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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Oct 29. 2022

넷플릭스와 아이스크림




아이의 낮잠시간, 남편의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본다. 남편은 식사시간에 항상 드라마나 영화를 골라서 내게 보여주는데, 대부분 남편이 몇 회 정도 먼저 보았던 것들이다. 남편의 영화 드라마 고르는 안목은 탁월해서 추천받은 것은 늘 재미있다. 처음에는 옆에서 슬쩍슬쩍 안보는 척 구경만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빠져 훌쩍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은 핸드폰으로 하는 게임들을 좋아하지만, 늘 나의 무료하지 않은 식사시간을 위해서 핸드폰을 건네준다. 티브이가 있지만 전원이 연결되어 있지도 켜지도 보지도 않는 우리 집에서 남편이 틀어주는 넷플릭스는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이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피클에 컵라면을 먹고, 아이의 뒤척임에 슬쩍슬쩍 눈치를 보며 넷플릭스를 본다.

블라인드를 내려두어 주변은 극장만큼 깜깜하고, 작아도 보일 것은 다 보이는 핸드폰 극장. 극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가물가물한 육아 일상인데 팝콘이 좀 아쉽지만 여기는 나만의 소극장인 셈이다. 함께 넷플릭스를 보던 남편이 아이 곁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이 나는 요즘 보기 시작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두 편을 마저 보았다.​


우리는 요즘 여름을 맞아 아이스크림에 푹 빠져 있는데, 마트에 가서 10개를 고르면 하나씩 사는 것보다 저렴해 늘 보냉백에 10개를 신중하게 골라서 담아온다. 스테디셀러 돼지바 메로나부터 시작해, 남편이 좋아하는 와일드바디, 요즘 새로 나온 멜론맛이 나는 죠스바, 당 충전을 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이 우리가 담는 단골 메뉴다.​


정신없는 육아 속에서 잠깐의 휴식은 유일하게 식사시간인데 그 유일한 시간도 매일매일이 다르다. 어떤 날은 아기가 기다려주어 꽤 느긋한 식사를 하고 어떤 날은 서러운 눈빛 공격은 물론 놀아달라고 징징 보채서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허겁지겁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밥을 먹든지 아이스크림은 늘 아쉬운 법이어서, 한 번은 아기와 함께 놀며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엄마 아빠만 무언가를 먹고 주지 않으니 아이가 심술이 나는 것은 당연. 다리에 매달려서 아이스크림에 자꾸만 손을 뻗는다. 그렇게 먹다 보면 내가 먹은 아이스크림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꼭 식사 직후가 아니라도 아이가 잠이 든 이후나 혹은 나중에 먹으면 될 일이지만 나는 이상하게 고집이 생겨 식사만 마치면 자꾸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진다. 이건 마치 이것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건 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란 말이야!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 꼭 먹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아이스크림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육아를 하면서 얻는 것도 많지만 포기한 것들도 참 많다. 특히 나는 취미생활 아니 취미 자체를 잃어버렸는데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그렇게 좋아하던 자전거 한 번을 제대로 탄 적이 없다.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없고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니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은 내가 사랑했던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가 주는 즐거움이 너무 그립다.

환한 대낮에 캄캄한 방 안에서 아기가 깰까 봐 한국어 프로그램을 소리도 없이 한국어 자막으로 보면서, 나는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드넓은 공원을 달리는 상상을 한다. 더우면 어때, 다리가 아프면 어때,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 그걸로 된 거지 하며 앞으로 나가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본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넷플릭스, 아이스크림, 그리고 하나 그리고 두울.

언젠가 셋.

이렇게 딱 다섯 가지만이라도 일상의 작은 행복을 만들고 싶다. 그 작은 행복으로 일상을 살아갈 힘을 키우고 싶다.


​오늘도 캄캄한 방 안에서 혼자 자전거를 탄다.


창밖에는 햇살이 쏟아지는데 아까 먹은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페달도 없는 자전거를 타는 발이 차갑다.


​아이스크림 때문,

그래, 아이스크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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