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강의 모유수유
어느덧 산후 50일이 되었고 우리는 그 사이에 방 1칸짜리 빌라에서 방 3칸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남편은 집들이를 한다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치킨이며 피자 같은 기름진 배달음식을 잔뜩 시켰다. 산후조리한다고 자극적이지 않은 한식 위주의 식사를 하다가 나도 오랜만에 포식했다. 수유 가리개로 덮고 수유를 하면서 떠들며 먹고 즐겼다.
이튿날 새벽, 로건은 젖 달라고 보채며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젖꼭지가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깼다. 마치 진통이 오듯 1분 정도 누군가가 젖꼭지를 바늘로 후벼 파듯 아파오더니 5분 정도는 괜찮았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쯤, 참다 참다 새벽 5시에 유방마사지 선생님께 카톡을 보냈다. 그 시간에도 답장을 주시기를 유두 백반인 것 같다고, 많이 아플 텐데 날 밝으면 가서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맙고 눈물 나게 아팠다.
오전 중에 마사지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전직 간호사이기도 한 그녀는 주사기를 가져오셨다. 주사를 놔주시려는 걸까. 그건 아니었다. 바로 그 주삿바늘로 나의 젖꼭지에 끼인 기름을 빼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밤 먹어 댄 여러 가지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 때문에 유두가 막혀 젖이 돌 때마다 아픈 것이라고 하셨다. 스치기만 해도 아픈 젖꼭지를 바늘로 찌른다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나는 무마취 수술대에 올랐다. 피 튀기는 시술을 하는 동안 나는 출산 이후 다시 한번 포효하는 짐승이 되었다. 시술이 끝나고 보니 정말로 굳은 돼지기름 같이 하얀 기름 조각들이 빠져나와 있었다. 피와 함께… 더 이상 아프지는 않았다. 유방 마사지까지 받으니 뚫린 유두로 시원하게 모유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로건에게 젖을 물려보라고 하셨다. 유두가 얼굴 가까이에 오면 배고픈 아기 새처럼 입을 쩍쩍 벌리는 로건이 덥석 젖을 물었다. 유두에 상처가 났을 때 젖을 물리면 처음에는 마치 아기 상어가 젖꼭지를 물어뜯는 듯 한 느낌이다. 찌릿하고 아팠지만 이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유수유가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 미디어에서 모유수유는 평화롭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젖을 물리는 엄마와 나비처럼 살포시 젖을 무는 아기. 하지만 나의 현실은 밤낮 없는 수유에 초췌해진 얼굴의 엄마, 상처 난 유두, 그리고 아기 상어였다.
모유수유 타이머 앱으로 수유시간을 측정해보니 2~4시간마다 15~20분씩, 하루 6~7번을 젖을 물리고 있었다. 하루에 2시간 이상이다. 생후 100일이 지나 수유 간격이 늘고 밤중 수유는 한 번으로 줄어들어서 조금씩 편해지긴 했지만 생후 8개월에 단유를 결심하기 전 까지는 매일매일이 모유 전투였다. 먹는 것도 신경 써야 했고, 늘 모유가 차 있으니 유방도 무거웠고, 최대 4시간 이상은 로건과 떨어져 있는 것이 힘드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는 참으로 갑갑했다. 유축 해 놓고 먹이면 되지 않냐고 쉽게들 말하는데, 안 해본 자는 그런 말 하지 마시라. 유축도 수유만큼이나 시간이 들고, 깔때기며 젖병을 씻고 소독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적어도 20분이 걸리는 노동이다. 유두에 상처가 나 있을 때는 유축기의 압력이 너무 자극적이기도 하고 너무 많이 유축 해 버리면 젖이 그만큼 빨리 차서 다시 젖을 물리든 유축을 해야 하기에 적당히 젖을 남겨 놔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초보 엄마에게는 너무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그냥 자유를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유수유를 고집한 이유는 엄마와 아기가 모두 건강하다면 모유가 아기에게 가장 알맞은 음식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갑갑함을 무릅쓰고 힘든 길을 택한 내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그냥 편하게 분유 먹여~"였다. 편리함을 추구했다면 내가 왜 이 길을 택했겠나? 진심으로 나를 위한다면 내가 수유하는 동안 먹을 것을 내 입에 넣어주던지.
산후 100일 무렵 나는 백화점 문화센터에 줌바 피트니스 출강으로 복귀했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 수유를 하고 나가도 흠뻑 땀 흘리며 수업을 하고 나면 모유가 차서 무겁고 찌릿찌릿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다시 수유를 해야 했다. 가슴이 항상 불어있으니 뭔가 부어 보이고 수업 뛰기도 무거웠다.
생후 6개월이 되자 이유식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수유 횟수가 줄었다. 밤중 수유도 이때쯤 끊고 수면교육을 했다. 내 삶의 질이 확연히 업그레이드되었지만 나는 완전한 자유를 원했다. 고민 끝에 단유를 결심했다. 점점 수유를 줄이며 모유 양을 줄여나갔다. 그때는 수유하는 동안 더욱 정성껏 로건과 교감했다. 수유하는 모습을 셀카로 몇 장 찍어두었다. 막상 끊으려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다.
산후 8개월에 마침내 완전히 모유를 끊고 나서는 몸이 너무 가벼웠다. 아침 수유 대신 아침 조깅을 뛸 수 있었고, 밤에는 남편과 와인도 한 잔 할 수 있었다.
둘째 임신 8개월인 지금, 나는 비장한 각오로 최소 1년 동안 모유수유를 계획하고 있다. 첫째 때 모유 수유하는 8개월이 참 길게 느껴졌지만 지나고 보니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