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기초가 중요한 법이다.
모든 응용은 탄탄한 기초 위에서야 가능하다. 뭔가를 알기 위한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 이치가 그렇다. 건물을 지워 세우는 일도 탄탄한 기반작업이 되면 위로 위로 안심하고 올릴 수 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실 못 매 쓴다거나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는 속담이 여기에 딱 어울리는 비유다. 차근차근 기본 개념부터 쌓아나가면 이후부터는 쭉쭉 나가는 맛이 있다.
경영학 원론 책을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원서를 번역한 것인데 거의 천 페이지 수준이다. 보는 순간 질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걸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읽고 지나가면 차례로 앞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우격다짐으로 끝까지 완파했다고 해도 그게 기억에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경영학자가 되거나 이론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유리하게 조금 써먹는 게 목표다. 그거 아니라도 해야 할 게 부지기수다. 디자이너로서 필요한 상식 수준의 경영지식만 알고 있어도 문제없다. 이후에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조금 더 자세히 공부하면 된다.
디자인 경영은 디자인과 경영이 합쳐진 말이다.
사전적으로 디자인은 뭔가를 만드는 것이고, 경영은 뭔가를 운영하는 것이다. 둘 다 뭔가가 대상이다. 여기에 디자인은 만들기는 만드는 데 이게 창작활동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적이고 기능적 요소가 들어간 창작활동으로 뭔가를 만드는 행위다. 반면 경영은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활동이다. 정리해 보면, 뭔가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활동을 통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디자인 경영"이다. 깔끔하지 않은가?
이를 학문적으로 살펴보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한 번만 그래보자. 문자대로만 본다면 기업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활동이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우위는 경쟁자 대비 우위에 있는 것을 말한다. 저렴한 가격, 뛰어난 품질, 기가 막힌 고객서비스 등 기업이 가진 나름의 경쟁력이 있지 않은가? 여기에 "디자인"을 대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디자인을 경영전략, 그것도 경쟁자 대비 우위에 있는 전략으로 디자인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디자인을 바로 보는 관점이 이렇다.
디자이너들이야 디자인이 아주 신성하기까지 한 행위겠지만 경영자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디자인은 기업을 위한 전략수단이면서 하나의 투자다. 아까 한정된 자원이라는 말 기억하는가? 경영을 하기 위한 모든 자원은 한정적이다. 끝없이 샘솟는 화수분이나 황금알이 매일 나오는 거위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기업이 디자인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투자란 것이다. 투자는 이익을 가져다줘야 한다. 어떻게? 잘. 그리고 투자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수익률로 평가된다.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의 이익을 가지고 왔느냐 아니겠는가? 모든 기업이 조금 투자하고 많은 이익을 보고 싶어 하겠지만 세상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적절한 수준이 있지 않겠는가? 경쟁자도 있고, 시장상황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 같은 것도 존재한다. 알리가 그러지 않았는가. 얻어맞기 전까지는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고.. 이익이 생길지, 오히려 손해가 날 지도 모르는 것이 투자다. 아마, 이 순간 자신의 주식계좌 잔고를 생각해 보시라. 투자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경제가 어렵다.
기업을 둘러싼 경제 상황 역시 마찬가지로 어렵다. 좋은 세월이 오면 나아질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누구나 다 호황을 누릴 순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기업의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져 간다. 고객은 기업보다 똑똑하고 힘도 세다. 정보는 공평하게 모든 사람에게 오픈되어 있다. 예전처럼 물건만 만들어 놓으면 알아서 팔려나가는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여기에 사용자 감성이니 경험이니 하는 수치로 책정하기 어려운 개념도 마구마구 시장에 나온다. 한마디로 고약한 시장환경(Wickid market Status)이다. 가격, 품질, 브랜드, 홍보 등 여러 전략도구들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것 하나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런 복잡한 경제상황에서는 "디자인"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은 기업의 발전 뭐 이런 개념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다. 생존을 해야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디자인 경영을 통해 이제는 단순히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고객의 문화, 정체성, 경험, 경영 방식 등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과 꾸준한 변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기업의 자원은 제한적이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돌아서면 월급날이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은 눈덩이처럼 쌓이는 기분이다. 경쟁자는 나만 빼고 다 상황이 좋은 것 같다. 이럴 때 기업은 뭔가 회심의 선택을 해야 한다. 반드시 이럴 때뿐만 아니라 항상 기업은 매번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 결정의 대부분은 돈 쓰는 일이다. 디자인은 단순히 기업이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선이 목표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투자이고, 이 디자인이 기업의 최일선에서 경쟁자와 용감하게 맞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 즉 디자이너는 감각이 아니라 기업전략의 차원에서 말해야 한다. 디자인 경영은 단순히 로고나 제품을 시각적으로 잘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업 전체의 전략적 사고와 혁신을 촉진하는 경영도구로써 인식되어야 한다. 디자인 외에 기업 입장에서도 별로 뾰족한 수가 없다.
기아자동차는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현재 상태는 지난 2006년 세계적인 디자인 거장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 디자인을 총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현대자동차와 합병을 한 이유는 기업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의 요구는 너무 빨리 변했다. 제아무리 큰 규모의 대기업도 이런 시장의 요구에 발 빠르게 맞추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기아차는 슈라이어의 영입을 계기로 PCIP(Product Corporate Identity Program)으로 호랑이코 형태의 그릴과 직선의 단순화라는 디자인 콘셉트를 제품에 적용했다. 로체 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 K시리즈는 현재 디자인 강자 기아자동차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제품뿐만 아니라 우수한 기술력이 바탕이 된 다이슨의 가전 시리즈, 세상에 없던 전기차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연 테슬라 역시 디자인을 기업전략의 선두에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기술, 혁신, 마케팅 등을 우선으로 보기도 한다.
경영은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다.
군사학과 동일한 단어(전술, 전략, 경쟁, 무기 등)를 쓰는 것은 경영학 초기 태생의 환경을 알려준다.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유사한 사례를 군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재에는 아주 적절하게 잘 이해되지 않은가? 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의 홍수 속에 기업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간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앞세운 놀라운 변화가 예측되지만 누구도 예견할 수는 없다. 디자인경영은 여기에 지속가능성을 미래 키워드로 내세운다. 이런 흐름은 오히려 지속가능이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경영현장은 늘 새로운 전략을 찾고 있다.
디자인경영은 2000년대 초반에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다. 하지만 용장은 언제나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우는 것이다. 당시에는 디자인 개념이 너무 소모품처럼 사용된 느낌이다. 이제 다시 시대의 흐름은 디자인 경영을 원하고 있다. 두꺼운 경영학 원론을 보지 않아도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만 일단 알면 된다. 디자인 경영은 경영의 한 종류다. 여기에 디자인 전공자들이라면(경영자가 아니라고 해도) 디자인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한 뒤,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경영언어를 써보자.
훨씬 논리적이고 타당한 굿디자인이 될 것이다.
1. 디자인은 기업의 전략적 자원이다.
2. 디자인은 경영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3. 디자인은 기업의 경쟁우위를 만드는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