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 감정 관리소

by 최소망

“결제되었습니다”


딸각딸각 클릭 소리가 연신 들려오며 계속해서 핸드폰 화면에는 “결제되었습니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눈물 화폐 계좌에서는 -500 오슬러, -130 오슬러, -80 오슬러 이런 식으로 차감되고 있었다.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고 처음 맞는 주말, 엠마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토요일 일요일 내내 자다가 이렇게 황금 같은 주말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온라인 쇼핑을 하며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왼쪽 손으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벨기에산 왕관이 그려져 있는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가끔 과자도 몇 개 우걱우걱 집어 먹으며 말했다.


“어차피 눈물 화폐로 결제해도 할부되니까 다음 달에 내가 더욱더 열심히 일하고, 다다음달에 내가 또 열심히 일해서 갚으면 되겠지. 일단 이거는 사자. 이거는 꼭 필요해 이것도 사야지”


하면서 밤늦게까지 쇼핑을 하던 엠마는 마지막 캔에 들어있던 맥주까지 탈탈 털어마시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엠마는 월요일 아침 크리스와 함께 2층 감정 저당 관리소로 향했다. 그리고 또 다시 엠마는 너무나도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간신히 크리스의 도움을 받아 입을 닫고 다시 한번 쭉 둘러보며 크리스에게 물었다.


“크리스, 도. 대. 체 여기는 뭐하는 곳이죠?”


“여기는 저당 감정 관리소라는 곳인데 일종의 전당포 같은 곳이에요. 전당포라는 단어를 혹시 아나요? 너무 오래된 단어인가.. 전당포는 자신의 물건 중에 값이 나가는 것을 맡기고 어느 정도의 돈을 빌려주는 곳이에요. 일정기간 갚지 못하면 그 물건은 전당포의 것이 되죠. 여기 저당 감정 관리소도 마찬가지예요. 여기는 물건이 아니라 기억을 맡기고 돈을 빌릴 수 있어요”


“기억이요?”


“네, 대신 조건이 있는데 슬프고 아프고 힘들고 분노에 가득하고 어려운 기억은 안됩니다. 무조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감동적인 기억만 가능해요”


“에이 말도 안 돼요!, 그런 행복한 기억을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지금 엠마 눈앞에 잔뜩 있잖아요” 라며 크리스가 엠마로 향했던 그녀의 시선을 자신의 행복한 기억을 저당 잡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엠마 역시 크리스를 따라 고개를 앞쪽으로 돌리니 많은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고 몇몇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따지고 있었다.”


“오늘은 나와 함께 방에 들어가서 몇몇의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일 처리를 하는 것을 배우도록 해요” 라며 크리스가 손을 까딱까딱 두 번 접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라는 사인을 했다.


크리스와 함께 상담실처럼 보이는 방에 들어오는 엠마는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크리스 왜 여기는 이렇게 개별적인 상담실이 많은 거죠? 눈물현금센터처럼 은행 창구 형식으로 되어있질 않네요?”


“그건 바로 개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감정의 기억을 듣고 맡아두어야 하므로 이렇게 많은 상담사들과 상담실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매일 이곳에 올라와서 일 하진 않겠지만 가끔씩 상담사가 매우 부족하거나 응급상황에서는 이곳에 일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오늘 배우는 거고요”


상담 실안에는 무엇을 재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카락의 무게도 잴 수 있을 것 만 같은 최첨단 저울과 함께 비커와 스포이트처럼 실험실에서 볼 것 같은 기구들로 가득했다.


엠마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을 찬찬히 보며 크리스에게 질문을 하려고 하는 그때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크리스가 전광판에 손님 이름을 띄우는 버튼을 눌렀다.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는 전광판에는 “에밀리 손님, 10번 상담실로 배정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떴고 10번 방에서는 크리스와 엠마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노크 소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결이 아주 고운 빗으로 모두 쓸어서 아주 높이 틀어 올린 긴 포니테일 머리, 어깨와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손바닥만 한 튜브탑 상의에 엉덩이가 안 보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아주 짧은 미니 스커트, 딱 봐도 족히 12 cm는 훨씬 넘을 듯한 킬힐, 선글라스까지 모두 명품 로고가 아주 크게 박힌 것들로 도배를 한 여자가 듣기 매우 싫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아무거나 꺼내서 가져가고 5000 오슬러 주세요”


엠마는 뭐 이런 대왕 싸가지가 있나 싶어서 한마디 하려는데 표정관리를 매우 잘하는 크리스가 엠마를 가로막고 바로 응대를 했다.


