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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꼬꼬 Feb 16. 2020

<오만과 편견, 2005>

영화로 삶 말하기 9

사랑은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기에 괴롭다.     



사르트르는 인생이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셀 수 없는 갈림길에서 선택을 거듭하고 만족하고 후회한다. 거창하게 인생을 논할 것 까지 없이, 고작 오늘 하루도 선택으로 가득하다. 출근길은 어떤 방법이 더 빠르고 편할지, 다른 날보다 더 집중하거나 약간은 요령을 부릴지, 유난히 고된 오늘의 저녁으로는 어느 요리가 더 어울릴지, 잠들기 전의 즐거움이 책일지 드라마일지 같은 시시콜콜한 고민들의 합이 곧 일상이다. 이런 문제들은 골라내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세상이 이렇게 쉬운 보기들로만 채워져 있었다면 전구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삶에는 사는 게 쉽지 않음을 증명하는, 때로 뜬 눈으로 아침을 맞게 만들고 일생에 걸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들이 있다. 이미 맛을 알고 있는 메뉴들이나 설명서만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상품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리 오랫동안 우릴 힘들게 하진 않는다. 문제는 고민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저하고 세월이 지나도 사무치는 선택들은 우리가 영원을 두고 들여다보아도 눈빛이 바닥에 닿지 못할 심연에 있다. 모두가 알듯이, 사람의 마음이 거기에 있다. 


선택을 하기 전에는 정확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사람에게는 설명서가 없기 때문에 사소한 선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난제인데, 대부분 스마트폰을 고를 때보다 적은 고민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십 년을 만나고도 다 알지 못해 후회하는 것이 관계임을 이미 겪어 알면서도, 자신은 생각보다 보는 눈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소한 부분들에도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꽤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첫인상, 걸음걸이, 말투, 미소, 직업, 재산, 취미, 들리는 몇 가지 소문들은 선택을 앞둔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기루처럼 꾸며놓은 상대를 진실인양 여겨버린다.  

 

사실 사람으로서는 수가 없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가졌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이 결핍이다. 어떤 순간에도 합리적이고 지적인 이성도, 마음을 꿰뚫어 볼 능력도 없이 선택을 강요받는 숙명만을 떠안았다. 최고의 선택을 위한 무의미한 고생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편이 조금 덜 아픈 길이다. 인간이 인간을 완벽히 이해하리란 기대는 꿈같은 말이고, 훤히 들여다볼 수 없다면 보이는 것들만을 믿어야 한다. 사랑하게 되면 이렇듯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설레면서도 괴롭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역시 서로를 껍데기만으로 판단하고, 샬롯은 자신에게 사랑은 과욕이라며 자산가에게 팔려가듯 혼인했지만 누구도 이를 비난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덜 아픈 길을 걷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적게 볼 수밖에 없음에도 보이는 것들로만 판단해야 하는 운명의 짐이 안타깝고 야속할 뿐이다. 오만과 편견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연민과 위로를 담은 헌정의 단어이며, 삶은 결국 어떻게든 선택해야만 나아갈 수 있기에 이미 정해져 버린 슬픔이다.     


나는 문득 바다를 떠올렸다. 잔잔하고 투명하거나 높고 매서운 파도가 치는 바다의 저 바닥을 생각했다. 그 아래는 수면의 모습과 분명히 같거나 분명히 다를까. 내가 누군가의 바다를 헤엄치다 바닥에 닿았을 때, 그런 줄 알고 있었던 풍경과 다르대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애초에 그곳까지 내려갈 일이 없기에 무덤덤한 마음으로 잔잔한 바다의 해안을 거닐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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