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 Apr 04. 2021

최고의 동기부여는 빛나는 메달

첫 하프마라톤 완주기

   

풀 마라톤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첫 마라톤으로 가는 길목에 작은 대회를 두는 건,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동기부여를 위해 패기 있게 하프마라톤을 신청했다. 10km도 몇 번 뛰어보지 않았지만, 풀 마라톤 훈련팀에 합류하고부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구쳤다.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체크해보는 데 대회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4월이다. 달리기의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첫 하프마라톤으로 고른 대회는 '서울 하프마라톤'. 광화문을 가로질러 마포대교를 건너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코스다. 서울 한복판을, 8차선 대로를 신나게 뛸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올라왔다. ‘처음인데 당연히 완벽하지 않지’, ‘풀 마라톤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앞으로 만날 여러 대회들이 풀 마라톤에 가까워질수록 더 힘들어질 테지. 완주에 의미를 두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회 전 날 준비물을 점검했다. 10km 정도 뛸 때는 크게 준비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하프마라톤은 달랐다. 부담감의 무게만큼 준비물이 늘었다. 달리는 동안 에너지를 채워줄 에너지 젤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주문한 에너지 젤 두세 개를 작은 힙색에 넣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다. 나 자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뛰는 ‘러너스 하이’만 믿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페이스를 끌어올려줄 신나는 음악을 1시간 정도 분량으로 선곡해서 채워 넣었다. 비슷한 템포들로 채워 흐름이 무너지지 않게 했다. 신발은 새로 받은 운동화 대신 항상 달릴 때마다 신던 익숙한 신발을 챙겼다. 모든 게 처음일 때 믿을 건 늘 달릴 때 함께해 온 신발 밖에 없었다.      


대회 날이 밝았다. 광화문 일대가 노란색 대회복을 입은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긴장과 묘한 설렘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감독님이 사전에 일러주신 대로 달리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해 대회 인파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두세 번 질주를 했다. 달릴 수 있는 몸을 예열해 만들어 두는 것이다. 동호회 분들 여럿과 인사를 나누고 출발선에 섰다.


이제부턴 혼자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음악의 템포에 발걸음을 기계처럼 맞추었다. 4분 50초-5분 페이스로 밀고 나갔다. 10km까지는 가본 거리였다. 그래서인지 부담이 덜 됐다. 10km가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게임 시작이었다.      


"어, 네가 왜 여기서 나와? “


10km 지점. 길가에서 응원을 하고 있던 지인이 ‘아직 지금 지나때가 아닌데라는 으로 시계를 보며 외쳤다. 아직 발걸음이 가볍다니, 나조차 신기했다. 훈련을 시작하면서 언덕 오르기를     조금 효과가 있었던 건가. 아직 지치지 않은  다리를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일찍 피니시 라인에 들어올  있겠다며 피니시 라인까지 상상의 나래를 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 16km 구간쯤에서 오르막을 만나면서 체력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에너지 젤을  안으로 밀어 넣어도 소용이 없었다.  앞으로 치고 나가는 사람이 점점 늘었다. 출발선에서 인사를 나눴던 지인들이 하나둘 파이팅을 외치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따뜻한 날씨가 이내 무덥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왼쪽 발이 너무 아팠다. 그전부터 조금씩 아파왔는데 19km쯤 되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고통이 밀려들었다. 발을 절뚝이며 한 걸음씩 내딛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한 발을 떼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풀 마라톤을 가려면 하프마라톤의 두 배를 뛰어야 하는 데, 겨우 지금은 하프마라톤이야!’ 스스로에게 다그쳤다.  당장 눈 앞의 1km도 천릿길인데 풀 마라톤의 길이 너무 아득해 보였다.     

 

사람들이 줄지어 응원하고 있었다. 피니시라인이 가까워 온다는 뜻이었다. 멀리서 사진기사가 러너들을 찍고 있었다. 웃어야 하는데 억지로 미소를 지어봐도 표정은 일그러졌다. 간절히 멈추고 싶었지만 풀 마라톤 전에 패배하지 않고 싶었다. 가까스로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다.      


1시간 47분 46초

첫 하프를 절뚝이며 두 시간 안에 들어왔다. 신발을 벗어던졌다. 양말에서는 피가 흘렀고 엄지발톱이 들려서 벌겋게 부어올랐다. 달릴 때는 발이 붓는 걸 생각해서 신발을 크게 신어야 한다는 걸. 그제야 지인들에게 듣고서 알았다. 10km 정도 달릴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첫 하프마라톤 완주 메달을 받아 들고 목에 걸었다.      


명이 똑같은 메달을 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피니시라인까지 온전히  발로 뛰어 받아낸 메달이니까. 10km 힘들었던 내가 20km 넘는 거리를 뛰었고,  시간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기는, 내가 생각보다 많은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주었다. 마음대로  되는 일상이 많았던 지치던 날들에, 작은 성취들이 조금씩 자라났다.      


체력을 길러나가고 내가 가진 정신력의 힘을 믿어가면서, 앞으로 더 먼 거리도 도전해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둥글게 빛나는 메달을 계속 더 받고 싶었다.                     

이전 04화 어쩌다 풀마라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