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국땅에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고향이 같은 이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서울이 아닌 지방 절라도 (전라도를 전라도 사람들만이 내는 발음) 순천 사람을 이 먼 캐나다에서 이웃으로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행운 아다.
그녀의 이름은 '양식"이다. 내겐 엄마 같고 어떨 땐 친구 같고 어떨 땐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 같고 처음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성경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이 바로 떠올랐다. 왠지 이분에겐 양식이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을 것 같고, 함께 있으면 덩달아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질 것만 같은 느낌.
그녀는 40년을 캐나다에서 살아오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외국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맛과 음식들은 변함없이 한국 현지맛 그대로를 고수한다. 그러다 보니 된장과 고추장 같은 손 많이 가는 전통음식까지 직접 항아리에 담가 먹는 수고로움도 마다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채소들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들로 건강한 식탁, 한국 고향을 쏙 빼닮은 상차림을 완성한다. '한국밥상' 흉내만 내어도 타국생활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달래 주기에 충분하다.
세월 탓인지 오랜 시간 타향 살이 탓인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올라치면 나 또한 그녀에게로 휘리릭 달려간다.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2층에서 한달음에 달려 내려오는 그녀, 넘어질까 연신
' 천천히요~ 천천히 내려오세요~'
를 반복해 보지만 반가움에 절로 움직이는 발걸음을 본인도 어찌할 수 없나 보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두 팔 벌려 꼭~ 안아 주는 그녀. 곳간의 양식이 꼭꼭 채워지듯 마음의 곳간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녀에게 가면 특별한 그녀만의 레시피로 만든 국수를 맛볼 수 있다. 구수한 멸치육수에 채친 호박과 버섯이 알맞게 어우러져 맛은 물론이요 색까지 고운 잔치 국수다. 잔치 국수가 다 거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일평생 국수 입에도 안 대던 내가 꼭 그녀의 국수만큼은 두 그릇을 먹어 치우니 먹다 한 사람 기절해도 모를 기막힐 맛이다. 아~ 국수 애기를 꺼내다 보니 입에서 군침이 돌지만 이 레시피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 이곳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초가을이면 늘 그녀에게 만들어 주었던 상추대( 고향에서는 상추 쫑이라 부름) 무침을 소개해보려 한다.
작년 covid-19으로 그녀는 후각을 잃었다. 모든 요리에서 그녀의 탁월한 냄새 감지는 조리의 시작과 끝이었다. 채소부터 생선 육류에 이르기까지 오직 냄새로만 조리시간을 정확하게 감지해 내고 타임머신 이나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완벽한 맞춤형 조리 시간으로 매 요리마다 압도적 기막힌 요리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막중한 임무를 맡았던 후각이 갑자기 기능을 잃게 되자 그녀는 요리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되고 음식의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입맛도 잃어갔다. 따라서 체력도 자신감도 점점 소실되어 가는 듯했다. 그러면서 부쩍 옛날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중에 내가 여러 차례 들었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텃밭 가을 걷이로 얻는 상추 쫑 무침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궁채 라고도 부르던데 이런 고상한 이름으로도 불린다는것을 최근 한국을 방문하고서 처음 알게 되었다. 씹으면 아삭아삭하고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쌉쌀한 게 도망간 입맛이 단박에 돌아오는 맛이라고 그녀는 잊어 버릴만하면 언급해 주곤 했다.
어릴 때 수없이 봐왔던 상추대, 그러나 내 엄마는 결코 한 번도 해준 적 없는 상추대가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절실한 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니 맛의 위력인지 기억의 회귀 본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음식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상반된 입장에서 먹어보질 못한 나는 상상만으로는 짐작이 전혀 가질 않는다.
