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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Sep 23. 2022

채워지는 새벽


새벽 5시.

아이가 눈을 떴다.

어제 일찍 잠이 든 녀석이니

아무래도 허기가 진 것이겠지.

품에 안아 밥을 먹인다.

그 꼬무락거리는 작은 양손이

다부지게 우유병을 잡고

조용한 방 안에 꼴깍 우유 넘어가는

맛있는 소리만 들리는 이른 새벽.

부른 배를 안고 잠이 든 녀석을

엉덩이부터 머리까지 살포시 내려두고

언제나 그렇듯, 한참을 바라본다.

자주 힘들고, 가끔은 버거운 새벽이었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

때로는 머리가 아팠고, 한숨도 조금 뱉었다.

새벽은 길었고,

아침은 쉽게 밝아오지 않았다.

캄캄한 새벽, 침대 모서리에 아이를 안고 앉아

뱉어지지 못하는 단어들을 빗질하며

혼자 마음을 끓였다.

그 마음에 눌린

새벽의 공기는 납작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자랐고

새벽에 아이를 만나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는 나 없이도 오롯이

이 새벽을 통과할 것이다.

그럴 것임을 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코끝이 찡한 그날.

너무나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그 어느 날.

어쩌면 많이 아쉬울 함께인 새벽.

가만히 아이 옆에 누워

아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숨을 뱉는다.

숨을 들이마신다.

숨을 뱉는다.

아이의 숨과 내 숨이 가만히 더해진다.

그 숨과 숨으로

여름에도 냉기가 살짝 피어오르는

오늘의 새벽을 데운다.

내일의 나는 조금 더 괜찮아질 것이다.

내일의 엄마는 어쩌면 조금 더 그럴듯해질 것이다.

아이는 여전하다.

하지만 빠르게 전진한다.

나는 전진했다.

하지만 느리게 여전하다.

그 보폭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는 나를, 나는 아이를

우리는 서로를 기다려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창이 밝아온다.

채워지는 새벽.

채워지는 새벽,

또 한 번의 채워지는 새벽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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