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기상, 아름다웠던 일출과 함께 열었던 하루!
워케이션 온 큰 조카가 오전 시간까지 끝내야 할 업무가 있어서 오전 시간을 숙소에서 수영을 하며 보내기로 하고, 오후에 나트랑 시내 투어를 가기로 했다.
우리는 풀빌라에서 수영을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엄마, 큰언니, 나는 사실 제대로 수영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엄마도 언니도 나도 수영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유년을 시골에서 보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수영장이 따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서당개 3년이면 풍얼을 읊는 것과 같은 이치로 냇가에서 물놀이하며 놀다 보면 멋들어진 폼은 아니더라도 수영을 하게 된다는 것을. 엄마가 수영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언니가 수영하는 것은 성인이 된 후로 처음이었다. 거침없고 힘 있는 팔동작, 첨벙 대는 발동작, 나름 속도가 났지만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빌라 수영을 하다 보니 바다 수영 욕심이 났다. 우리 숙소가 해변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바다 수영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엄마. 비치파라솔 아래 누워 멀찍이 엄마가 수영하는 것을 바라봤다. 바다 위에 누워 휘젓는 팔동작이 어찌나 힘 있던지 청년의 몸짓 저리 가라였다. 오늘 하루에 나눠 써야 할 체력을 다 소진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바다수영이었다고 할 정도로 즐기셨다. 반면에 나의 수영 실력은 퇴화했다. 배영을 곧잘 하던 나는 당연히 몸이 기억할 줄 알았는데, 촬영된 영상을 보니 휘젓는 팔이 무색할 만큼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오후 일정이 시작됐다. 시내 투어에서는 뽀나가르 참탑을 방문했고, 환전소에서 환전을 한 후 담 시장 투어를 하며 망고와 망고스틴을 넉넉히 샀다. 합쳐서 3kg를 샀는데, 1만 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근처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고 선물을 사기 위해 마트와 상점을 방문했다. 마지막 코스로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해산물집이었는데 푸짐하고 맛깔난 해산물 한상차림을 제대로 즐겼다. 4시부터 시작된 하루는 이렇게 끝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거실에 모여 맥주 한 잔씩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든 것이 9시(한국시간으로는 11시경) 남짓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골아떨어졌나 보다. 곤한 잠을 깨운 것은 언니였다.
"ㅇㅇ아. 일어나 봐! ㅇㅇ이(둘째조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현실감이 없었다. 누구보다 에너지 넘치고 이 여행을 가장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조카가 아니었던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약 30분 동안 구토와 설사, 복통이 동반되고 있다고 했다. 조카 방으로 가보니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급하게 리셉션으로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리고 병원 정보를 물었다. 상황 설명을 들은 매니저는 우선 간호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호텔에 간호사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런 위급 상황에는 꼭 필요한 서비스였다.
한달음에 온 간호사는 증상을 묻고 약을 처방해 주고 두 시간 정도 경과를 지켜보라고 했다. 그렇게 간호사가 돌아간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조카는 먹은 약을 모두 토해냈다. 복통은 지속됐고 2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다달았다. 다시 리셉션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에 가려고 하니 정보를 알려달라고 했다.
호텔 측에서 두 개의 옵션을 알려주었다. 하나는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 다른 하나는 40분 거리에 있는 나트랑 시내 병원이었다. 그러면서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은 다소 열악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심쩍긴 했지만 한 시가 급했다.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급히 택시를 불러 이동했다. 도착 시간에 가까워지자 한적하고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불빛조차 없는 길을 달리며 점점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느낌적인 느낌이 왔다. 희미하게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표현하긴 그렇지만, 여름철 공포체험 장소로 등장할 법한 시골마을의 폐가 또는 인적이 드문 시골 외곽의 장례식장 정도를 떠올리면 되겠다.
정말 이곳에 의사가 있기는 한 건가 싶었다. 택시에서 내려 병원 건물로 들어서자 '믿기 힘드시겠지만 내가 바로 이곳의 의사요' 라는듯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가 나왔다. 그들도 우리들의 흔들리는 멘탈과 불안한 눈빛을 보았겠지. 미리 파악한 정보로는 의사도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했다. 번역기 돌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 둔 베트남어로 번역된 증상을 의사에게 보여줬다.
