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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Oct 20. 2023

호박전의 자신감으로...

   아버지의 계절

  아무 조건없이 언제나 나의 무한 지지자 였던 아버지. 이민을 간다는 소식에 한국살이가 얼마나 팍팍하믄 그 먼 나라까정 갈 맘을 묵었냐며  못도와 줘서 미안하다고 자꾸만 딸앞에서 죄인처럼 구셨다.


  3년전 우리 가족이 떠나올 그당시 아버지는 정정하였다. 식사도 잘하셨고 목소리도 우렁찼고

매일 자전거로 4km 를 오가시며 스스로 건강도 잘챙겼다. 그렇다 보니 남겨진  아버지가 걱정되기 보다는 나와 우리 가족이 어떻게 타국에서 적응하고 살지가 더 걱정이었다.

  한해 두해가 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갈수록 몸이 쇄해진다는 소식과 기억력이 사라진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집 가까운 요양 병원으로 모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몇달안지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사이 사이 간간히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긴 했지만 일부러 더 그러셧는지 워낙 목소리가 힘차서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 아부지 몸은 좀 어때?, 휠체어 타고 다니신다매, 다리가 많이 아퍼? '

" 오마 내딸~ 괜찮다, 담박질 치고 다닌다 걱정말어~ , 느그 식구들은  몸근강히 잘지내고 있냐~ "

'응~ 아부지, 아부지가 걱정이네~ 나랑 담박질 시합하믄 이기겄어?'

"하믄~ 니까짓것 이기고도 남제~ 은제 올래? 거기 살기 힘들믄 들어와서 아부지랑 살자~"

'5월이면 정리좀 해놓고 함 들어 갈게요~

 5월까지 운동 열심히 해서 다리 걸을수 있어야 해!! 알았제 아부지? '


힘 빠진 내목소리와는 달리 아버지는 전화 할때 마다 힘찼다.  

 거기 살이가 힘들면 아부지 한테 와서 같이 살자고 했다. 언제든 걱정말고 오라고 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맘을  꾸역꾸역 견디고 있을 라치면 아버지의 그말이 힘이 되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많은 부분 달라진듯 보였다.

목소리도 유머도 사라지고  세상을 달관한 사람처럼 평소와는 다른 말을 했다.

 

"니 형편이 안되믄 애써 안들어 와도 된다, 한국 들어오지말고 거기서 니 꿈을 이뤄라~"


그리고는 얼마뒤 , 뭐가 그리 바쁘셨는지 내가 들어가기로  약속한 5월이 되기 한달전에  

 봄꽃이 아직 피어 오르기도 전에  새싹들이 인제아 막 싹을 틔우는 계절 봄에   아버지는 영원히 이세상을 떠났다.

 

 곧바로 달려가도 하루가 꼬박 걸리는데...

 한달음에 달려가도 모자를 판에...

이놈의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마음과 달리 내 몸은 비행기를 탈수 없는 쇼크 상태가 되었다.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은 책상에 혼자 앉아 남편이 휴대폰으로 보여주는 영상으로 대신했다.

그때는 온라인 서비스도 없었고 페이스톡 서비스도 없던때다.   장례식이 모두 끝난  일주일 뒤 그제야 나는 고향땅 아버지가 묻힌 봉분앞에 설수 있었다.


거기서 니꿈을 이뤄라!! 거기서 니꿈을 이뤄!!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환영 처럼 뇌리를 맴돌았다.

섭섭했다. 언제는 오라하더니 ... 좀 더강하게 말씀하시지... 어여 들어오라고...  


  내꿈을 이뤄라고?

내 꿈이 뭔지도 모르는데...뭔내꿈?  아버지는 알았을까? 내꿈을?

내꿈이 뭐지?

  알수도 없고 할수도 없던  내꿈. 이때부터 였을까?  그 꿈이라는 것을 찾고 꾸게 된것이?

 

  영주권 때문에 요리를 하게 되긴 했지만 내가 요리하는걸 좋아하고 새로운 음식을 배우는걸 좋아하고 레시피를 정리하는걸 좋아하고  글을 쓰는걸 좋아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꿈이 뭔지는 몰라도 좋아하는게 뭔지는 알았다.


내가 언제부터 요리 하는걸  좋아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초등학교 4학년때 부터 였던것 같다. 우리 집에서 내가 조리 란걸 를 할수 있도록 허락된 공식 승인나이는 초등 4학년 11살때 부터다. 또래 아이들 중에 가끔 일찍 요리란걸 해보는 아이가 있었다.

 계란 후라이를 해봤다는둥, 라면을 끓여 봤다는둥, 밥을 해봤다는둥.

  에헤~~이,  밥은 너무 갔지 않은가! 라면 까지는 어찌 믿어주겠는데 밥을 할수 있다는건 살짝 의심이 가는 문제다.  나름 못믿는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처럼 전기만 꽂으면 해결되는 그런 간단한 시대의 애기가 아니다.

  바야흐로 지금으로 부터 35년전인 80년대를  살던 시골마을 애기다. 

  

  그때 그시절엔 전기 밥솥이나 쿠쿠같은 압력솥도 없었고 가스렌지나  전자렌지도 없었다.  요즘 주방  필수아이템인 에어프라이어는 상상도 못했다.

