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크루입문기
달리기는 혼자 하기 좋은 운동이다. 아무렇게나 시작해도 그만이다. 건강한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운동화나 운동 복장 러닝 시계는 그다음 일이다. 달리기를 쉽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 때나 가까운 공원이나 강변을 찾아서 달렸다. 힘들면 멈추면 된다. ‘혼자 달리는 맛’에 한동안 그렇게 취했다.
‘혼자’ 달리기가 조금 쓸쓸해진 건 대회에서였다. 대회는 축제 같았다. 들뜬 얼굴을 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서로에게 스티커를 붙여주며 달리기 대회라는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마라톤 클럽에서 단체복을 맞춰 입고 온 어르신들도 다 같이 모여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혼자 있다 보니 대회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총성이 울리기 전에 무르익는 대회의 분위기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 누릴 때 배가되기 때문이었다.
총성이 울렸다. 앞줄의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음악을 들으며 박자에 맞춰 발걸음을 뗐다. 몇 km 지나지 않아 점점 힘이 떨어졌다. 다리는 무거워졌다. 숨을 거칠게 쉬며 한 걸음씩 발을 떼는데, 인도에서 응원하는 팀들이 보였다. 큰 깃발을 펄럭이며 내 앞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을 목청껏 응원했다. 그는 응원을 받는 사람은 손으로 화답하며 발을 좀 더 힘껏 뻗었다. 혼자 출전한 나는 내가 주는 응원을 연료 삼아 달려 나갔다. 줄지어선 깃발들과 환호성, 같은 크루원을 힘껏 응원하며 사진을 찍어주는 이들이 보일수록 나도 응원을 받으며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와서 러닝 크루를 검색했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크루가 좋겠다 싶었다. 여의도에 있는 크루를 찾았고,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혼자 크루를 방문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 같이 단체복을 맞춰 입고 뛰는 이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내 페이스조차 모르는 내가 자칫 짐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퇴근 후 낡은 운동화를 꺼내신고, 집에 있는 운동복을 입고 크루의 문을 두드렸다.
염려와 달리 크루원들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페이스 별로 팀을 나누어 달리기를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자칫 뒤처지는 멤버들이 있으면 크루의 운영진들이 따라붙어 뒤에서 챙겨주니 든든함마저 생겼다. 첫 코스는 여의도공원에서 출발해 한강을 따라 달리고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돌아오는 거였다.
'처음부터 8km라니.'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자!’ 뒤에서 챙겨주는 분들이 있으니 믿고 가보자 생각했다.
6km 페이스 그룹에 들어가 함께 달렸다. 숨이 차고 힘이 들다가도 앞에서 누군가 ‘파이팅’이라고 외치고 같이 뒤따라 외치다 보면 다시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아직 달릴 수 있구나’를 1km 지날 때마다 체감했다. 힘들다고 생각되면서도 아직 달릴 수 있는 힘이 있음을, 혼자라면 이미 한참 전에 멈추었을 거리를 달리면서 생각했다.
중간에 쉬지 않고 8km를 뛴 건 대회 이후로 그날이 처음이었다. 달리기는 혼자 뛰면 편하고 좋지만, 그만큼 타협도 잘하게 되어있다. 같이 뛰다 보면 힘들지만 한 걸음씩 발을 더 떼게 됐다. 8km를 완주하고 나서 물 한 잔씩을 나눠마시고 헤어졌다. 그 후로 나는 그렇게 ‘러닝 크루’의 일원이 됐다.
두 발로 달리는 일은 결국 ‘혼자’ 해내는 일이다. 하지만 두 발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힘이 들 때 힘을 나게 하는 이유는 ‘함께’여서임을 다 같이 뛰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러닝 크루와 함께 달리면서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숨을 헉헉 거리며 따라 뛰어가다 보니 어느새 이전 속도에서는 숨이 별로 차지 않는 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배우고, 조금씩 달려 나가면서 하프마라톤, 풀코스 마라톤의 꿈을 꾸었다. 그 일 또한 혼자 달렸다면 전혀 생각지 않았을 일이었다. 더 멀리, 더 빨리 도전하는 일은 크루 활동을 하면서 시작됐다.
그래서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되는 이들에겐, 일단 뛰어보라고 한다. 어떻게 뛰어야 할지 고민된다면, 러닝 크루를 추천한다. 나와 맞는 러닝크루를 찾아 함께 달리는 동안 실력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라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달리기 대회에서 힘찬 응원을 받으며 발걸음을 떼는 즐거운 일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이지만, 마음으로 같이 뛰는 일을 러닝크루를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