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기준점이 없기에 이 횟수가 많은 편인지 적은편인지는 알수 없지만 가족의 입장에서는 2~3년씩 떨어져 살다 잠깐 만나기 때문에 좀더 자주 만날수 있기를 바라고 타인의 시선에서는 왜저렇게 자주 들어가는 거야~ 하고 생각 할수도 있다.
어떤이들은 말한다. 왕복 비용이며 양쪽 생활비며 전체적인 가정경제를 따져 봤을때 가까운 미국이나 혹은 캐나다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는게 훨씬 합리적이지 않냐고.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 한다 너무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어쩌랴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노는것을, 나는 3년이 한계인듯 하다. 1~2년은 아무 요동 없이 잘살아간다. 꼭 한국이 아니어도 한국음식이 아니어도 전혀 문제 될게 없다.
그런데 꼭 3년째가 되면 슬슬 가슴에 뭔가가 올라오면서 심지어 꿈속에서도 고향집을 달려간다.
이건 병이다. 남편은 종종 말했다. 병이라고, 큰일이라고...
그러니 내게는 그어떤 합리적인 사고도 경제적인 설득도 통하질 않는다. 평소 힘차게 살아가다 갑자기 그리움이 사무치면 무조건 가야 하는거다 다른곳은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오직 내고향 한국으로
정작 한국에 오면 별다른 특별한것을 하지는 않는다. 값비싼 음식을 먹거나 호캉스 여행같은 통상 생각하는 그런 특별한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가족을 만나는일, 형제들과 못나눴던 애기들로 밤을 지새우는 일, 사랑하는 이들과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일 ,비록 텅빈 집일지라도 내가 자랐던 시골 집을 둘러보는일, 언덕빼기 팽나무 아래 텃마루에서 고향 바다를 내려다 보는일, 엄마 아버지의 모습이 일렁이는 들녁을 바라보는일, 이런 소소한 일들을 한다. 남편과 아이들과 시아버지와 나, 이렇게 여섯이서 옛날 아버지 살아생전에 즐기시던 시골 맛집을 탐방하는일도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외국에서 살다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당신의 빼브릿 영화가 무엇입니까? 빼브릿 과목은? 빼브릿 음악은? 빼브릿 음식은? 음식을 물어오면 다른것들은 잠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때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나의 홈타운 음식이라고.
한국에서라면 특정한 한 음식만 생각 났을테지만 여기서는 그 계절 계절마다 따라오는 고향 음식이 다르다 . 봄에는 나물이 여름에는 열무같은 여름 김치가 가을과 겨울에는 또 각자의 어울리는 음식들이 각각 따라온다. 그래서 모든 고향음식이 나의 빼브릿 푸드가 된다.
지금 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는 마을 부녀들의 굴체취 모습과 함께 굴이 생각난다.
굴은 김장철을 기점으로 한달전부터 김장이 끝날때 까지 값이 좋다. 장사치들은 이때 재미를 톡톡히 본다. 고향 갯벌에서도 이때를 맞추어 굴양식을 한다.
봄에 씨앗을 심어 여름내 자란 굴은 늦가을이 되면 채취에 박차를 가한다. 어촌계장을 중심으로 몇몇 아저씨들의 지휘하에 동네 아주머니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바닷가 초입 모래사장위에 죄다 모인다.
추수의 계절 가을, 벼를 추수 하는게 남자들의 잔치라면 굴을 추수하는 일은 부녀들의 잔치다. 그러고 보면 굴은 순수 바다가 키워내는 공력없는 농사라 농가의 효자중의 효자다.
굴 채취 작업은 발이 허벅지 까지 빠지는 갯벌 작업이라 복장을 단단히 하지 않으면 추위와 고된 노동에 며칠씩 앓아 눕는 불상사가 생긴다.
이 굴채취 작업을 한번이라도 목격한다면 자신의 엄마와 우리 동네의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멋진 여인들인지 존경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채취해온 굴은 이집 저집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손이 굴비린내가 날정도로 까고 또깠다 일이 끝나 장갑을 뺄라치면 손이 굳어 잘펴지질 않았다.
일년내내 갯벌먹고 자란 굴들은 포담스럽기 그지 없다. 이게다 돈이 되어 돌아오니 기특할 따름이다. 간혹 손바닥만하게 큰 것도 있어 자랑이라도 할라치면 아버지는 얼른 낚아채 부엌에서 소주 한잔을 부어와 안주삼아 잡수셨다. 원래 크고 보기좋은 것은 주인몫이라며, 주인이 젤로 좋은걸 먹어야 한다는게 아버지의 장사 철학이다.
굴철이 되면 많은 양을 팔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많이 먹기도 한다.
굴철의 첫입은 뭐니 뭐니 해도 생굴이다. 소금에 서너번 씻어 물기를 쪽 뺀 다음 아버지는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먹는걸 좋아했다. 여기에 소주 한잔이면 세상 시름이 잊힌듯 했다.
역시 혼자는 아니다. 동네 이웃들과 함께다 같은술 같은 안주지만 오늘은 내집 내일은 네집이다 그래야 아내에게 덜미안한건지 그들만의 암묵적 법칙 이다.
생굴은 김치양념에 버무려도 맛있고 김치속에 함께 넣어도 맛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무생채에 넣어 먹는 거다 초반에는 밥과 무생채를 따로 먹다가 중간쯤엔 무생채를 밥에 비빈다. 새콤 아삭한 무를 씹다가 간간히 굴이 씹히면 굴 달큰함과 코끝에 퍼지는 바다향이 마치 아로마 세라피를 받은것처럼 머리가 상쾌해졌다.
