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언덕 훈련을시작하다
마라톤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첫 주에는 주로 시간주 훈련을 해왔다. 특정 페이스나 거리를 정해 놓고 뛰기보다는 40~50분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뛰는 연습이다. 달리기에 거리를 정해놓고서 뛰기만 해 본 나로서는 50분 정도 되는 시간을 뛰는 것도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도 인내는 언덕 오르기 훈련에 비하면 감사한 거였다. 2주 차에 처음으로 언덕 훈련이 시작됐다. 처음 피맛을 느낀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훈련 과제 : 평지-언덕 훈련 8세트
“평지 100m 언덕 50m 이상의 평지 언덕을 전력 달리기의 85% 속도를 유지하여 언덕 오르기”
내 인생에서 언덕을 구두 신고 뛰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때는 대학시절, 대학교는 거의 등산코스와 같았다. 학교 한가운데에 위치한 중앙도서관에는 계단이 끝없이 놓여있었다. 도서관 위로 다시 경사진 언덕에 올라야만 법대 쪽 건물에 갈 수 있었다. 공강 시간에 정문 앞에서 놀다가 수업시간이 가까워지거나 하면 일단 뛰어야 했다. 게다가 이름 순서가 앞쪽이라 제시간에 맞춰서 가기 위해 언덕을 뛰어올랐다. 종아리 근육은 어쩌면 그때 조금씩 단련이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도태된 다리 근육은 지방이 감싸서 더욱 튼실해져 보이긴 하지만 근육이 언덕 훈련을 버텨줄지 의심스러웠다. 속도를 떠나서 과제를 하는 데 충실해지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평지 100m에 이어진 50m가량의 언덕을 찾는 일이다. 집에서 역으로 가는 주차장 길은 언덕이 100m 정도 됐지만 경사도가 낮아서 탈락. 몇 주전 찾았던 공원의 언덕길이 생각났다. 달릴 때 숨이 차게 올랐던 길이다. 봄의 찬기가 덜 가신 달밤에 호수공원을 찾았다. 호젓한 공원에서 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결의에 가득 차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호수 주변을 돌면서 몸을 풀었다. 언덕이 눈 앞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력주다!’
100m 앞에서 나는 장대높이뛰기 도움닫기를 위해 빨리 내달리는 사람처럼 두 발을 힘차게 굴렀다. 절대적으로는 ‘느린’ 전력이겠지만, 말 그대로 나는 온 힘을 짜내 달렸다. 그리고 이어있는 경사로를 두 발을 힘껏 내디뎠다. 언덕 훈련이 평지의 85%의 전력 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차피 평지에서 달리다가 언덕으로 가면 아무리 힘을 쥐어짜도 평지보다 조금은 느려질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생각해 똑같이 전력으로 달렸다. 언덕 50m가 평지 100m 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아니, 뛰는 동안에는 끝이 없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언덕 끝에 다다랐다. 목 깊숙한 곳에서는 피맛이 느껴졌다. 한 세트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남은 7세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었다.
이 악물고 기력을 짜내 언덕을 올랐다. 힘들었지만 멈추고 싶진 않았다. 숨이 차오르고 힘이 들수록 내 숨소리를 느끼면서 문득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여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면서 다음 세트를 위해 기운이 다시 차올랐다.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더 값진 것이듯, 힘들여 이뤄낼 때 성취가 빛나기도 한다. 힘들여 오르고 나면 정상에서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8세트를 마치게 했다. 다음날 근육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여덟 번의 언덕을 오른 나에게 언덕은 조금씩 공포보다는 도움닫기의 장소가 됐다.
상황이 내 마음대로 안 되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언덕 오르기를 생각한다. ‘힘들수록 더욱 힘을 내겠다는 마음’ 그 하나로 올랐던 언덕은 삶에서 언덕들을 만나도 ‘내가 힘껏 오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좀 더 강해진 심폐기능과 종아리 근육은 평지만 달렸다면 얻기 힘들었지 모른다. 언덕은 고통스럽지만 분명 매력 있는 코스였다.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내면 단단해져 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몸도 마음도 언덕을 만나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주자로서는 극히 평범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