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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Aug 06. 2020

낯선 곳을 달리는 설렘

백야의 나라에서 새벽 달리기


낯선 곳에서 달린다는 건 근사한 경험이다.


해외에서 첫 달리기는 여행이 아닌 출장에서였다. 해외 출장 중 기회가 된다면 꼭 달려보리라 마음먹었기에 캐리어에 운동화와 운동복을 챙겨 넣었다.

이름도 생소한 리투아니아에 도착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6월, 대낮 같은 밤을 보내고 몇 시간 눈을 붙였다. 날이 밝아서인지 시차 때문인지 새벽 4시 반-5시쯤에 눈이 떠졌다.

전날 본 숙소 앞 강둑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있는 길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 시간에 혼자 밖에 나가도 괜찮을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거 아냐’


낯선 곳에서 무장해제 상태로 뛸 생각을 하니 살짝 무서웠다. 나갈까 말까 고민하며 ‘리투아니아 치안’을 검색했다. 정보가 별로 없었지만 치안은 괜찮다는 뉘앙스의 글을 한 줄 발견하고 일단 숙소를 나섰다.

약간 서늘한 공기가 주위를 감싸는 초가을의 날씨였다. 신발끈을 동여매고 지도를 보며 숙소 앞 강둑으로 나왔다. 낮고 이국적인 건물들, 강둑 옆으로 지나가는 트롤리버스를 보며 잔잔히 흐르는 강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버스로 이동할 때 보지 못한 곳곳의 풍경이 눈에 담겼다.

다음날엔 라트비아로 이동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변으로 탁 트인 시야가 시원했다.

‘이런 건 스쳐 지나가면서 보는 게 아니라 가까이서 느껴야 해.’ 지도를 보고 숙소 뒤편을 흐르는 강 맞은편에 위치한 도서관을 점찍고는 다리를 넘어 강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한 바퀴를 돌고 숙소로 들어왔다.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던 던 낯선 도시에 발자국을 남기고 나니 도시가 보다 정겹게 다가왔다.

(좌) 리투아니아의 골목길 (우) 리투아니아의 아침 강변
(좌)강변 옆을 지나는 트롤리버스 (우)라트비아 강변 앞의 도서관


익숙한 동네 집 앞에서는 이른 아침 달리기를 위해 움직이지 않게 되다가도 낯선 곳에서만큼은 내 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게 된다. 결국엔 짧은 출장이어도 운동복 운동화는 꼭 챙기는 필수품이 되었다.


1박 2일 출장도 예외가 아니다. 10시간가량 멀고 먼 중국 출장길에 그냥 쉴까도 생각했지만, 러닝 기록에 새로운 곳 지도를 남기고 싶었다. 저녁식사 전까지 1시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때다 싶어 지도를 켜고 보니 근처에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일단 가보자.  


문 앞에 다다르자 경비원이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살짝 멈칫하다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들어가보자. 짧은 중국어로 윈똥윈똥(운동운동) 하며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띄운채 달리는 몸짓을 하니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생각보다 잘 갖춰진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트랙을 다섯바퀴 정도 돌던 중 30분으로 저녁식사가 앞당겨쟜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다시 뛰어서 숙소로 향했기에 짧은 달리기였지만, 낯선 풍경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낯선 곳에서의 달리기는 추억을 몸으로 새기는 행위다. 두 발로 땅을 내딛고 눈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담고 그곳의 공기를 가슴 크게 들이마시다 보면 그 날의 느낌이 몸으로 흡수되는 듯하다. 낯선 곳에서 달리기를 하고 나면 생경했던 그곳의 시공간이 또렷이 떠오른다. 사진첩을 만들듯 여행 도장을 찍듯, 낯선 출장길에서 때로는 여행지에서 달리는 즐거움을 차곡차곡 쌓게 됐다.


소설가이자 마라토너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도 어느나라에 가든지 꼭 달리기를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도 일찌감치 낯선 곳에서 달리는 재미를 알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묘한 동지애가 솟는다.


"여행지에서 그 동네의 길을 달리는 일은 즐겁다. 주변 풍경을 보며 달리기에는 시속 10킬로미터 전후가 이상적인 속도이다. 자동차는 너무 빨라서 작은 것을 놓치기 쉽고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기가 있고 달릴 때의 기분도 각각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길모퉁이의 모습, 발자국 소리, 보도의 폭, 쓰리게 버리는 습관 등도 모두 다르다. 정말 재미있을 정도로 다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中


낯선 곳에서의 러닝은 그 도시에 내가 인사를 건네는 방식이다. 낯선 곳에 도착해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정다운 풍경을 한가득 담고 돌아오면, 그 곳에 한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러닝이 여행보다 앞서기도 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신청한 김에 여행 계획을 짜기도 했다. 주목적이 러닝인, 여행의 새로운 묘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아직 해외 마라톤을 신청하고 그에 맞추어 여행 계획을 짠 적은 없지만 한 번쯤은 꼭 그렇게 낯선 곳을 설렘 가득 안고 제대로 뛰어 보고 싶다.




              낯선 여행지에서 달릴때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낯선 곳인 만큼 치안을 확실히 알고 뛰어야 한다.

대체로 숙소가 출발점이자 도착지인만큼, 편도보다는 왕복으로 러닝코스를 짠다.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실때 마땅한 곳을 못 찾으면 결국 숙소에서 해결하기가 가장 편하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근처 공원을 검색해 다녀오거나 근처에 눈여겨둔 장소, 유명한 장소가 있는지 살펴보고 왕복 러닝코스를 짠다.

적당한 거리가 필수적이다. 내 몸과 체력에 맞는 무리 없는 거리가 좋다. 주로 아침에 시간을 내어 뛰게 되는데, 여행이나 출장 등 이후 일정이 무리가 되지 않는 방향이 좋다. 주변에 가게가 없다면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수분 섭취도 해야 하니까 거리는 너무 멀지 않게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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