봄부터 여름동안 푸르 청청 보드랍게 자라던 상추는 어느덧 가을이 되면 거친 대가 빳빳이 올라오고 올라온 대 둘레로 크기도 작고 색도 희멀건 잎들이 지그재그 볼품없이 자란다. 허리깨 만치 자라난 줄기 대 상부에서 작고 노란 꽃들이 피어오르는데 이때 모습은 여름동안 쌈용이 되어왔던 그 상추가 이상추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놀란다. 볼품없는 대위에 노란 꽃이라니...그나마 꽃이니 예쁘다 해야하나... 곧 꽃이 지면 마지막 자신의 본분인 종자를 맺고 그 수명을 다한다.
쫑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상추잎과는 달리 한대에 하나씩 올라올뿐더러 일 년에 딱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식재료다.
그녀는 매해 가을이 되면 엄마의 그 맛을 기억하며 매번시도해 보았다 한다. 맛뿐만이 아닌 그때의 엄마의 사랑을 되새기는 듯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해 보진 못했다 한다. 그래서 인제는 포기했다 한다.
올해도 그녀의 텃밭에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무리 예쁘고 귀해도 사람이건 채소들이건 때가 되면 하나둘씩 화려했던 자신들의 계절을 뒤로하고 마지막 손길을 기다린다. 한국 같으면 씨앗이 맺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늦가을 다음 해 작물을 위해 씨받기를 먼저 할 테지만 이곳 위니펙은 씨가 맺기도 전에 추위가 들이닥치므로 일지감치 겆이를 시작하지 않으면 그나마 아까운 채소들이 쉬 쇄해 먹지도 못하고 다 버리게 된다. 상추를 뽑아 정리를 해야 한다기에 내가 별도움은 안 되겠지만 한달음에 달려왔다. 심심풀이라도 될 요량으로...
상추대가 탐스럽게 올라오는것을 보니 갑자기 그녀의 어머니표 상추쫑 무침이 어떤 맛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 우리 이거 다듬어서 상추쫑 무침해 먹어요. 엄마가 무쳐 주시던 그 맛 기억나시죠?'
나의 요구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대답했다.
"될까? 인제 냄새도 못 맡는데..."
우리는 부리나케 상추잎을 다듬어 보드라운 윗대 부분만 떼내 상추 쫑 한 바가지를 주방으로 가져갔다.
아마도 겉절이 무치듯 간장 고춧가루가 기본양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데치고 씻고 물기 꽉꽉 짜내고(데치고 나니 한주먹 깜도 안됨) 넣을 양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조리 복잡한 나물을 무치듯 무쳐 내는 음식이었다.
주로 간을 보는 일은 내 몫이었다. 마지막 재료인 참기름을 아직 넣지 않았음에도 맛이 정말 좋았다. 나물류를 할 때 참기름은 마지막 양념이다. 음식을 코팅해 주는 역할이므로 간이나 맛을 내는 재료들을 다 마친후에 맨 마지막으로 넣어야 한단다. 또한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내는 조선간장도 꼭 빠지면 안 된단다.
나물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간격을 두고 재료와 양념을 순서대로 섞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녀의 나물을 무치는 모습은 뭐든 한 번에 때려 넣고 요리를 빨리 끝내 버리려는 내 자세를 반성하게 했다. '맛은 정성이라던데... 맞네~, 나물은 정성과 사랑이지~, 엄마의 손맛! '
그녀는 지금 엄마가 그리운 거구나~ 고 생각했다.
'음~ 너무 맛있어요~옛날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이네요 '
"이런 게 손맛이라는 거야~'
그런가 보다 상추쫑을 무치는 그녀의 손을 눈여겨보았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인데 (솔직히 위생상 비닐장갑을 낀다고는 하지만 손에 느껴지는 촉감과 냄새가 꺼려서 장갑을 끼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됨.) 손바닥 전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 시작점부터 끝부분까지 만을 사용하는데 엄지손으로 재료를 비틀어 쥐듯 하다가 튕겨 내는 식의 손동작을 반복하였다. 그녀는 맛은 물론 그녀 엄마의 손동작 하나하나를 기억해 내고 있었다. 내가 예전 할머니나 엄마가 해줘서 맛나게 먹던 나물맛을 죽었다 깨도 못 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들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엔 나물 무치는 그 누군가의 모습이 없다.
