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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Sep 08. 2023

나트랑 여행, 그 특별함에 관하여(1)

역대급 경험을 했는데 역대급으로 쓸 자신이 없어서 역대급으로 미루고 있는 나.

이 경험이 휘발되어 사라지기 전에 박제하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고 써본다.


사건은 지난 8월 늦은 여름, 휴양 아니 어쩌면 요양을 원했던 베트남 나트랑에서 생긴 일이다. 사실 이 여행은 엄마의 막냇동생, 그러니까 나의 막내 이모의 한 마디에서 촉발된 여행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무심한 듯 한마디 던졌다.

"이모가 올여름에 해외여행 안 가냐고 물어보던데?"

"응? 왜? 이모 해외여행 가고 싶대?"

이야기인즉, 이런저런 이유로 해외여행을 가본 지 오래된 이모가 나를 가이드 삼아 해외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엄마와 공모를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와 이모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가이드를 자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함께 싱가폴 여행을 떠났던 게 벌써 5년. 그 후로 큰 조카가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던 캐나다 여행을 계획했었으나 코로나로 결국 무산되었으니, 다시 스멀스멀 해외여행을 떠날 마음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초기 공모자였던 이모는 급한 일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대신 대학원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한다던 둘째 조카가 급하게 조인하기로 결정됐다. 한 명이 나고, 한 명이 든 이 상황이 우리들의 가족여행을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말 들어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베트남은 여행으로는 처음 방문한 곳이었다. 10여 년 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출장으로 호치민에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외곽 공장을 두어 번 방문한 것이 다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호치민 공항에 도착했을 때 후끈하게 불어오던 온풍이었다. 공항을 나서자 거대한 온풍기를 틀어놓은 것 같은 공기가 살갗을 감쌌다. 퇴근길에 도로를 가득 메웠던 오토바이들의 행렬은 또 어떤가. 그 행렬들 사이를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 마음이 졸였다. 내 인생 첫 역주행의 추억을 선물해 준 것도 베트남에서였다. 타는 듯한 더위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40도에 육박하던 기온을 확인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었다.  10여 년이 지난 후 방문한 베트남은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5년 만의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전에 없던 선택장애가 왔다. 에어텔로 항공과 호텔을 해결한 것 말고 어디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여행은 계획하면서 경험하는 설렘이 절반인데, 전혀 설레이 않았다. 마치 숙제를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가족들과 함께 떠나서 편하고 좋기도 했지만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냐짱에서 차로 2시간만 가면 판랑사막이라는 곳을 만날 수 있다. 살면서 한 번쯤 사막을 경험하고 싶었던 나는 베트남에서 경험하는 사막투어가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여행 일정에 꼭 넣고 싶었다. 그런데 노년의 엄마가 격렬한 투어 코스를 견딜 수 있을까? 20대부터 70대까지 가족들의 상황과 취향을 고려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예기치 못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준 사람은 큰 조카였다. 그녀는 우리보다 하루 늦게 합류했는데, 그녀를 통해 말로만 들었던 워케이션을 목도했다. 그녀는 전날 정상근무를 하고, 퇴근 후 공항으로 이동해서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 5시에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고민은 과연 그녀를 어떻게 데려올 것이냐였다. 값비싼 픽업 서비스를 신청할 것인 지, 그랩을 타고 오라고 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마중을 나갈 것인지. 새벽에 혼자 택시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새벽 4시!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배웅 작전이 펼쳐졌다. 우선 리셉션에 전화를 해서 툭툭이를 불렀다. 정확히 5분 만에 툭툭이가 왔고, 우리는 호텔 로비로 이동했다. 다시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이동했다. 베트남어밖에 모르는 택시기사와 소통이 안돼서 조카를 찾는 데 한참을 헤맸다.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조카는 에코백 하나 달랑 메고 마치 동네 카페 가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와! 탄성이 터졌다. 평소 베테랑 여행자인지 아닌지는 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야말로 진정한 노마드족이 아닐 수 없었다. 조카가 무척이나 힙해 보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배낭가방 하나 메고 온 내가 좀 힙했었는데...


조카를 픽업해서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새 6시로 향해가고 있었다. 숙소에 빼곡한 야자나무 사이로 서서히 태양이 뜨고 있었다. 조카 덕에 강제 미라클모닝을 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을 보게 되니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우리는 숙소에 들러 남은 가족들을 깨워서 해변으로 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예기치 못한 특별함이야말로 여행을 진정 여행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음날 새벽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로 우리는 모두 그 어느 때보다 왁자지껄하게 하루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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