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아주 실전적 현실 영역이다.
생활용품점이라면 이른바 생활권 내에 있어야 한다. 내가 움직이는 동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주를 넘어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형 백화점이나 창고형 할인매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방문하려면 무려 계획을 세워야 한다. 뭘 살 것인지, 얼마 정도의 예산을 쓸 것인지가 중요한 관건이다. 물론 이런 곳에도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마실 가듯 들리기는 어렵다(물론,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내 동선에 있다는 것은 별다른 계획이 없어도 그냥 한 번 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연애도 롱디가 어려운 것이 이런 이유다. 자주 봐야 고운 정뿐만 아니라 미운 정도 쌓이는 법이다. 자주 만나다 보면 없던 인연도 생기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이소는 아주 유리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무인양품은 참 좋은 브랜드다.
세계최초로 좋은 제품(良品)을 브랜드 없이(無印) 팔기 시작한 곳이다. 부산에는 매장이 서면 롯데백화점에 본점, 센텀 신세계백화점 몰 이렇게 2개가 있다. 2025년 5월 기준 국내에는 약 43개 이상의 무인양품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주로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 입점되어 있는데 부산도 마찬가지다. 무인양품과 다이소를 굳이 비교하는 것은 그 성격 때문이다. 하라켄야는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 무인양품 역시 무늬, 장식, 색상 같은 요소를 빼는 여백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1980년 일본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유(SEIYU)의 PB 제품으로 출발한 무인양품은 현재 전 세계 28개국에서 매출 약 3조 원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직접 비교대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매출액으로만 보면 글로벌 무인양품과 국내 다이소는 비슷한 수준이다.
일단 무인양품은 일본, 다이소는 한국 브랜드다.
산업디자이너로서 일본의 무인양품은 선망의 브랜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인양품은 무인양품대로, 다이소는 다이소대로 매력이 있다. 여전히 무인양품 매장은 독특한 그만의 개성이 드러난다. 지금 쓰고 있는 만년필 홀더는 무인양품 제품이다. 간단한 문구류와 잡화 몇 개는 구매했지만 다이소만큼 생활에 근접한 내밀한 제품군은 찾기 어렵다. 아마 일본 내수 기준 혹은 글로벌 기준에서 본다면 문화마다 마지노 선이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들어가면 글로벌화되기 어렵다. 그래서 보편적인 아이템이 많다.
반면 다이소는 찐 생활 그 자체다.
기업의 전략적 선택은 이렇게 주효한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다이소의 제품군을 살펴보면 그다지 폼이 나지 않는 아이템이 많다. 음식물 쓰레기 망, 일회용 치실 등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저렴하게 팔고 있다. 그래서, 무인양품이나 다이소에서 쇼핑하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다이소는 왠지 구매제품을 슬쩍 숨기게 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내 생활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렇다.
무인양품과 다이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다.
무인양품은 미니멀리즘으로, 디이소는 실용성으로 다가와 있다. 이 둘은 모두 의미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적 삶은 미니멀리즘보다 꽉 채워진 실용성이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서 생활을 투영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이 역할을 수행하는 제품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실제 삶에는 다이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 것이다.
나의 하루하루가 쌓여 삶이 된다.
다이소는 매번 빈번하게 내 삶의 필요함을 물어봐 주는 친구로, 무인양품은 가끔씩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해 주는 멋진 친구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무인양품이,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은 다이소가 말해준다. 오늘 당장 필요한 일회용 면도기가 필요하다면 차를 운전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을 이동해서 무인양품에 갈 필요는 없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다이소에 해답이 있다. 자주 보면 마음도 가는 법이다. 삶은 현실이다.
그리고, 그 삶은 아름다운 여백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