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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보리 Aug 26. 2023

후일담

<개.나.다.> #10 1년 반이 지났다

캐나다로 간 세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아쉽지만, 입양자들로부터 입양후기 편지를 전달받은 이후로는 아이들의 근황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는 없었다. 단체를 통해 입양을 간 아이들이고 내가 그 입양자들과 직접 연락을 할 수 있도록 연결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캐나다의 입양 단체에 올라온 프로필 상 ‘South Korea’에서 ‘Abandoned’된 강아지들일 뿐이고, 거기에 내 존재는 적혀 있지 않다.



어차피 아이들이 입양을 가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입양이 이루어진 것이 감사했기에 이런 것들이 불만스럽거나 서운하지는 않았었다. 다만 늘 궁금하고 그립기는 했다.



입양을 보내는 과정에서 입양자들의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열심히 구글링을 해 그들 중 몇 명의 SNS계정을 찾아내기도 했다(그분들이 알면 경악하겠지). 한국 사람들처럼 SNS에 강아지 사진을 열심히 올리며 지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는데, 이 계정들은 모두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어 아이들의 근황을 확인하는 데에는 별 쓸모가 없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만큼 SNS에 진심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스토커가 된 것 같아 찜찜해서 더 찾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캐나다의 동물보호 제도와 반려견 문화가 우리나라보다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안전할 거라고 믿고, 나머지는 신에게 기도할 따름이다. 캐나다에는 어떤 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우리 아이들 좀 한번 더 봐 달라고 말이다. 버려지지 않고, 학대받지 않고, 보호자와 산책을 하며 지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 아무리 그곳이 개들이 살기에 우리나라보다는 더 좋다 할지라도, 어느 나라에나 범죄자가 있듯 개를 학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유기견 보호소도 운영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처지에 놓이지 않을 거라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해외입양 간다고 애들이 다 잘 사는 것도 아니에요. 고생고생 해서 외국까지 보내 놨는데, 거기서도 잘 못 지내는 애들도 많아요. 제발 잘 살아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거죠.” K씨가 했던 말이다.






그렇게 보내 놓고도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거라면, 왜 굳이 개들을 힘들게 비행기 태워 해외로 보내는 걸까. 이 시리즈의 4편에서 언급했듯이 이곳에는 개가 정말 너무나도 많고, 그렇기에 한 마리의 개가 국내 입양을 갈 길이 극히 요원하기 때문이다. 즉 국내 입양을 보낼 여유가 되는데 굳이 해외로 보내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개의 숫자가 너무 많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 건 인기 있는 품종견의 경우도 다르지 않지만(양평 개 집단 아사 사건** 같은 경우들을 떠올려 보자), 몽글이와 같은 중대형 믹스견의 경우는 더욱 심해서, 여전히 대부분의 개체들이 가족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다 보호소나 개농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물론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한 만큼 중대형 진도믹스견을 반려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견종을 불문하고 방치되고 학대받는 강아지들을 하나라도 더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헌신하는 동물보호단체, 사설보호소, 개인 봉사자들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람들의 손길들이 다 감당해 내기 힘들 정도로 보호가 필요한 강아지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손길들’이란 그 사람들의 돈과 시간, 체력, 정신적 에너지 등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다. 내가 아이들과 관련해 K씨와 사설 보호소에 도움을 요청하던 과정에서 내내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느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를 구조하고 보호하는 일에 뛰어들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개들이 포화 상태가 아닌 곳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호가 필요한 강아지들의 숫자를 늘리는 요인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입양되었다 버려지는 아이들도 많고, 펫샵과 여기에 개를 공급하는 번식장들도 여전히 활발히 운영되고 있으니까. 그러나 ‘중성화되지 않은 채 방치되다시피 길러지던 개가 새끼를 낳은 경우’(몽글이도 아마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또한 개들, 특히 시골에서 주로 태어나고 자라는 진도믹스견들의 개체수를 늘리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만큼 강하게 자리 잡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도 동물 전문 TV프로그램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하얗고 귀여운 시고르자브종 아가들이 카메라를 향해 뽀짝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마냥 귀엽고 힐링되는 일이기만 한 것처럼 연출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경우 십중팔구 모견과 부견 둘 중 하나는 야외에 묶여 있고 하나는 떠돌이개이며, 새끼들은 견주도 모르는 새 얼떨결에 태어나 있고, 견주들은 카메라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 사실을 인정하곤 한다. 앞으로 강아지들을 어디로 보내서 어떻게 살아가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물론 없어 보인다. 지금 나는 이런 컨텐츠를 마냥 즐겁게 시청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쟤네는 다 누가 거둬서 키우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팔뚝만 한 새끼들이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시기는 몇 달도 채 되지 않는다. 금세 성장해 10kg는 거뜬히 넘는 체구로 10여 년이 족히 넘는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



귀엽고 무해한 강아지들의 존재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을 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고르자브종 새끼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것과(이건 정말 팩트이다) 그 생명들의 존재가 축복인 것과 별개로, 그것이 모견과 부견의 방치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것 자체는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이롭고 행복하고 뿌듯했던 순간들도 많았고, 그 위주로 이 글을 썼지만, 결론적으로는 몽글이와 내가 겪었던 일이 누군가에게 반복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공항에서 만난 봉사자의 말처럼 결국 '개판에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앞으로도 고민하고 실천할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입양 가고 난 후,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1년 반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나는 기존에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몽글이와 고양이 둘을 데리고 몇 번의 이사를 더 했으며, 팔자에 없을 것 같던 결혼도 했다. 결혼은 몽글이 입양을 결심하면서 포기했던 일 중 하나였는데(누구든 강아지 하나 고양이 둘 딸린 여자와 결혼할 마음을 먹기란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이었다), 몽글이가 어느 날 내 인생에 덜컥 들어왔듯, 사람 일은 이토록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가고 난 후에도 내가 삶을 살아가느라 웃고 울며 고군분투하는 동안, 몽글이는 말없이 내 옆에서 사료를 먹고, 하루 두 번의 산책을 하고, 출근하는 나를 쳐다보다가 퇴근하는 나를 엉덩이 춤을 추며 반기고, 사과와 고구마를 달라고 졸랐으며, 가끔 함께 산과 강으로 놀러를 갔다.



개의 이런 한결같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다.  인생 페이지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과업이 주어지든,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든 아니든, 내가 할 최선은 그저 주어진 오늘 하루를 살아내며 좋은 일에는 진심으로 행복해해 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는 것. 어느 자기계발서나 명언집에 적혀 있었다면 기억에도 안 남을 정도로 뻔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존재(강아지)가 늘 내 옆에 있다는 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늘 나에게 주는 것 같다.



그 결과 지금 나는 몽글이를 만난 후 인생이 부쩍 행복해졌다고 느낀다. 이 시리즈의 도입부에서 몽글이를 데려온 일을 ‘무지개똥’이라고 표현했다. 결과를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었고, 그래서 불안하고 힘들기도 했었기에 ‘실수’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 실수 덕분에 특별할 것 없었던 내 세계가 한층 더 다채로워지고, 비 온 뒤처럼 잔잔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몽글이가 내게 선물한 무지개였다.

                     






* "희망 찾아 해외 입양 갔지만…알래스카서 썰매견 착취 공분" <SBS뉴스> (2023. 8. 25.)

** "개 1400마리 굶어 죽었지만…아무도 몰랐던 이유" <아시아경제>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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