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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Mar 28. 2021

어쩌다 풀마라톤

마라톤훈련을 시작하다

여행을 준비할 때 물건을 하나 둘 챙기면서 여행 준비가 시작된다. 무엇을 넣어갈지 무엇을 뺄지 짐을 챙기고,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 여행지를 머릿속으로 그린다.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달릴까, 어떻게 달릴까, 얼마큼 달릴까를 생각하면서부터 마라톤의 여정도 시작한다.      


“풀 마라톤, 한 번 뛰어볼까?”


10km의 완주의 기쁨에 취해 있던 나는, 풀 마라톤은 과연 어떤 세계일까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자라났다. 42.195km란 거리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 상상조차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인들의 체험기를 듣기 시작했다.      


“풀 마라톤을 뛴 사람한테는 '마라토너'라는 타이틀을 붙여. 그리고 10km나 하프마라톤 거리를 뛰면 ‘러너’라고 하지.”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으레  ‘마라톤을 뛴다’라고 하면, 풀 마라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니 그럴 듯싶었다. ‘마라토너’와 ‘러너’는 어떻게 다를까. 마라토너의 세계가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 대체 42.195km를 뛰는 거냐고.     


가보지 않은 길처럼, 풀 마라톤은 두려움과 설렘의 대상이었다. 긴 거리를 뛰기 전 몸을 만드는 법과 40km를 달리는 동안 각 구간별 컨디션 관리법, 부상 방지 법 등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혼자 뛰어보는 건 자칫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풀코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배우고 싶은 생각이 점차 커져갔다.      


한 모집공고가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모집대상

- 나이, 남녀불문 올해 안에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은 자

-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자

- 인생의 희로애락을 달리기로 치유하고 싶은 자     


‘이거다!’


풀코스를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운동화 브랜드에서 같이 훈련할 팀원을 모집 중이었다. 서류심사와 체력테스트를 통해 10명 남짓 인원을 뽑는다고 했다.    

  

제한사유는 없었다. 모집공고에 속도가 몇 이하로 빠르다거나, 풀코스를 한 번이라도 뛰어보거나, 나이가 얼마 이하 거나 하는 제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 게 마음에 들었다. 대신 지원사유를 쓰는 넓은 칸이 주어졌다.      


풀코스를 위한 맞춤형 준비를 혼자 해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부상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왕이면 제대로 배워서 뛰는 게 좋겠다 싶었다. 선발이 안되면, 과감히 풀코스를 뛰는 건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같이 뛰면서 느끼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아 장문의 글을 써서 냈고, 며칠 뒤 서류에 통과됐고, 체력테스트에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풀코스 훈련 전에 당장 눈앞의 체력테스트부터 통과해야만 했다.     


2월이지만 해가 반짝 나서 날씨는 따뜻했다. 운동복을 챙겨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트랙 앞에 모였다. 트랙에서 100m, 400m, 2000m 개인 기록을 잰다고 했다. 어린 시절 운동회에서 계주를 뛰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갑자기 두근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다들 어느 정도 실력인지, 내가 어느 정도 등수에 들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몸을 천천히 풀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트랙 출발선 앞에 두 발을 디딘 채 두 손을 꽉 쥐고 섰다.     


"자 다들 서시고. 준비.. 출발!!"


‘앞으로 치고 나가자.’ ‘밀리지 말자.’

2000m라 트랙 5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너무 빨리 뛰었나 싶었다. 가쁜 숨으로 여자들 중 선두그룹에 섰다. 경기라고 생각하니 승부욕이 솟아났다. 두 세명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겨루었다. 마지막 바퀴에서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대기하고 있던 분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출발선에 서 있는 감독님이 눈앞에 들어왔다. 있는 힘껏 마지막 발을 내디뎠다. 가장 먼저 출발선에 들어왔다. 성인이 다 되어서 체력테스트를 받은 생경한 경험이었지만, ‘나도 할 수 있구나!’라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자신의 실력이 얼만큼인지 알 수 없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대회에 한 번 나가 나를 시험해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잘 되든 못하든지 한 번 나를 시험대 또는 무대 위에 올려 두고 나면 때론 나를 객관적으로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기다림은 언제나 길다.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앞으로 함께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기다리던 ‘합격’이었다.   

  

그렇게 첫 풀 마라톤 도전을 준비하기 위한 기회를 얻었다. 풀 마라톤 대회는 11월이었다. 3월부터 앞으로 8개월 동안 매주 3회 주어지는 과제와 함께 매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훈련이 시작됐다. 팀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와 개인 러닝 타입에 맞춘 운동화를 전달받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마라토너로 가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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