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낸 굴은 잘 받았냐고 시장이나 코앞 마트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을 테지만 옛날 추억을 살려 직접 하나하나 깠으니 귀찮다 말고 맛있게 먹으라고 당부도 하고 굴을 얻은 썰로 수다도 떨겸 겸사겸사 였다.
동생은 이미 한차례 볶아 먹고 굴장조림을 해놓았노라고 했다.
굴장조림을 아직도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그걸 어찌 잊을 수 있냐며 자신의 소울 푸드라고 하였다.
동생의 소울 푸드인 굴장조림은 아버지가 나름 굴 저장법을 연구하여 개발한 레시피다.
굴 철은 찬바람이 부는 가을부터 겨울 동안이 제철이다.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고 익히든 날것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봄이 되면 굴은 인기가 뚝 떨어진다. 봄은 굴이 산란을 하는 시기로 알싸한 독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겨울처럼 생으로 먹었다간 배탈이 나서 고생을 톡톡히 하게 된다.
봄이 되면 엄마의 손은 엄청 바빠진다. 농번기 틈틈이 자연에서 나오는 먹거리들을 채취해서 조촐한 밥상이나마 제철 영양식으로 올리려면 잠시라도 손을 놀게 할 수 없다.
쓴 물이 오르기 전 가장 보드라울 때 쑥도 캐야 하고 겨울 동안 땅속에서 견디다 이제 막 올라온 갖가지 나물채소들은 저마다 보약이라니 이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 남이야 관심이 있든가 말든가 바닷가 돌쩌귀 위에 널찍 널찍 붙어있는 굴을 캐는 일도 지금이 적기다. 경쟁자가 없으니 사부작사부작 금세 한 망태를 채울 수 있다.
굴은 온 가족 좋아하는 영양식이다. 대게는 겨울 내내 먹었으니 독성 있는 봄철에는 피하는 게 상식이다
그 호황이던 굴이 뚝 끊겨 파는 곳도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 집은 달랐다. 벚꽃이 피는 봄 5월이 굴의 2차 전성기다.
이 사실은 우리 식구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굴장조림 또한 잠시나마 우리만 아는 비밀 레시피다.
나중에는 온 동네가 다 아는 동네 레시피가 되기는 했지만...
엄마가 돌에 붙은 굴을 캐오면 아버지와 우리는 열심히 굴을 깠다. 돌에 붙은 굴은 갯벌에서 자란 굴과는 달라서 고향에서는 석화라 부른다. 석화는 양식 굴보다 씨알이 작지만 바다 특유의 비린맛이 덜하고 단맛과 고소한 맛은 더 진하다 아버지는 굴 중에 석화를 젤로 좋아했다. 굴이 다 까지면 아버지는 곧바로 굴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마늘 고춧가루 갖은양념을 넣어 짜글짜글 볶아주기도 하고 장조림을 해서 봄철 내내 밑반찬으로 먹기도 했다.
벚꽃봄에 나오는 굴은 겨울 굴과는 조금 다르다. 겨울 굴은 투명하고 물이 많으며 윤기가 나는 반면 봄 굴은 빈 공간 없이 가득 알이 차 있고 물기가 거의 없는 텁텁한 우윳빛깔을 띤다. 통통하고 탱글 한 것이 맛은 더욱 부드럽고 고소하다.
아버지 레시피 굴장조림은 독성의 문제와, 봄이라서 쉬 상할 수 있는 보관법의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주었다. 조리 방법도 참 쉽다. 물과 간장을 잘 배합하여 국물이 자작자작 남을 정도가 될 때까지 졸여주면 끝이다. 식혀 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봄철 내내 귀한 밥도둑이 된다.
콩자반처럼 한 알 한 알 집어먹기도 하고 국물에 자작자작 비벼 먹거나 쌈에 올려 먹기도 한다. 매 끼니 올라와도 질리지 않고 맛났다.
겨울 굴도 이렇게 볶거나 장조림을 할 수 있지 싶겠지만 겨울굴은 물이 많고 알이 꽉 차있지 않아 볶아 놓으면 씨알이 쪼그라 붙어 양도 적고 맛도 떨어진다.
특히 동생은 겨울 굴보다 이 봄에 나온 굴 반찬을 좋아했다.
자녀 중에 제일 먼 곳으로 결혼을 해간 동생은 늘 아버지의 그리움이었다.
뭔가 동생이 좋아할 만한 거라도 생길라 치면
"어허! 우리 막둥이 잘 있나? 우리 막둥이는 우짜고 있다냐? 우째 요새 통~ 소식이 없당가? 요거슨 우리 막둥이가 좋아하는 거인디... " 하면서 못내 아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아버지 나이 57세 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낳은 애달픈 딸이다.
바람에 날릴세라 땅에 꺼질세라 늘 걱정이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막둥이 었다.
어릴 때 내 기억에도 동생은 유독 약하고 유독 많이 아팠다.
벚꽃 흐드러진 어느 봄날
아버지는 엄마손 꼭 붙잡고 동생네 집엘 찾아왔더란다.
한 손엔 보자기에 꽁꽁 싸인 커다란 반찬통을 들고서 버스를 세 번을 갈아타야 하는 그 먼 길을 물어 물어 물어서.
뚜껑을 열어보니 이것저것 여러 반찬들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굴장조림이 통 안 가득 들어 있었다 한다.
두고두고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한다.
이 무거운걸 어찌 바리바리 들고 왔는지 가슴이 먹먹해 졌더란다.
겨우 하룻밤 주무시고 농번기 일손이 바쁘다며 훌쩍 떠나신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동생은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한다.
아직도 굴장조림을 기억하냐고 묻는 나에게
동생이 전해준 평생잊을수 없는
어느봄... 아버지의 뒷모습... 굴장조림...
오랫동안 동생만이 알고 있던 스토리이다.
나에게 동생은 늘 어릴 적 그 모습이다.
귀엽고 예쁘고 말잘듣는 착한 아이, 나이도 않먹고 늙지도 않은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 순진한아이
철모르는 아이. 동생은 그랬으면 좋겠다 세월이 비껴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나보다 더깊이 인생을 느끼고 있었다.
큰일이다. 벚꽃 피는 봄이 되면 머지않아 동생도 우윳빛 탱글한 석화를 찾아 나설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더더욱...
그리고 아버지를 추억하며 굴장조림을 만들어 먹겠지...
굴 장 조 림
<재 료 >
* 한그릇 양에 맞추어 재료 조절*
굴, 양파, 마늘, 대파, 청량고추, 굵은 소금,( 고춧가루는 기호에 따라 마지막에 뿌려준다),
송송썬 실파, 통깨
간장소스 - 물,간장,설탕 =1: 0.3:0.25/ 맛술1T
< 만드는 방법 >
1. 굴을 소금을 넣고 살며시 휘저어 가며 소금과 문질러 준다
(껍질이 붙어있지 않도록 하나하나세세히 살핀다)
2. 차가운 물에 4~5회 씻는다. 소쿠리에 물기를 받쳐 둔다
3. 간장 소스를 만든다(굴이 자작하게 잠길정도의 양)
4. 냄비에 굴을 넣고 간장소스를 넣은후 모든 재료 함께 넣어 끓여준다.
5. 간장소스가 절반으로 줄어 들면 불끄고 고추와 대파는 꺼내 버린다.
6. 그릇에 담아 깨와 실파를 얹어준다 ( 취향대로 고춧가루를 뿌려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