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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un 15. 2021

때론 멈추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크로스컨트리 150분의 교훈

다행히도 일찍 눈이 떠졌다. 조금씩 아침 기상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몸은 계속 무거웠다. 평일 5일 중 3일은 달리기 미션이 주어졌다. 3일의 숙제를 다 하고 난 금요일 밤의 다리는 내게 말을 건다. ‘내일은 좀 쉬고 싶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토요일 올림픽 공원에서 달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훈련을 위해 올림픽공원에 모이는 시간은 매주 토요일 아침 7시 30분. 집에서 올림픽공원까지 7시 30분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회전까지 불금은 반납이다. 훈련의 강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보니 긴장감도 더해지고 있다. 특히 이 날은 처음으로 ‘크로스컨트리 150분’을 하는 날이었다.      


장거리 마라톤에는 장시간 달릴 수 있는 힘이 필수적인데, 근력과 지구력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크로스컨트리는 언덕을 오르내리며 근력, 지구력, 심폐능력을 기르는 데 좋은 훈련이다.라고 감독님은 말씀하셨다.  

    

올림픽공원의 언덕은 산처럼 가파르진 않다. 하지만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뛰는 것도 아직 적응이 안 된 나 같은 사람에게 언덕 두 시간이라니. 내가 과연 끝까지 뛸 수 있을까 의심부터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한데 모였고, 이어 준비 운동을 했다.


몸을 열심히 풀고 다 같이 속도를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몸만 잘 버텨주길 바라며 뛰었다. 이럴 땐 내 몸밖에 믿을 게 없다.      


달리기 좋은 봄날이다. 하지만 아침 9시를 점점 지나면서 태양이 고개를 들면서 나무 그늘이 없는 언덕을 뛸 때면 이야기가 다르다. 뛰면서 점점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한 시간까지는 버틸만했다. 같이 달리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뛰었다. 감독님은 달리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호흡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점점  수가 줄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드는 에너지를 달리기를 위해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평지를 달리는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시 언덕이 나타났다. 언덕이 시작되는 부근은 완만한 경사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언덕을 오르고 나면   없이 다시 계단이 나타났다.   걷게 되면 계속 걷게  것만 같았다. 모두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같이 따라 뛰는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계속 쳐다보는 일은 진작에 멈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가늠하는  오히려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시간은 점점 점심을 향해가고 있었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길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렇다고 혼자 힘들다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언니 오빠 동생 모두가 힘든데 버티며 달리고 있는   알고 있다. 함께 달리는 일은 도미노와 같아, 내가 도미노처럼 먼저 주저앉으면 다른 분들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거였다.      


몸이 버티기 힘들 땐 마음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달리기를 하면서 힘든 순간은 언제나 온다. 멈추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다른 사람들을 조금 뒤따라 가더라도 달려봐야 한다. 몸이 힘들수록 멀리 내다보는 일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50m 앞을 생각하자, 10m 앞을 생각하자.. 하다가 나중엔 한 발씩만 더 내디뎌보자..라는 생각에 가 닿았다. 조금만 참아내고 한 걸음씩 떼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가빴던 숨이 조금 편안해지고 무거웠던 다리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만 같았다.      


몸이 보내는 고통들에 집중하기보다 마음의 소리에 집중했다. 숨 가쁘게 언덕을 오르고 다시 내리막을 내달리고 평지에서 다 같이 속도를 맞춰 뛰면서, 단지 빠르게 뛰기 위함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10KM 정도는 몸을 다스려야 한다면, 내가 도전할 42.195KM는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풀 마라톤의 반도 못 간 거리였지만 말이다. 먼 거리를 달리면서 많은 이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아마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넬 것이었다.      


 ‘ 살았다..!’


때로 마음이 몸을 이끌고 가야  때가 있는데, 그럴 때가 오늘 같은 날이었다. 마지막 바퀴를 돌아 피니시에 들어왔을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멈추지 않고 가다 보면 점점 강해지는 . 이제  훈련  달을 지날 무렵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조금씩 건강한 구릿빛으로 변해가고, 운동량의 상한선을 조금씩 올려가면서 허벅지에는 근육이 붙어갔다. 훈련이 끝날 때마다 조금씩 나아가는 나를 마주하는 건 혹독한 훈련이 주는 또 다른 보람이었다. 다음 훈련은 뭘까? 나는 훈련을 기다리며, 달라지는 내일의 나를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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