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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Oct 21. 2022

엄마의 큰 언니

“안녕하세요. 박준의 시작하는 밤입니다.

보내 주신 사연이 ‘시를 처방해 드립니다’에 선정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놀랍게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낸 사연이 당첨되어 담당 PD라는 사람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내가 보낸 사연은 큰 이모, 그러니까 엄마의 큰언니에 관한 사연이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 큰 이모를 모셔 오겠다고 했다. 큰 이모는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 급격하게 건강상태가 나빠지셨다. 거동이 불편하여 혼자 몸으로는 외출도 거의 못했고 시골 마을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셨다. 엄마는 평생을 자식 건사하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고생만 하던 이모가 안락한 노년은커녕 아픈 몸으로 혼자 지내는 게 안쓰럽다며 단 며칠이라도 집으로 모셔와 보살펴 드리고 싶다고 했다.


큰 이모가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엄마가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도 이미 70살이 넘었으니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그런 70대의 엄마가 80살을 훌쩍 넘긴 큰 이모를 보살피겠다니…


결국 엄마 뜻대로 이모를 모셔왔고 엄마는 작정한 것처럼 이모에게 정성을 쏟았다. 이모의 입맛을 살리기 위해 식욕을 돋울 만한 요리를 했고, 방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통로에 줄을 달아서 붙잡고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이라도 걸어야 근력이 생긴다며 매일매일 이모를 부축해서 바람도 쐬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우리 집 단톡방에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던 순간 사진 속 주인공이 이모라는 것을 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단풍이 예년보다 더 곱고 붉게 물든 가을날이었다. 단풍나무 사이로 이모가 보였다. 이모는 엄마의 부축도 없이 운동기구(‘하늘 걷기’라는 기구)를 타고 있었다. 상상조차 못 했던 장면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했고, 그 어떤 아름다운 장면보다 감동스러웠다.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 물었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이모를 챙겨?”

엄마는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큰 이모가 장녀로 태어나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리고 시집가서도 엄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몰라.”

나는 엄마와 이모의 시절을 잘 모른다. 그러나 엄마의 진심을 알고 나니 왜 괜한 일을 벌이냐고 얘기했던 것이 뜨끔하고 죄송스러웠다. 


그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이모는 요즘 주간보호센터를 다닌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이모를 만나러 간다. 나도 시간이 될 때는 엄마와 동행하는데, 이모가 어찌나 반겨 주시는지 모른다. 그런 이모의 얼굴 속에서 아주 어릴 적에 뵈었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이제 3년 전 그날처럼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모가 다시 운동 기구 위에 오를 날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말씀도 더 어눌해져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엄마는 3년 전 가을날 이모와 함께한 시간 덕에 한결 편안해진 것처럼 보인다. 가끔 이모를 보러 가는 날이 다가오면 한 달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냐며 투정 섞인 말을 하실 때도 있지만, 나는 엄마가 당신의 큰언니를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 너무도 잘 알아서 그저 마음이 따뜻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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