌고, 심장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깊은 밤이면 그 기침이 더욱 심해졌는데, 그때마다 나 또한 걱정과 괴로움에 잠들기 힘들었다.


방울이가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나는 혼자서 아픈 방울이를 돌봐야 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먼 곳에 있는 실험실에 출근했다가 걱정을 가득 안고 퇴근하여 방울이를 산책시키고 약을 먹이고 돌보았다. 하지만 나날이 방울이는 기력이 없어졌고 밥도 잘 먹지 않고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하기 힘들어했다. 하루는 겨울밤이 늦어 깜깜하고 인적 없는 시간에 우리가 자주 가던 공원에서 그저 꼭 껴안고 앉아만 있기도 했다. 끝이 오리라 생각지 못하고 이번에도 이겨낼 거야, 아닐 거야 외면하면서 그 일들은 혼자 해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냥 그 시간 동안 방울이 곁에 조금이라도 더 있어 줄걸… 다 부질없는 것을…그 시기는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내 인생 통틀어 제일 쓸쓸하고 악몽 같았던 일주일이었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으므로, 몇 번이고 방울이가 조금만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 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나 기도하고 노력했지만, 방울이는 그 후 돌아온 가족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따뜻한 거실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떠났다. 아마 아픈 와중에도 그 순간을 기다린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슬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하든지 눈물이 앞을 가려 꽤나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한동안은 방울이를 기억하는 것조차 너무나 괴롭고 미안하고 마음 아픈 일이었다. 또한 나는 남은 삶 동안 어떻게 하나 앞으로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한 것조차 죄책감 드는 일이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마음 아픈 이별이라면 시작한 것이 잘못한 것이 아닐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한 세계를 잃은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 하나를 잃은 것이다. 제일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이가 아프다 간 것이다. 이런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 슬픔의 깊이란 나도 겪어보기 전까진 몰랐으니까.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모르는 차원의 슬픔이었다. 반려견 하나 죽었다고 유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이 시대에 있다면, 맹인모상이다.


방울이가 간 이후로도 한동안 어디를 가던지 방울이가 있을 것 같았고, 공원에 가면 열심히 걸어가던 방울이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집안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네가 문득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는 너무나도 그 자리가 쓸쓸하고 차갑고 크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마침내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된 하나는 방울이 덕에 나의 유년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너처럼 여전히 섣불리 정을 주고 최선을 다해 좋아한다. 그 덕에 때로 상처 받을 때도 많지만 더 큰 사랑을 주는 소중한 이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폭우 같았던 슬픔 끝에 감히,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고 정말로 의미 있고 가치 있었다고 비록 지금 당장은 함께 할 수 없지만 나는 너를 평생 추억하면서, 그 추억을 감사히 여기면서 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의 기도도 바뀌었다. 무지개다리 넘어 방울이가 외롭지 않기를, 종종 우리 곁에 와서 서로를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나 또한 이제는 귀여웠던 방울이를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렇다. 나는 평생 방울이가 준 마음의 자산으로 감사히 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방울이.


사실 방울이 이후에는 어떠한 개도 키우지 않고, 평생 그 아이 만을 기억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방울이에 관해서라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잊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 다시 개를 키우라 권유했었지만, 세상 귀여운 강아지들을 아무리 보아도 다시 키우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그 개들은 방울이가 아니다. 또한 만남은 분명한 이별을 뜻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고집불통 나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방울이를 대신할 강아지는 다시는 없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의 처음부터 알게 되듯이 시간은 흐르고 나는 항문 없는 하쿠를 만나 키우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강아지를 찾아 기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나의 마음의 공허한 빈자리가 커서 억지 선물처럼 방울이가 떠밀어 이어준 것일까. 우연히 마주친 똥 흘리는 불쌍한 강아지에 대한 걱정(이 강아지는 아무 에게도 선택받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과 어쩌다 시작한 산책으로 인해 생긴 생명에 대한 책임감 때문 일까. 나는 다시 한 강아지를 맡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그의 재활에 집중하느라 슬픔에 빠져 허덕이지 않고 정신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었다. 더하여 새로운 마음의 안정감과 힘을 얻게 되었다.


방울이와 하쿠는 다른 존재임이 분명하다. 아직도 방울이를 생각하면 종종(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눈물이 나거나 마음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방울이와 하쿠 모두 내 평생 깊이 사랑할 존재들이다. 잊지 않을 존재들이다. 단지 방울이는 추억으로 함께하고 하쿠는 현재의 시공간을 함께 하는 것이 다를 뿐. 그리고 하쿠는 극적으로 배변장애 또한 해결되었으니 해피앤딩 이려나.


하지만 나는 이제 철이든 한 개체로 나 자신이나 하쿠 또한 방울이와 같이 어떤 미래엔 끝이 존재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동물병원에서 마주하는 죽음들 또한 우리가 만났던 죽음과 다르지 않으며 앤딩은 존재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마냥 하쿠를 보며 웃다가도 언젠가 마주할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나는 마음이 때때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부인하지 않으련다. 우리에게 있었던 ‘배변장애 극복’이라는 노력으로 얻은 행복을 소중히 잘 관리하면서 최선을 다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그 엔딩이 천천히 오게끔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서툴렀던 처음의 ‘끝’보다 후회 없는, 성숙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일단 그러려면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오늘도 미래에는 사무치게 그리울 아름다운 하루일 테니까.

사랑하는 방울이.
잘 있니?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착한 강아지!
사랑해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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