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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Jun 22. 2021

참기름은 조금, 그리움은 넣지 말고.

나와 입맛이 닮은 그의 레시피

21년 6월 18일 금요일

최고기온 38도, 체감온도 45도

분명 에어컨은 성실하게 일하는 중인데 성과가 시원찮다.



 끈적하게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며칠 째 더위는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두어 달은 더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눈 앞이 아득하다. 아침부터 진이 쏙 빠진 느낌이었다. 헛헛함이 느껴지는데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식욕은 아침부터 일찍 외출 중인 듯했다.


 냉장고를 열었다. 집 나간 식욕을 되찾아줄 음식이 떠올랐다. 재료도 간단하고 만드는 법도 아주 간단한 음식. 오늘 점심은 김치볶음밥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김치볶음밥 레시피 중 아빠의 레시피를 떠올렸다. 어깨너머 배워 10여 년이 넘도록 내 입맛을 책임져준 레시피이다.



 밥, 김치, 다진 마늘, 계란 그리고 소량의 굴소스와 고춧가루, 참기름이면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진다. 굴소스와 고춧가루는 없다면 넣지 않아도 되지만 다진 마늘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김치를 잘게 썬다.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로, 썬다와 다진다의 중간 정도의 크기로 김치를 썬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조금 두르고 김치와 다진 마늘을 넣는다. 식용유는 조금, 마늘은 많이 넣는다. 마늘향이 즐기며 함께 볶는다.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밥과 굴소스,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볶는다는 느낌보단 섞는다는 느낌으로, 하얀 밥이 붉은 밥이 되도록 잘 섞고 간을 본다. 밍밍하다 혹은 심심하다의 단어가 떠오른다면 김치 국물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춘다. 많이 넣으면 안 된다. 많이 넣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볶음밥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기름 몇 방울을 넣어 잘 섞고 볶는다. 비빔밥에 넣듯이 많이 넣는 것이 아닌 참기름의 향만 즐길 수 있도록 조금 넣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아빠의 레시피는 계란을 참기름 넣기 전에 밥 위에 풀어서 함께 볶아내는 것이지만 오늘은 계란 프라이로 변경했다.


 아빠의 레시피는 기름을 적게 넣어 깔끔하게, 마늘을 많이 넣어 풍미를 좋게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햄과 고기 등을 넣을 수 있지만 늘 우리는 김치와 마늘만 넣은 채 깔끔한 한 끼를 먹었다. 우리집은 아빠와 나 이외에 2명의 구성원이 더 있지만 우리만 유독 닮아있었다. 아빠와 내 입맛은 비슷했고, 이것은 닮은 우리의 입맛에 딱 맞는 레시피였다.




 김치볶음밥 만드는 짧은 10여분의 시간 동안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달갑지 않은 그리움을 밀어내느라 마음이 고생스러웠다.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았다면 나는 이곳에서 그를 더욱 그리워했을 것이란 아주 외로운 생각이 들었고 처음으로 우리의 함께하지 못한 지난날들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유독 외로움을 잘 잡아내는 아이에 대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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