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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un 20. 2020

나는 오늘부터 달리기로 결심했다

어쩌다 시작한 달리기가 바꿔놓은 것들



벌레가 들어갔나.

갑자기 한쪽 눈이 흐릿했다. 눈을 비벼봐도 달라질 게 없었다. 무언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좀처럼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았다. 안과의사 선생님은 병명을 알려주고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라고 했다. '낫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거라니, 참..' 검은 부유물들은 흰 화면에서 컴퓨터 작업을 할 때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머리가 아파왔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냥 한쪽 눈을 감고 일했다. 몸보다 마음이 지쳐갔다.


답답함이 가득 차올라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낡은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하천을 따라 뛰었다. 이내 숨이 차올랐다. 숨이 차도록 달리다 보니 걱정과 불안함, 답답함이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게다가 한밤중엔 한쪽 눈을 감지 않아도 됐다. 사방이 어둑하니까. 달리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눈이 익숙해지는 동안 달리기도 조금씩 습관이 됐다. 3월의 아직 찬 봄기운은 점차 따뜻해졌고 달리는 거리도 조금씩 늘었다. 속도야 어찌 됐든 5km 정도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쯤 뒤엔 혼자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기로 나름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대회 당일. 수많은 인파가 새삼스러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달리기를 즐기고 있었구나싶었다. 친구들, 연인들, 동호회에서 함께 응원하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난 혼자였던지라 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풀었다. 그리고 사람들 무리에 섞여 떠밀리듯 출발했다. 


롯데타워가 눈 앞에 마주하고 있던 다리 위 6km 지점은 아직도 생생하다. 땀에 흠뻑 젖은 사람들. 깃발을 흔들며 응원하는 이들. 음악을 연주해주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는 이들. 같이 달리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사람들.


'혼자만의 싸움' 이런 게 마라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힘들 때 결국 힘이 나는 이유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비록 아는 사람이 없어도 응원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완주를 향해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봄날의 러닝크루. 한여름 뙤약볕 러닝과 한겨울 함께 뛰는 릴레이 마라톤 대회를 거치는 동안 열혈 러너는 아니었지만 달리기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랐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10km 이상은 뛰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내 무릎은 소중하니까. 그런데 지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록을 재고, 풀 마라톤을 뛴 동료들의 후기를 읽고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10,20,30km.. 를 달리는 모습을 헤아려본다.


10km 정도는 몸을 다스려야 한다면 42.195km는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일 같다. 그 먼 거리를 가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건넬지 나는 차마 헤아릴 수 없다. 아직 그 길을 가지 못했으므로.


달리기의 이유는 십인십색일 수 있지만. 가장 순수한 목적은 ‘그저 달리는 것’.이라고 읽었다. 그저 달리다 보니 눈도 제법 익숙해졌고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졌다. 이제 달리기 시작한 초보 러너이지만 많은 걸 배웠고, 또 배우는 중이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한 뼘 더 자라날 걸 믿는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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