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반복
앞에서 문장을 쓸 때는 주어부터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문장을 연결할 때도, 다음 문장의 주어부터 결정해야 한다.
나는 퇴근길에 고양이를 보았다.
수업 시간에 위 예문을 칠판에 쓰고, 다음 문장의 주어를 무엇으로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면 거의 모든 학생이 ‘고양이’라고 답한다. 왜 고양이를 주어로 써야 하느냐고 다시 물으면, 대부분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고 답한다. 이 사례는 우리가 배우지 않아도 문장을 연결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장을 쓰는 원칙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학생들이 ‘퇴근길’이나 ‘나’가 아니라 ‘고양이’를 주어로 써야 한다고 답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별 시답지 않은 걸 고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쓰기 강사는 언제나 ‘왜 저렇게 쓰는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첫째, 학생들이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고양이 덕후설’이다. 나는 이 가설을 검증하려고, 예문의 목적어를 바꾸어보았다. 예상하듯, 학생들은 목적어가 고양이든, 강아지든, 개코원숭이든 앞 문장의 목적어를 주어로 택했다. 고양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양이 덕후설은 기각.
둘째, 단어의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목적어라는 문장 성분이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어는 뜻이 통하면 주어 생략도 허용한다. 위 예문도 주어를 빼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퇴근길에 고양이를 보았다
남은 문장 성분은 부사구(‘퇴근길에’), 목적어(‘길고양이’), 서술어(‘보았다’)뿐이다. 문장의 주어는 명사일 때가 많으므로, 우리는 직관적으로 다음 문장의 주어로 ‘고양이’를 택하게 될 것이다. 덧붙여, 앞 문장의 목적어를 다음 문장의 주어로 사용하는 예문은 너무나 많으므로, 여기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습관적으로 목적어인 고양이를 주어로 택한 것일 수도 있다.
장황하게 주어 선택의 문제를 설명한 이유는, 문장을 연결할 때, 뒤 문장의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글 내용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아래 예문을 보라.
(ㄱ) 나는 퇴근길에 길고양이를 보았다. 나는 고양이 쪽으로 다가갔다.
(ㄴ) 나는 퇴근길에 길고양이를 보았다. 퇴근길은 추웠다.
(ㄷ) 나는 퇴근길에 길고양이를 보았다. 길고양이는 꼬리가 반쯤 잘려 있었다.
(ㄹ) 나는 퇴근길에 길고양이를 보았다. 본다는 것은 말 이전에 온다.
(ㅁ) 나는 퇴근길에 길고양이를 보았다. 보았다기보다는 보였다.
(ㄱ)-(ㅁ)의 첫 문장은 같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모두 다르다. 이 차이가 (ㄱ)-(ㅁ)을 다른 글로 만든다. 여기에 글쓰기의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어떤 문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장을 쓰려면, 먼저 앞 문장의 단어를 반복하고(‘나’, ‘퇴근길’, ‘길고양이’, ‘보았다’), 동시에 앞 문장에는 없는 단어를 추가하여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다가갔다’, ‘추웠다’, ‘꼬리’, ‘보였다’). 이 과정에서 차이가 무한 생성된다. 이처럼, 글쓰기는 문법 규칙에 따라, 같음과 다름을 배치하여 궁극적으로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