  조리를 할수 있는 기구는 오직 아궁이와 석유곤로가 유일하다. 곤로라는 물건을 봐본적 없는 요즘 세대를 위해  약간의 설명을 해보자면 곤로는 석유로 에너지를 만들고 구조는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맨밑바닥은 석유를 넣는 통형태로 되어있고 중간은 심지와 심지를 연결한 구멍 송송뚫린 프레임이 있고 맨위는 조리를 하는 삼발이가 얹어 있다.  이 곤로 위에서 냄비밥을 한다는건  고난위도의 스킬이 필요하다.

물양과 불조절,그리고 시간, 이삼박자가 딱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되지도 질지도 않는 윤기 촤르르 차진밥이 완성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계란후라이 하나만 해와도 "맛나게도 했네~ " "부드럽게 잘 했네"  하며 엄청 칭찬해 주었다..

요리중 밥짓기는 내게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였다. 매번 진밥을 하는데도 아버지는 잘했다 칭찬이었다. 아버지의 칭찬에 의심이 가기 시작 할때쯤 알게된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칭찬은 빈말이 아닌 진실로 칭찬이 맞았다. 아버지는 진밥보다는 약간 고슬한 밥을 좋아했고 엄마는 위가 안좋아 물기 많은 진밥을 좋아했다. 그래서 고슬한 밥은 아버지가 진밥은 엄마가 각각 드시기 좋으니 나의 밥짓는 스킬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저 밥을 하기만 하면 언제나 칭찬을 듣는거다.    





무더운 어느 여름 나른한 오후

 아버지는 점심을  마치고  식곤증이 몰려오는지 쪽잠을 주무셨다. 해가 쨍쨍한 한낮에는 들에나가 살피는 일을 멈춘다. 한여름 농사일은 이른 아침과 해가 한풀꺽인 오후로 나누어 해야 한다.  욕심내고 무리하다보면 일사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오전 1차 들일이 끝나면 2차는 늦은 4시 이후에나 다시 시작되고 해가 다 넘어간 으스름녁이 되어야 끝이 난다.

    엄마는 집앞 텃밭에서 솎아온 상추며 열무를 다듬고 있었다.

나는 채소들 사이에서 어른 두주먹 크기만한 동그란 호박을 발견했다.  요것으로 보드라운 호박전을  지져 먹으면 어떨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일어나 논을 둘러보러 가기전 새참으로 좋겠다고 했다.  

본격적인 호박전을 할 준비를 하였다.

고향식 호박전은 동그랑땡 모양이 아닌 애호박을 채썰어 부치는 부침개 형태다 호박을 곱게 채서는건 엄마가 도와 주었다.

계란 2개, 밀가루, 소금, 아버지는 달달한걸 좋아하니 설탕도 한숟갈 넣어본다. 사실 서너 발짝만 떼어도 텃밭에 깻잎과 쑥갓 청량고추가 널렸지만 아버지는 거치른 맛보다 부드럽게 호박만으로 부치는걸 좋아했다.  

곤로심지에 불을 붙인후 불을 줄이고 키우고를 반복하며 한장 한장 부쳐나가기 시작했다.

한장씩 부쳐 낼때마다 설탕을 살랑살랑 뿌려준다.

절반이상 엄마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나름 괜찮은 호박전이 완성 되었다.

쟁반에 호박전을 보기 좋게 펼쳐 담아 마루로 내갔다.  아버지는 언제 낮잠에서 깨었는지 이미 장화를신고  들로 나갈 채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출출한 김에 잘되었다, 누딸이 요래 야무지게 했당가, 어디 맛을 좀 봐보자"

 아버지는 기특해 했다.


"와따 맛나다!! 옆집 아짐도 부르고, 쩌기 고샌도 좀 불러와라 이잉~ 호박전에 한잔하고 가야 쓰겄다."

곧 아버지가 초대한 손님들이 도착했고 시골마을의 작은 파티가 시작되었다.

들일을 마친후 혹은 시작전 종종 있는 일이다. 오늘은 내집에서 담날은 네집에서 귀한 음식이나 안주꺼리가 있을때면  반드시 이웃과 함께 했다.

봄에 담궈 놓은 솔잎주를 한잔씩 돌리며  아버지는 좀전 내게한 칭찬을 또 반복하였다.

"왐마 요걸 우리 딸이 했다네  맛이 아조 기가 막히네! 기가막혀!  안그런가? "

이 물음에 응하는 이웃분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지극히 개인적 평을 넘어 좀더 진실에 가까운 객관적 지표를 만들어 낸다.  

  오메~ 저 째깐한( 조그만) 손으로 부치기를 다 했다요? 누딸이 저리 야물다요~"

"누딸이긴 누딸이여~ 신양옥이 딸이제~~ 하하하하,"

아버지 최고의 칭찬은 '신양옥이 딸!! '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당당히 넣어 자신의 딸이라고 외쳐주는 것이다.

알수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뭐든 할수 있을것 같은 용기도 생겼다.

 

 37살 이민을 결정하게 된것도 혹 이날 얻은 호박전으로 부터 얻은 자신감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50이 된 이나이에도 꿈을 꾼다.

외국에서 김치를 파는 CEO 가 되고 싶다는 꿈

종이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경영자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


아버지는 나에게 주문을 걸어 놓고 가셨다.

"거기서 니꿈을 이뤄라~~~~"

  




       



           호 박 전


< 재료 >


애호박1개 ,실파3줄기,  계란2개, 말가루200ml, 물100ml, 설탕1/2T, 소금 약간



< 만들기 >

1.호박을 곱게 채썬다. 실파는 송송썬다.

2.밀가루, 계란,물 ,설탕, 소금 넣고 잘섞어준다.

3.기름 두르고 부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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