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의 미라는 말은 꼭 뭔가를 끝내지 못했을 때 생각난다
뭔가를 벌이는 것에는 굉장히 익숙하지만, 막상 그 벌여놓은 것을 수습해서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항상 재능이 없다고 느낀다.
사회생활좀 해보겠다고 갑자기 의욕이 끓어넘쳐서 별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모임을 잡고 나면
꼭 약속 당일날은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남은 돈도 얼마 없고 미세먼지도 많고 이렇고 저렇고 해서 가기가 싫어진다.
그리고 꾸역꾸역 그런 데 얼굴 들이밀어서는 나 여기까지 오기 정말 힘들었어, 지하철이 얼마나 막히던지, 하며 주절주절 싫은 티를 팍팍 내고, 그러고 나서 집 가는 길에 아 괜히 왔어, 라고 후회하고.
더 늦기전에 뭐래도 해야지, 하고 일이든 뭐든 착수하면
조상중에 임진년에 왜인 피가 섞인 분이 있는지 암, 모든 일엔 가이드라인이 중요하지, 하고 간트 챠트로다가 WBS 그려서 오늘부터 D+3일까지는 계획을 세워야지, 하고.
막상 3일차 되는 날 이 플랜은 잘못됐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다 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서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D+3일이 30일이 되고 300일이 되고.
새해에 뭔가 다짐을 하면
처음엔 의정부에서 일산가는 외곽순환고속도로마냥 쌩쌩, 아 올 한해는 목적을 달성하는 한 해가 되겠구나 하면서 온갖 모임이란 모임엔 다 가서 내가 올해에 다짐한게 세 개 있는데 여태 그걸 쭉 지키고 있다니까! 라고 으스대다가 한 3주 지나서, 잘 달리던 차가 중동 나들목에서 탁, 막히는 것처럼 금방 의욕이 엥꼬나버리고 털썩, 내가 그럼 그렇지 그런 놈이지 유전자가 만만디야 하며 궁시렁 궁시렁 ..
그렇게 새해가 밝은지도 4주 차, 매 주 글 쓰겠다는 새해 다짐을 깨버리지 않으려 — 이미 조금 깨졌지만 이 정도면 심폐소생술로 살릴 수 있다고 치고 — 뻘글이나마 주저리주저리 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