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서 화분을 키운다.
온갖 잎들이며 꽃송이가 싱그럽게 피어난다.
생명이 피어나는 걸 바라보는 게 좋았다.
내 손을 거쳐 피어나는 생명이 좋았다.
도매상가, 다육 농원 등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식물을 집에 품었다.
매일 아침, 베란다로 나가 정성껏 잎을 닦고
종류별로 기억해 물 조절을 했다.
나는 수돗물로 대충 씻고는
식물에게는 연수기 물을 주었다.
이 즐거운 작업이 끝나고 나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요구르트를 마셨다.
식물들은 각각의 생김새로 자꾸만 자랐다.
집에서는 못 키운다던 까탈스러운 녀석들도
우리 집에선 자꾸만 키를 늘렸다.
그 싱그러운 생명들 속에서
어느 날,
내가 생명을 품었다.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아 가볍게 해치우던 분갈이는 늘 뒤로 밀렸고, 흩날리는 흙과 자갈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흙이 잔뜩 묻은 손을 대충 툭툭 털고 베란다를 나서던 내가 자꾸만 손을 씻었다. 베란다 문은 예전만큼 자주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사계절이 지났다.
모든 생명은 눈과 귀가 있다.
아이의 음성은 그렇게 또렷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였고
불에 덴 듯 하나, 둘 사그라들었다.
가끔, 정신이 들면
베란다에 나가서 이미 죽어버린 가지를 자르며
“미안해.”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정신없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계절은 또 바뀌었다.
나는 그 베란다에 나가 몇 번은 울고
몇 번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들과 함께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예전의 푸르름을 찾아보기 힘든 베란다의 여름.
여전히 창문 밖이 지독히도 그리운 나의 여름.
그런데, 그 잔혹한 여름을 뚫고
다시 생명이 자라고 있다.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그 생명을 바라보며 요구르트를 마신다.
분명 같은 맛인데 단맛이 제법 눅진하다.
그 생명의 맛을 아주 천천히 음미한다.
아주 천천히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