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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Dec 16. 2022

하늘에서 돈 비가 내려와요

특명! 엄마를 웃게 하라!

한 해 중 우리 집에서 가장 큰 행사는 바로 엄마의 생신이다. 엄마 생신이 있는 12월이 되면 올 해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 남매들은 식사를 밖에서 할지 집에서 할지, 집에서 하면 음식은 누가 뭘 준비할지, 특별하고도 재미있는 이벤트는 뭘로 준비할지 상의를 한다.


특별한 이벤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하던 즈음에 대학원 동기로부터 아이디어 하나를 얻었는데 그건 바로 머니건(Money Gun)이었다.


"요즘엔 돈을 총으로 쏜다던데요?"

이 말을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인터넷에서 '용돈 총'을 검색하니 정말 리뷰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뭐니 뭐니 해도 부모님 선물로는 돈이 최고예요."

"식상하게 봉투에 넣어 드리는 거 말고 방법을 바꿔 보세요"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좋은 것을 조금 덜 좋은 것으로 대체하는 것보다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바꿔보는 것. 참신한 발상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용돈 총이 준비되자 행사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플래카드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래카드'를 검색하자 각양각색의 디자인과 문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려워 몇 가지를 추려서 언니들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답변만 돌아왔다.

"와우! 다 좋은데?"

얼른 포기하고 내생 내산(내가 생각한 걸로 내가 산다)을 시전해야 할 때임을 자각했다.


엄마 생신 D-2일!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 단톡방에 엄마의 카톡이 날아왔다.

"얘, 이게 뭐니?"

아뿔싸. 집으로 배달된 택배 상자를 제일 먼저 열어 본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분명히 수신인에 언니 이름을 넣었건만.

엄마가 언니 물건에 함부로 손대는 사람도 아니건만.


"엄마! 언니 택배를 왜 열어 봤어?"

"딱 보니까 사이즈가 내복 사이즈던데?"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엄마의 촉이 발동한 거였다. 

엄마의 의식의 흐름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의 플래카드! 서프라이즈가 물 건너갔음을 알려주었다.


이제 우리에겐 머니건만이 남아 있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자. 엄마가 우리가 느낄 허탈함을 짐작하신 건지, 알고도 속아 주는 느낌으로 다른 택배 상자 하나는 언니 방에 고이 들여다 놓았더랬다.


드디어 엄마 생일 당일!

우리는 완벽한 합으로 식순을 짜고 리허설까지 마쳤다. 

그리고 이미 들통 나 버린 플래카드를 거실 벽면에 붙였다. 평소에는 오글거려서 할 수 없는 말들을 플래카드의 도움으로 할 수 있었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막내 조카의 트럼펫 연주와 함께 온 가족의 생일 축하 노래가 시작되었다.

센스쟁이 조카가 본인 용돈으로 준비했다는 꽃 옆으로 이벤트용 안경을 눌러쓴 엄마의 얼굴에서 연신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촛불을 끄고 난 후 오늘의 주인공 엄마에게 다음 순서를 알렸고, 리허설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던 중1 조카가 엄마와 마주 섰다.


드디어 조카가 엄마를 향해 머니건을 쏘기 시작했다. 미리 장전된 신권과 달러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 연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돈비, 아니 돈벼락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 광경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주인공인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가족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돈이 좋긴 좋구나'

하늘에서 돈 비가 쏟아져 내리고 거실 바닥이 돈비로 가득했다. 오늘의 이 광경에 대한 총평은 초등학생 막내 조카의 한마디로 마무리되었다.


"이모! 진짜 쩐다..."


평소라면 언어 순화하라고 했겠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호응을 해주었다. 오늘 파티는 분위기는 내가 아니라 머니건이 살렸다.


엄마 생신 파티가 끝나자마자 둘째 언니가 농을 던졌다. 

“2022년 행사 끝났으니까, 어서들 서둘러서 내년 행사 준비하자.”
 

엄마의 눈높이에 더해 조카들의 눈높이도 높아져만 가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터. 부디 이벤트 업계 관계자들이 열 일해서 재미난 아이디어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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