생굴이 물리면 아무 양념 없이 굴자체를 삶아 먹는다.
삶은 물을 가라 앉혀두었다가 굴과 함께 섞어 피굴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피굴은 아버지가 제일 좋아했다. 참기름 마늘 쪽파를 넣고 냉장고에 두면 시원한 피굴이 되고 차가운게 싫으면 따뜻하게 데워 온피굴을 만들어 먹는다. 먹을때는 잘구운 재래김을 손바닥으로 비벼 고명처럼 얹어 먹는데 굴에 김이 더해져 바다향이 더욱 진해진다.
동생은 볶은 굴을 좋아했고 언니는 굴전을 좋아했다. 엄마는 무슨 굴을 좋아했을까? 엄마가 특별히 굴요리 어떤것을 좋아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무난히 다 잘 드셨던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도 같다.
아마도 엄마는 굴이 징글징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양껏 먹고 남은 굴은 씻지 않고 바닷물을 넣어 그대로 냉장고에 보관한다. 바닷물을 넣은 탓에 쉬 상하지 않아 겨울내내 김치국이며 된장국이며 미역국, 무국등 각종 국물 요리에 귀한 대접을 받는다.
몇년전 봄 네번째 한국을 다녀갔을때의 일이다.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를 갈 요량으로 순천 와온이라는 곳에 들렀다.
도착 하자 마자 바다가 펼쳐졌고 부두가 보였다. 우리는 배도 부르고 걷자 싶어 카페를 지나쳐 부둣가로 차를 돌렸다.
부둣가를 걷다가 우연히 갯펄쪽을 내려다 보는데 물이 빠져 굵은 바위들이 드러나 있는 그곳에 굴들이 다닥다닥 허옇게 덮여 있었다.
'앗! 저게 뭐야? 저거 굴 맞지?'
농사일이나 바닷일을 전혀모르는 도시남이 알턱이 없지만 나는 이런 곳에 저렇게 많은 굴이 있다는게 신기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와~ 굴맞네~, 어찌 봤어? 나랑 아버지는 그렇게 자주 왔어도 한번을 못봤네? 찾아낸게 신기하네~"
위험을 무릅쓰고 강행해 굴캐기에 돌입했다. 단단히 붙어 있을거라 생각했던 굴들이 돌로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우수수 떨어졌다. 나중에는 시아버지 까지 합세해서 우리는 금방 쌀포대에 가득굴을 담아왔다.
이제 이 굴들을 까는게 일이다. 돌아오면서 철물점에 들러 굴전용 칼을 사왔다. 까는 일은 남편과 나 둘이서만 해야 한다. 남편에게 생전처음 굴까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장갑을 양손에 끼고 굴을 왼손에 단단히 잡은후 오른손은 칼을 잡되 손잡이 끝에서 잡으면 손을 베기가 쉽다그러니 칼은 날끝에 가깝도록 잡아주는게 힘조절에 용이하고 보다 안전하다.
먼저 칼을 껍질 중간 부분에서 깊숙히 넣어 살짝 비틀어 준다. 곧 꽉다문 굴입이 칼에 의해 느슨해지면 이때 윗덮개를 힘주어 올려주고 윗덮개에 붙어있는 관자 부분을 칼로 긁어준다. 그러면 덮고 있던 껍질이 몸체에서 쉽게 분리되니 뚜껑은 떼어내 버리고 왼손에 쥐고 있던 몸채속에 있는 굴도 관자부분을 긁어 굴알맹이만 쏙빼내준다. 이렇게 아주 쉽게 굴까기가 끝난다. 잘할수 있겠지?
그러나 결코 초보에게 굴까기가 쉬운일이 아니다. 어릴땐 너나 나나 모두가 하는 일이라 참 쉬운일이라 생각했는데 남편이 굴까는걸 보고서야 알았다.
이제 보니 이 굴까는 기술이 참 특별한 기술이었다.
남편의 굴까기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오랜 공을 들여 겨우 하나 까면 그나마 그 까진 굴도 저마다 엉덩이가 찢겨 비주얼이 영 별로다. 하지만 손을 베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내 손을 보고 놀라며 구경했다. 이 특별한 기술덕에 굴 한자루는 오롯이 내몫이 되고 말았다. 어릴때부터 수없이 했던 일이다. 그거에 비하면 요까짓 굴 한자루 쯤은 콧노래가 나온다. 수십년 만에 해보는 일이 어찌나 재밌던지 자루의 굴들이 줄어드는게 아쉬울 정도 였다.
그날 와온에서 캐온 굴로 남편이 좋아하는 굴전을 만들어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굴무생채를 못 먹어 아쉬었지만 봄 굴은 날것으로는 먹는게 아니므로 할수 없다. 남은 절반은 아이스 박스에 꽁꽁싸서 멀리 화성에 사는 동생에게 보냈다. 동생은 굴 장조림을 좋아하니 볶음이나 장조림을 해먹었을 것이다.
결혼 이후 굴채취작업을 본적도 굴을 까는일도 더이상은 없다.
그러나 지금도 내고향마을 에서는 이맘때쯤 굴 채취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한동안은 누가 나에게 what's your favorite food? 를 물어온다면 나는 당연히 '고향 음식 굴'이라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