그렇게 들어선 응급실(응급실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공간)에는 베드 3개가 놓였있었다. 물론 환자는 없었고 녹이 슬고 위생상태가 걱정스러운 베드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태였다. 환자는 없지만 간호사는 3명이나 됐다. 주로 의사와 간호사와 대화를 나눴기에 나머지 둘의 역할은 잘 모르겠다. 조카는 두 시간 동안 수액을 맞았고, 혈액검사를 받고 항생제와 진통제, 지사제 등의 처방을 받았다.
조카의 통증은 5분 단위로 반복되다가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가 다시 깨기를 반복했다. 다행히도 통증은 조금 완화되는 것 같았다. 어서 저 수액이 다 들어가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야 돈걱정이 들었다. 보험처리가 안되면 병원비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여행자보험을 처리하기 위해 서류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번역기를 돌려서 영문 처방전과 영수증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간호사는 뭘 그런 어처구니없는 것을 물어보냐는 듯 기분 나쁘게 웃으며 그런 건 발급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비용이 많이 나오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빠르게 납득이 되었다. 영문서류는 당연히 무리겠지.
새벽녘의 두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기다리는 일만 남은 상황이 되니 공간이 더 자세하게 보였다. 응급실 내벽 위로 도마뱀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최고급 호텔에도 도마뱀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었다. 우리 눈에만 확인된 도마뱀이 총 4마리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매일 아침 특이한 새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도마뱀이 우는(?) 소리였다는 것을. 우리가 귀를 의심했던 소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화장실에서 가래 뱉는 소리가 났다. 그때가 새벽 1시를 넘어가는 시간이었기에 야간근무하는 이들이 야식(정확히는 새벽식)을 먹고 양치를 하는 소리로 추측되었다. 그런데 이 소리가 간혹 들리는 도마뱀 소리와 교차하며 기괴한 느낌을 자아냈다. 앞서 이야기했던 공포체험에서 공간이 주는 공포도 있지만 소리가 주는 공포가 그 강도를 증폭시키지 않나. 이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났다. 우리는 조용히 눈빛 교환을 하며 어서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수액이 거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와서 증상이 어떤지를 물었다.
'ㅇㅇ아. 어서 괜찮다고 말을 해'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마음의 소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ㅇㅇ아. 통증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완화되긴 했지? 참을만한 거지?"
답정녀의 심정으로 다시 물었더니 그제야 그런 것 같다고 답하는 그녀였다. 드디어 해방이다.
베트남어로 된 처방전을 받고 비용을 치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을 나왔다.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너무도 다행인 것은 병원에 올 때 타고 온 택시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시간 전 우리는 시간이 꽤나 길어질 것을 예상하고 택시기사에게 비용을 치르고 돌려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기사는 상관없으니 그냥 주차해 놓고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 덕에 편하게 호텔로 복귀할 수 있었다.
호텔 로비에 도착할 무렵 즈음하여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설마. 우리 툭툭이 타고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나의 직감이 맞아떨어졌다.
호텔 로비 앞에 당도하자 직원이 길을 막아섰다. 택시는 숙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다.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꾹꾹 눌러 참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환자가 있어서 툭툭이를 탈 수가 없어요."라고. 그래도 안된다고 했다.
"아니요. 지금 환자 상태로는 절대 툭툭이 못 타요. 택시로 이동하게 해 주세요."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벌어졌고 단호한 태도에 택시기사와 직원이 베트남어로 몇 마디 나누는 것 같았다. 그제야 한 발 물러섰다. 툭툭이가 앞장서고 택시가 그 뒤를 따랐다.
드디어 숙소에 당도했다. 극강의 난이도로 하루를 보내며 잠이 든 것이 새벽 3시가 넘어서였다. 아! 마지막날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사막투어! 이것을 또 어찌할고? 산 하나 넘으니 또 다른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아 모르겠고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