"예쁜 건 더 예쁘게, 맛있는 건 더 맛있게... 그래서 오늘 이 무침에는 특별히 마트 것 말고 한국에서 짜온 참기름을 넣을 거야."
"오~ 그래요? 참기름은 역시 한국 방앗간 참기름이 최고죠~"
맞장구를 치며 참기름 통을 건넸다.
참기름을 한 스푼 넣고 다시 주무르기 시작하자 고소한 참기름향이 주방온 가득 퍼져나갔다.
나물맛 내는 게 제일 어려운 나는 이날 나물의 비법을 알게 되었다. 모든 나물 무침 에는 거의 동일한 양념이 들어간다는 것, 그러나 어떤 양념도 나 들어갔네 하고 드러나지 않아야 하면서 자기들끼리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는 것, 재료 본연의 맛이 결코 양념에 방해받지 않고 최대한 자신의 맛을 내게 해야 한다는 것.
정성껏 만든 자신의 상추쫑무침을 맛본 그녀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 맛있긴 한데 이맛이 아녀~ 울 엄마가 해준 맛이 아니네~ 이번에도 틀렸어 "하며 아쉬워한다.
왜 레시피를 안 받아 놓았느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살면서 언젠가 엄마에게 상추쫑 무침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한다. 그런데 엄마가 별게 아니라는 듯 대충 요래 요래 하면 된다 해서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다 한다. 엄마가 대충 가르쳐 주어도 그 맛을 자신이 똑똑히 기억하니 틀림없이 그 맛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때는 이렇게 자신이 그 맛을 그리워하게 될 줄도 몰랐다 한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지 않는다는 걸 지혜로운 그녀도 나중에 알았나 보다.
엄마들은 다들 그런가 보다. 대충 가르쳐 줘도 늘 먹어온 맛이니 금방 배울 거라고... 뭐 몰라도 상관없지 자녀가 찾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본인이 손수 정성껏 만들어 먹이면 되니까. 자신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는 자녀의 모습이 곧 엄마의 행복이니까.
'지금이라도 얼른 레시피를 받으세요'
'이제는 틀린 것 같아, 울 엄마 나이가 지금 100세야~ "
"자식 얼굴이나 알아보면 감사할 일이지~"
70이 넘은 딸이 100세 엄마에게서 레시피를 받아 온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일 것이다. 100세 어머니는 현제 치매를 앓고 계시고 세월에 쇄해 진 그녀의 몸도 한 해가 다르게 내리막이다.
몇 년 전 캐네디언 지인으로부터 요리 초대를 받아 그 댁에서 쿠키 만드는 걸 배운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책 한 권을 내게 보여주었다. 본인이 집필하고 아들이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는데 할머니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홈쿡 레시피가 요리 사진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간간히 요리에 얽힌 스토리도 적혀 있었다. 그곳엔 그날 만들 몬스터 쿠키 레시피도 있었다. 너무나 놀랍고, 새로웠고 감동적이었고, 존경스러웠다. 그 책을 가족 숫자만큼 인쇄하여 가족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그날 나도 우리 가족만의 홈쿡 레시피 북을 꼭 만들리라 다짐했다.
오랫동안 엄마를 만나지 못했던 그녀가 드디어 엄마를 만나러 한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연세에 스스로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당장 상추쫑 레시피를 받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도 그녀의 남은 삶 속에서 그녀가 기억하는 한 엄마의 상추 쫑 무침은 언젠가 그녀의 손끝에서 기어코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엄마를 만나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을이 되면 그녀처럼 꺼내볼 내 기억 장부 속 그녀의 상추쫑무침 레시피를 심어준 그녀가 부디 이 여행에서 힘을 얻길 바란다.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추억들로만 가득 채워 오길 마음깊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