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환철 Dec 05. 2023

함께 맞는 비

우리가 잊어가는 마음들

우리는 흔히 공존과 번영, 함께 누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공허한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사랑과 평화 안에 내가 먼저였고 내 가족이 우선이었다.

최근 기울어진 삶을 경험한 후에야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환자실에 호흡기 하나만을 의지한 채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한 분 한 분의 존엄 앞에 내 삶의 귀함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 시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화성시 노작문학관 관장이자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시고 계신 손택수 님의 시 속에서 희미해져만 가는 그 감정을 두드려 본다.





야구공 실밥은 왜 백팔 개인가

                                                          손택수



야구공은 실밥의 높낮이에 따라 회전력과 마찰력이 달라진다

산맥의 높낮이와 산림의 울울창창 밀도에 따라

지구도 회전에 영향을 받는다는데

가죽 위로 도드라져 나온 실밥은 말하자면

대륙과 대륙을 당겨 잇는 산맥 같은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바느질, 모두 수작업을 한다

지구의 백팔 번뇌가 여기에 있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공이 계산된 제구력에 따라 회전을 할 때

아이티나 코스타리카의 어느 시골 마을

일당 벌이 바느질을 한 소년의 빈혈을 앓는 하늘도 따라 같이 돈다

지문과 손금을 뽑아 바느질을 하는 소년의 노역은

지구의 자전만큼이나 실감이 나질 않는 이야기지만

한때 내게도 소년들 같은 이모가 있었다

닭장 같은 지하 공장에서 철야에 철야

어디로 수출되는지도 모를 옷감을 재봉질하던 소녀,

뛰는 노루발 속 바늘이 손가락을 꿰뚫었을 때

몸속에 돌돌 감긴 혈관이 실패임을 겨우 알았단다

싼 인건비를 찾아 필리핀이나 캄보디아로 떠난 공장들에서

파업 소식은 들려오고, 동남아도 예전 같지 않아 투덜투덜

출장을 다녀온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야구 중계를 보는 시간

엉덩이에 붙은 파리를 소가 꼬리로 냅다 후려치듯 딱!

공이 떠오르면, 나는 괜한 걱정을 한다

실밥이 풀어지면 어쩌나 하고

웬만한 충격에도 속이 터지지 않도록 야무지게 다문 야구공과 함께

지구의 백팔 번뇌도 다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하고




작가의 이전글 삶은 나를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