“고객님, 우선은 고객님의 니블을 스캔하여 잔액을 확인해봐도 될까요”


크리스의 말에 에밀리는 약간 당황했지만 금방 표독스럽게 눈을 뜨고 크리스에게 따졌다.


“고객의 신상을 지켜주라고 이런 상담실에서 진행하는 것 아닌가요? 돈만 빌려주면 됐지. 개인 프라이버시가 담긴 잔액을 왜 확인을 해요?”


“고객님이 저희 홈페이지와 브로셔 그리고 아까 들어오신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안내 책자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당 감정은 니블의 잔액이 0이거나 마이너스로 빚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뭐예요? 그런 게 어딨어요! 난 그런 거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으니까 당장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는 공지를 충분히 했고 고객님이 미쳐 읽지 못하셔서 발생된 일에 대해선 책임이 없다고도 정책에 쓰여 있습니다.”


“하!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어? 니블에 잔액이 있긴 한데 5000 오슬러까지 보태서 사야 하는 게 있단 말이에요! 정말 급한 거라고요.”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급하게 필요하신 그 물건이 10000 오슬러 정도 되는 거군요. 실례지만 사셔야 하는 물건에 품목을 알 수 있을까요? 병원비나 휠체어, 재활기구 등 가족 중에 환자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서 구매하시는 품목이라면 현재 니블에 잔액이 있으셔도 저당 감정 가능합니다.”


“그래요?”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저희 엄마가 아프셔서 이번에 병원비가 10000 오슬러가 나왔지 뭐예요. 그래서 제가 원래 가지고 있는 돈하고 보태서 병원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빨리 해주세요. 빨리 병원 가야 한단 말이에요”


여전히 표정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는 크리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병원 영수증이나, 의료기기가 꼭 필요하다는 의사에 소견서를 같이 제출해주셔야만 증명이 가능합니다”


“이봐요!! 지금 장난해요” 라면서 여자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픈 거면 된다며 왜 이제 와서 증명서까지 내라는 거야?”


평온하게 표정을 유지하던 크리스는 아주 싸늘한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했다.


“고객님 지금 모두 CCTV로 녹화가 되고 있는 중이며, 업무방해죄로 고소도 가능하며 이 CCTV 영상은 법원에서 아주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얘기해주셔야 합니다”


에밀리는 더 이상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오늘 샤를 SS 신상이 나오는 날이라 미리 예약을 해놨어. 11시에 찾으러 가기로 했는데 지금 너 때문에 늦어지잖아. 그냥 내 기억 다 가져가도 되니까 제발 돈 좀 줘! 아니 돈 좀 줘요 언니..”

이제 존댓말까지 해대면서 돈을 달라고 하는 그녀에게 크리스가 말했다.


“이렇게 정책을 다 위반하면서도 돈을 다 받아가야 하는 거면 당신의 가장 소중했던 기억을 영원히 가져갈 수도 있게 돼요. 예를 들면 당신의 가족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돈을 가져가시겠어요?”


“상관없어요. 가족들? 그런 사람들 기억 못 해도 돼요. 난 샤를 백만 있으면 된다고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날 좋아해요. 모두가 날 동경해요. 모두가 날 사랑하죠” 그녀의 눈빛은 이미 허영심에 지배당하는 꼭두각시 같이 초점이 없고 흐릿했다.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엠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모두가 당신을 좋아하고, 동경하고, 사랑한다고요? 천만예요! 당신은 그저 허영에 찌들어 눈이 흐려지고 귀가 어두워져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구요? 동경한다구요? 그럴리가요!제발 정신 차려요! 겉에 좋은 것을 걸친다고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기억을 저당 잡고 갚지 못하면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을 하지 말아요. 제발요.”


엠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병하게도 그녀가 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은 이미 그녀가 통제 할 수 았는 상태를 한참 벗어난 것처럼 계속해서 한껏 붉어진 그녀의 두 뺨을 줄기차게 타고 내려왔다.


자신 때문에 우는 엠마를 보자 당황한 여자는 잠시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원 재수가 없으려니까. 눈물 암시장 가면 척척 거래해주는데 내가 한번 착하게 살아 보겠다고 정당한 곳으로 찾아왔더니 이딴 취급받네. 하아~ 잠시나마 착하게 살아보려고 했던 내가 바보지. 아우 열 받아” 하면서 책상에 있는 물품들을 바닥에 싹 쓸어 던져 버리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엠마는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헛된 것에 눈이 멀어버린 그녀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다.

이전 08화눈물 폐수처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