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한 편으로 끝날 걸로 생각했던 여행기 같지 않은 여행기가 이제야 완결 편에 이르렀다. 사실 그 여정의 시작은 여행 일주일 전부터였다. 나트랑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늦은 밤이었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 뜬 '엄마'를 확인하고 무슨 일인가 싶었다. 평소 엄마가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일뿐더러, 그것도 밤늦은 시간에는 더더욱 전화가 올리가 없었다.
"ㅇㅇ아. 낮에 진드기에 물린 것 같아. 발 사이가 간지러워서 보니까 진드기가 딱 달라붙어 있더라고. 안 떨어지는 걸 간신히 빼내서 손으로 눌러서 죽였어."
한 번쯤 들어보긴 했지만 주의 깊게 살핀 적 없던 이름. 처음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뒤이어 엄마가 섬뜩한 말을 했기에 점점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옛날에 진드기 물려서 죽는 사람도 있었어. 어떡하지?"
일단 엄마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가다듬고 검색을 해봤다. 한동안 살인 진드기 경계령이 내렸던 적도 있고,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진드기에 물려 사망한 사례도 보였다. 이 타이밍에는 물린 후 대처법이 필요한데 물리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들으나 마나 한 답답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이해가 되는 것이 사실상 대처법이랄만 한 게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는 사실상 그 위험성을 미리 알기도 힘들 뿐더러 감염병의 특성상 치료제도 없는 것이다.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엄마에게 더 늦기 전에 응급실에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응급실로 향했고, 응급실에서 돌아온 엄마와 다시 통화를 했다.
엄마는 응급실에서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하고 되돌아왔다고 했다.
"아니 내가 사체를 싸가지고 가서 보여줬거든? 그런데 자기는 서울사람이라서 진드기 잘 모른데..."
이게 말이냐 방귀냐. 의사가 한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처구니없고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 서울사람 욕먹이는 의사와 실랑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 별 소득 없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결국 이튿날 아침 일찍 동네 내과에 방문했고, 항생제와 바르는 약 등 처방을 받아왔다고 했다. 물린 자리에 붓기가 있었지만 특이 증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살인진드기에 물리는 것도 일종의 감염병이라서 잠복기가 있다는 거였다. 마치 코로나19처럼 말이다. 통상 1주일에서 3주까지 잠복기가 있다고 하니 일주일 후면 나트랑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고 만에 하나 여행 중에 증상이 발현된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경과를 예의주시하며 드디어 여행날이 다가왔다. 만일을 위해 약 처방을 더 받기 위해 동네 보건소로 갔다. 진드기에 물려서 약 처방을 받으려고 한다고 이야기하자 접수처에서 '감염병예방팀'으로 가라는 안내를 해줬다. 보건소가 생각보다 꽤 크다고 생각했고, 별도로 관리하는 팀도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랐다.
이정표를 따라간 곳은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보건소의 사무 공간이었다. 진드기에 물려서 왔다고 하니 '감염병예방팀'의 팀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부터 잦아들었던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어떤 불안감인 고하니 코로나 극초반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는 것만으로 역학조사 대상이 되어야 했던 그때. 이러다 여행은커녕 감시 대상이 되고, 출국 금지 당하는 것이 아닌지 순간 불안이 올라왔던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팀장이란 사람과 그 옆에 팀원이 함께 사뭇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제 물리셨어요?"
"어디서 물리셨어요
"어디에 물리신 거예요? 한 번 보여주시겠어요?"
"사체는 어떻게 하셨어요?"
사실 이 대목에서 엄마의 기지가 빛났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사체를 휴지에 고이 싸서 가져왔던 것이다. 곱게 싼 휴지를 펼치자 엄마의 손으로 뭉개진 진드기 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체가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팀장은 사체를 보면서 육안으로는 살인 진드기인지 알 수가 없다며, 사체를 연구소로 보내서 실험 의뢰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사 가능 여부도 지금은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사체. 연구소. 실험. 알 수 없음'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은 나의 불안도를 증폭시켰다. 작은 곤충 하나가 이렇게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니.
'아. 엄마 출국 금지 당하면 어떡하지.' 불안이 증폭되고 있을 때, 팀장이 말했다.
"일단 증상이 없으시다니 여행 잘 다녀오시고요. 저희가 연구소에 의뢰하고 결과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보건소를 빠져나왔다.
찜찜함이 남았지만 만일을 대비해 비상약을 챙겨서 여행길에 오르기로 하고 다시 내과에 방문했다.
"선생님. 여행 가려고 하는데 가도 괜찮을까요?"
"어디 가시는데요?"
"나트랑 가려고요."
"와! 나트랑이요? 좋은 데 가시네요. 부럽습니다"
보건소에서 증폭되었던 불안감이 내과에서는 너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선생님. 진드기 물리면 잠복기가 있다고 하던데 괜찮을까요? 지금 딱 일주일 되었거든요"
"뭐 그거야 알 수 없죠. 근데 증상 나타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은 누군 못 하냔 말이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마음은 석연치 않은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 번 나트랑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해프닝이 많았고 떠나서도 탈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큰 문제없이 잘 보내고 왔기에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으니 너무 다행이고 말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보건소에서 연락을 받았다. 검사 결과 음성이라고 했다. '음성'이라는 단어를 듣고 남아 있던 찜찜함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진드기에 물리면 진드기가 살 속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손으로 떼려고 하면 안 된단다. 그리고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만지는 것은 피해야 할 행동이다. 물린 것을 발견했다면 바로 병원에 가서 기구(핀셋)를 사용해서 제거해야 하며, 그 사체를 근처 보건소에 의뢰하면 감염병 여부를 파악할 수 있으니 반드시 보건소로 갈 것을 권한다.
진드기로 인한 한국의 응급실로 시작해서 급성 장염으로 인한 베트남 나트랑 응급실행까지 이어진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했던 여행기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인데 여행에서 돌아와서 엄마는 조카에게 거금의 용돈을 쾌척했다. 조카에게는 용돈으로 쓰라며 건넸지만 엄마는 큰 탈 안 나고 바로 컨디션을 회복했던 조카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하셨다. 여행 전부터 맘 졸였을 엄마가 환하게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