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끄적 Jan 27. 2024

거북이가 죽었다.

반려동물을 키우시나요?


얼마 전에 집에서 키우던 반수생 거북이 중 한 마리가 이 세상을 떠났다. 조금은 활발했던 꼬기(지어준 이름)만 남고 입양했을 때부터 조금은 시원찮았던 밥을 잘 안 먹던 부기(지어준 이름)가 떠났다. 진작에 수족관에 가서 건강한 놈으로 바꿔왔어야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잘 가라 꼬기 미안하다 흑흑. 다음생에는 부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집에서 잘 보이는 나무 밑에 묻어 주었다.


반려동물의 종착역은 아마도 강아지 같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강아지 강아지 노래를 많이 불러댄다. 나도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딸내미와 아들내미의 뒷바라지에 강아지 뒷바라지까지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도 혼자 극구 반대 중이다. 와이프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중립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영원한 담당 일꾼은 내가 될 테니까.


강아지와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애착관계도 형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나 안정적으로나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언젠가는 헤어짐으로 가슴 아파할 것이라는 뻔한 결론이 시작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실은 귀엽기는 하나 밥 주고 똥 치우고 목욕시키고 산책시키고... 이것저것 귀찮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이렇다 할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그냥 작은 것들(?)만 조금씩 우리 집을 걸쳐갔을 뿐이다. 언제나 강아지 대신이었고, 아이들 덕분에 꿩대신 닭이 될 것들을 이것저것 많이 알아보았다. 처음 집으로 들여온 건 노란 병아리 두 마리였다. 작고 귀여워서 아이들도 좋아하고 잘 선택한 것 같았다.


밤마다 삐약 소리가 조금은 거슬렸지만 다행히도 잠이 들면 조용해서 좋았다. 다만 닭똥냄새가 점점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아파트에서 키우기에는 아니다 싶었다 그것도 한여름에... 며칠 지나자 아이들은 관심도 없고 나 혼자 밥 주고 똥 치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조그만 병아리가 똥을 그리도 많이 싸는 줄도 몰랐고, 그보다도 더 놀라운 건 그리도 빨리 자랄 줄 몰랐다는 사실이다.


2주나 지났을까. 그 작고 귀엽던 병아리는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벼슬이 나오고 꽁지 깃이 나오면서 닭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스 안에서 키우던 중병아리는 반쯤 날아올라 박스를 훌쩍 넘어 탈출하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이었다. 날개를 묶어놓을까도 생각했었고, 병아리를 잡으러 왔다 갔다 하다가 이게 뭣 짓인가 싶어서 분양했던 농장에 도로 갔다 주었다. 병아리는 딱 열흘정도만 키우는 게 좋은 것 같다는 결론이다.


두 번째로 집에 들여온 건 메추리였다. 아들내미 친구네가 직접 부화기로 부화를 시켜서 두 마리 주었다. 손톱만 한 것이 너무 작고 귀여웠다. 무엇보다 똥도 적게 쌀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너무 일찍 데려왔을까. 밥도 먹지 않고 오들오들 떠는 것이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눈치였다. 보온등도 사다가 켜줬지만 환경이 안 좋은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실비실 병든 메추리처럼 잠만 자고 있어서 빠른 포기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로 친구네 집에 가져다주었다. 설탕물먹이고 살리는데 나 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다음에도 여러 시도는 계속되었다. 달팽이, 개미,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등등... 곤충들은 아무 소리가 없어서인지 역시나 처음에만 반짝 관심을 보이던 아이들은 점점 아무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 혼자 곤충을 돌보는 파브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도 아니다 싶어 모두 다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햄스터는 아이들이 꽤나 관심을 보였다. 챗바퀴도 돌고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냄새가 많이 난다는 후기들도 많이 있었지만 겪어보니 그다지 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닭똥을 미리 경험해 봐서 그런 줄도 모르지만...


다만 햄스터가 이빨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밤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이빨이 간지러워서인지 집을 이빨로 물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밤이라서 그런지 소리는 굉장히 컸다. 이갈이를 위한 나무도 넣어줘 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점점 관심이 시들어가고 나 혼자 햄스터를 관찰하고 있었다. 작고 귀엽던 햄스터는 자라면서 점점 쥐를 연상케 하고, 또다시 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당근이세요? 행복하게 잘 키워주세요..."


그다음으로는 구피였다. 한 마리에 천 원에서 이천 원이 고작이었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어항에 여과기에 수온계에 수초장식에 모래에 먹이에 이것저것... 알록달록한 구피에 청소하는 알지이터까지 여덟 마리를 샀다. 보기에도 좋았고, 어항을 청소하는 일 외에는 다 좋았다.


다만 이번에는 구피의 번식력에 놀랐다. 구피는 새끼를 낳는다. 작은 새끼가 나올 때 다른 구피 놈들이 먹이인 줄 알고 잡아먹는다. 수초 같이 숨을 곳을 만들어주어야 작은 새끼들이 태어나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운명에 맡기는 것이 과다번식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자연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과 몇 달 사이에 3~40마리까지는 족히 늘어났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어항 속에 들어있던 수초나 숨을 곳은 모조리 뺐었다. 그러다가 꼬리녹음병에 전염되어 어항을 휩쓸고 갔다. 결국에는 다시 여덟 마리쯤 살아남아서 또다시 열심히 번식력을 발휘할 때쯤... 이번에도 보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무료 나눔으로 정리하였다.


이제 지금은 어항 속에 거북이 한 마리만 남아있다. 가장 쉬운 것이 거북이 같다. 반수생이어서 물속과 돌 위를 왔다 갔다 하는데 굉장히 귀엽다. 아직은 믿기질 않지만  자라고 나면 약 30cm나 된다고 한다. 수명도 25년~30년이라고 하는데 언제까지 같이할지는 모르지만 있는 동안은 관심 좀 가져주려고 한다. 이제 또 혼자서만 들여다보고 밥 주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은 아직도 강아지를 바라고 있다. 언제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집에 와있을 것 같다...


"반려동물을 키우시나요?"



작가의 이전글 죽마고우(竹馬故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