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 둘째를 낳으려고 했다. 특히, 남편은 가족계획을 할 때 이미 둘째 이름까지 지어두고 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 이름은 내 맘에도 쏙 든다.) 남편도 남동생이 있고 나도 언니가 있고 둘 다 외동이 아닌 데다가, 어릴 적엔 언니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20대에 들어서고는 서로 의지하는 부분도 많았던 것도 한몫을 했다. 형제자매가 있다면 느낄 수 있는 장점들도 경험해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생각.
그런데 막상 육아를 시작해보니 첫째 육아를 해보지 않고 둘째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첨되지 않은 로또 1등 상금을 가지고 거창한 인생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한마디로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육아였던 것이다.
계획했던 출산임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갑자기 시작됐다.
추운 겨울 조리원에서 작은 생명을 안고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작은 방 구석에서 반복되는 새벽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내 이름을 잊어버렸다.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나는 엄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엄마가 아닌 그 어떤 이름도 내게 붙지 않고, 심지어 내 이름이 아닌 아이의 이름이 엄마라는 단어 앞을 채운다. 아직도 ㅇㅇ엄마! 하면 걸음을 쉬이 멈춰 서지 못하는 나는, 엄마라는 이름에 적응하지도, 그렇다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 내 이름을 되찾지도 못하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는 꽤나 무거운 것이어서, 나는 종종 내가 엄마라는 이름에 맞는 사람인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는데 아기가 19개월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육아에 적성이건 혹은 아니건 그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새 생명이 자라려면 엄마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고 내가 육아에 맞고 맞지 않고 따위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렇게 적성 따위 잊고 육아에 매진했다.
결혼을 하기 전 “남자 친구 있어요.”?로 시작되던 질문 공세는 결혼을 한 뒤 “아기는 언제쯤?.”으로 시작해 첫째를 낳자 “둘째는 언제 낳아요?.” 로 이어졌다. 내가 육아를 해보기 전에는 인터넷상에서 도는 우스운 이야기 중 하나였는데 막상 이 질문들을 꽤 자주 받게 되니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연애를 하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아기를 낳는 것도 모두 내 자유의지인데 왜 그리 관심들이 많은 건지, 하다못해 어떤 이들은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궁금하지도 않은 신상 털기(?)를 인사치레로 한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궁금해하는 대한민국에서 아기 한 명을 키우며 둘째 질문을 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저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둘째 이야기에 발끈하면서도 나 역시 고민은 있었다. 둘째를 낳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다양한 것들을 고려해야 했는데 나이, 경제적 상황, 첫째와의 터울, 우리의 건강과 체력, 시간적 여유 등 하나하나 따지자면 끝도 없었다.
그런데 그 고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의외로 남편. 둘째 이름까지 지어두고 다복(?)한 미래를 그리던 남편은 생각보다 강도 높은 육아에 당황했고, 첫째도 너무 어려 아직은 때가 아닌 같다고 에둘러 말했으나 사실상의 포기 의사를 비춘 것이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제 막 19개월이 된 아기를 키우는 동안 감정 기복, 체력 부족에 시달려왔고 아기의 활동량이 더 많아지면서 힘에 부치는 날들이 계속됐다.
만약에 둘째를 낳을 거라면 빨리 낳아야 하는데 낳고도 기운이 없어 안아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나의 육아 체력은 늘 방전 상태였다. 한 손으로는 첫째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 둘째의 유모차를 끌고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모습을 보며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모두에게 놓인 육아 환경, 조건, 상황 등은 절대 같을 수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둘째 아니 셋째까지 낳고도 누군가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그건 아직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고, 한 아이를 키우는 수고로움을 이제 막 겪어내기 시작한 나로서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그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아기는 준비해서 낳는 게 아니라던데, 준비해서 낳아도 이렇게 혼이 쏙 빠지는 육아가 그것도 둘이나 갑자기 시작된다면 그게 정말 괜찮을지 나는 정말 의문이다. 독박 육아를 하며 19개월까지 왔지만 그건 말 그대로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움받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
누군가에게 “둘째는 생각 있으세요?.”라고 묻고 싶어 진다면, 그건 넣어두는 것이 좋다. 둘째 고민 셋째 고민 결국은 당사자인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문제고,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째가 그러했듯 둘째도 키워보지 않고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내가 만약 둘째를 낳게 된다면 그것 역시 그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겪어보지도 않고 정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막상 해보면 또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을까? 서로 의지하며 우리가 없을 때도 잘 지내지 않을까? 하는 수많은 둘째 고민 질문들을 던지면서 보내는 주말 새벽.
아기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반, 아기가 일어날 시간.
둘째 고민? 정신 차리자.
다시 아침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