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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Aug 16. 2019

태풍 중에 뜬 보름달의 의미

대한이 빛을 되찾은 날, 인천 하늘엔 달과 무지개가 동시에 떴다

  최근 밤하늘을 본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요즘 달은 무척이나 크다. 요즘의 달이 유독 커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달이 꽉 차는 '보름'에 가까워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보름'달이 뜨는 시간이 우리의 퇴근시간과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겹쳐서 진행되는 것은 주로 한여름인데 보통 이런 시기엔 '장마'가 지속되고 있어서 달을 보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이 시기엔 달이 유독 크고 예쁘지만,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런 날에는 우연히 달을 본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해온다. "혹시 지금 달 봤어? 왜 이렇게 커? 오늘 슈퍼문이야?" 커다란 달을 보고 드는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평소 밤하늘을 좋아하고, 천체사진을 취미로 하는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에도 나는 두 명의 사람에게 이런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겨우 두 명에게 연락을 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이번 보름, 그러니까 지난 음력 7월 15일은 양력으로 8월 15일이었다. 그렇다. 광복절, 대한이 잃어버렸던 빛을 되찾은 날.  그리고 그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역시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별로 특별하게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문학을 전공하고 역사와 천문학 덕후인 나에게 이 숫자는 꽤나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광복절,  빛을 되찾은 날인 8월 15일이
만월, 빛이 가득 찬 음력 15일과 겹치다니!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난 4월 보름부터 무려 4개월 동안 이 날을 기다려왔다.

광복절이니 태극기를 걸어본다


그런데 웬걸. 일본 상륙한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내가 있는 인천 하늘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광복절에 뜬 보름달을 찍기 위해 천체망원경도 준비해둔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일본에 상륙한 태풍의 영향으로 나의 만월이 빛을 잃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달 보름에도 날이 흐려서 보름달을 보지 못했었기에 이번에도 보지 못하면 2개월 동안 보름달을 보지 못한 것이라 아쉽기도 했다.

한반도를 뒤덮은 태풍 '크로사'의 날개

놀라운 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던 비가 달이 뜰 시간이 되자 갑자기 그치더니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재빨리 기상청에 들어가 지도를 확인하니 딱 인천 하늘에만 태풍의 날개가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달이 관측하기에 적정한 높이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신이 나서 아내를 부르며 방방 뛰었다.

그냥 보아도 예뻤을 크고 아름다운 보름달이 내 생에 가장 커다란 달무리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달무리


'달무리'는 달빛 아래로 옅은 구름이 지나갈 때 달빛이 하얀색 테두리를 만드는 현상을 뜻하는 말인데, 경상도에선 '달무지개'라고 불린다. 그리고 실제로 달무리 현상 중에는 무지갯빛 원이 그려지기도 하는데 경험상 평균적으로 1분 이상 관측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15일에는 이 현상을 거의 10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크기는 크지만 두께는 얇은 구름이 1시간 동안 하늘을 지나가면서 장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달무리와 함께 등장한 달은 구름이 바람에 날려간 후 '휘황 찬란'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그 형태가 너무 뚜렷해서 천체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육안으로 '달의 바다'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천체망원경으로 본 8월 15일의 달



태풍 때문에 비가 오기로 한 날에

이토록 밝은 보름달이라니,


1분 보면 행운이라는 달무리를

10분 동안 볼 수 있던 날이라니


빛을 되찾는다는 '광복'절에

잃어버린 달빛에

희망하던 무지개 빛까지 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역사적인 사건에 무언가 사소한 의미를 갖다 붙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어서 그런지, 현재 일본이 저지르는 만행 때문인지, 내가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고 난 직후여서인지 나의 마음에 더 깊게 새겨졌다. 어제는 신이 나서 이 마음과 생각들을 한 편의 글로 온전히 담지 못했지만 이제까지 광복절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기쁨의 순간을 기리는 날이기에 '마음으로만' 기쁜 날이었다면, 어제부터 나의 광복절은 내가 실제로 기쁘고 즐거웠던 날이 되었다. 


기억하겠다. 2019년 8월 15일의 '구름 너머에서 꿈처럼 비춰온 달빛'을.

잊지 않겠다. 1945년 8월 15일의 '악몽에서 깨어나 되찾은 해방의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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