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농부였다. 삼십 년도 훨씬 전인 그 옛날, 아빠는 밭농사와 논농사에 이어 토종벌과 소와 닭 등을 키웠다. 횡성 산골짜기에서 키워낸 벌이 만들어낸 토종꿀은 입소문을 타 유명인사들이 찾는 꿀이 되었고, 그 시절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에도 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표보버섯(왼쪽)과 느타리버섯(중간/오른쪽)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빠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자식 교육을 위해 원주로 이사를 나와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정년퇴직을 한 이후에도 자리를 옮겨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빠는 자연을 벗 삼아 살던 시절을 잊지 못했다. 결국 30년이 넘도록 50평 정도의 작은 마당에 틈이 없을 정도로 각종 나무와 꽃, 먹거리 등을 심어서 꾸준히 길러내고 있다. 심지어 닭장을 만들어서 토종닭까지 키우고 있다.
머루, 대추, 배
본가에 같이 살땐 틈만 나면 나를 마당으로 불러내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이름과 키우는 방식 등을 꾸준히 알려주었다. 그땐 그런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항상 귀찮다는 듯 아빠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난 역시나 아빠의 딸이었던 건가, 아니면 자연스레 나이를 먹어가는 것의 영향인 걸까. 점점 식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직접 마당으로 불러내 이야기를 하진 못해도, 가족 단톡방을 통해 전해오는 아빠의 소식에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과 시각을 갖고 보게 되는 요즘이다.
토종벌
오늘은 아침부터 단톡에서 토종벌 이야기가 한창이다. 올겨울을 잘 보내서 토종꿀 채취에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아빠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곤 문득, 나의 왕성한 호기심과 다양한 잔재주는 아빠의 영향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나를 결정하고 시작하면 밀어붙여서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 역시 아빠를 쏙 빼닮은 것 같다. 더불어 아빠와 같은 성실함까진 아니더라도 꾸준한 집념과 의지 역시 그 아빠의 그 딸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