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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Oct 28. 2022

사이판의 모래

엄마와 함께 사이판 여행을 간 이유는 명확했다. 엄마가 칠순을 넘어선 후부터 여행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생겼는데 그 첫째가 비행시간이 짧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 해전 울릉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엄마는 갑작스레 등에 담이 왔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배 내부는 구조상 좌석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어 누울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사정을 알게 된 친절한 승무원의 배려로 엄마는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누운 상태로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과 같은 불상사를 막으려면 비행시간이 무조건 짧아야 했다.


두 번째는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평생을 육지에서만 살아온 엄마가 바다 수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특히나 스노클링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몇 해전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갔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제법 깊은 바다로 스노클링을 다녀온 엄마는 이렇게 좋은 구경은 난생처음 한다며 천진한 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었다. 사이판은 비행시간이 4시간 남짓이고, 근거리에 스노클링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면적도 넓지 않아 이동에 부담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엄마는 호텔방에서 편하게 쉬고, 아침이면 당신 손을 움직여서 해 먹는 게 아닌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며 사이판 여행을 온몸으로 즐겼다. 엄마 연세의 어르신들은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 대신 한식을 찾기 마련인데, 엄마는 현지 음식도 가리지 않고 꽤나 잘 드셨다. 그뿐이랴. 내가 짠 일정에 한 번도 불평 않고, 뭐든지 다 좋다 좋다  하셨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아도 여행을 가면 사소한 다툼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보다 완벽한 여행 메이트가 없다.


엄마는 새로 산 수영복을 입고 장비를 착용한 후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스노클링을 즐겼다. 수영 후 해변 모래사장 위에 돗자리를 깔고 잠시 쉬고 있는데, 엄마가 감탄사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사이판 모래는 어쩜 이렇게 곱니?”

그러고 보니 여느 해변의 모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색도 뽀얀 데다가 입자도 고왔다.

“진짜 그러네. 어쩜 색깔이 이렇지?”


신기해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엄마가 어떤 결심을 하신 듯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봉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시더니 봉지에 모래를 퍼 담기 시작했다.

사이판 해변가에서 다른 것도 아닌 모래를 담는 엄마의 모습이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엄마! 그걸 뭐에 쓰게?”


“아빠 제사 때 쓰면 딱 좋을 것 같아서…”

예상치 못한 엄마 답변에 순간 머릿속이 진공상태처럼 아득하고 멍해졌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엄마가 짐승 같은 울음을 울면서 토해내던 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이고. 불쌍해서 어떡해”

당신 앞에 줄줄이 딸린 4남매를 먹이고 입힐 생각을 하면 막막했을 텐데…

엄마는 ‘나 어떡해’ 대신에 ‘당신 어떡해’라고 울부짖은 거였다. 당신 앞에 놓인 현실의 무게보다는 너무 일찍 유명을 달리한 아빠의 삶을 애통해하셨던 엄마였다. 그러니 가장 행복한 한 때를 보낸 장소에서 엄마가 모래를 담는 일은 어쩌면 아빠를 애도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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