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문제는 아이들과는 무관한, 내 직장 인사발령과 관련하여 발생했다. 나는 정기적으로 인사이동을 다니는 일을 하는데, 다음 발령지와 그 이동 시기가 여러 안(案)들 사이를 갈팡질팡하다 뒤늦게 예상치 못한 제3의 안으로 확정이 되는 바람에, 본래 거주하던 집의 계약 기간 갱신을 미처 하지 못하고 근처에서 거주할 집을 새로 구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본래 거주하던 집은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이 가능했지만, 집을 새로이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산과 원하는 평수를 설정해 놓고,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다는 조건’을 걸어 월세매물을 찾아다녔다. 지역적 범위를 꽤 넓게 설정하고 물색했음에도, 저 조건 하나로 대부분의 매물들이 걸러졌다. 부동산에서 원하는 예산범위 내의 매물 딱 두 군데를 보여주었고, 그중 좀 더 괜찮아 보이는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개와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 이미 오픈되어 있기에 계약서에도 ‘반려동물로 인한 피해가 있을 시 계약을 해지한다’와 같은 특약조항이 포함되었고, 계약서 작성 당일 집주인으로부터도 짖음이나 다른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들었다. 그때까지는 아이들의 짖음이 심하지 않았고, 있더라도 집 자체의 방음으로 해결되는 정도였기에 괜찮을 줄로만 생각했다.
이사 준비를 할 시간이 짧아 바쁘게 짐을 싸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했다. 본래 살던 집보다 평수가 부쩍 넓어져서, 집을 잘 구해서 이사를 마친 것 같아 잠시 안도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며 이웃집에서 민원을 제기한 것이었다. 한창 자라나고 있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놀다가 흥분해서 간헐적으로 악악 하고 짖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전달받은 민원의 내용은, 정확히는 ‘강아지가 시끄러워서 거주하는 데 피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건물 내 다른 가구들은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는데, 왜 저 집만 예외적으로 반려동물을 허용해 주었느냐'는 것이었다. 특약에서 금지된 '반려동물로 인한 피해'라는 것이, ‘이웃집이 우리 집에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불공평하다는 느낌' 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민원은 현실이 된 것이었고, 아이들의 짖음이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지고 잦아질 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내가 야기한 이 문제는 내가 당장 해결해야만 했다. “안되면 성대수술 같은 거라도 시켜 보세요”라는 집주인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아이들을 안 짖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리고 활발한 2개월짜리 강아지 세 마리가 부대끼는 환경에서, 짖기 시작할 때 이를 ‘제지하는’ 것은 어떻게든 가능했으나 아이들을 애초에 ‘짖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었다. 내가 출퇴근을 하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 같이 길에 나앉는 결말로 가지 않으려면, 세 아이들을 일정 기간만이라도 맡길 곳이 필요했다. 먼저 찾아보았던 곳은 장기 위탁이 가능한 훈련소와 호텔들이었다. 짖음 개선까진 필요 없고 그저 위탁만 받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살던 지역 주변으로 몇 군데 훈련소와 호텔을 찾아보았으나, 가장 크리티컬 했던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이제 2개월을 막 넘긴 아기들이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훈련소들이 5차 광견병 접종까지 완료된 상태의 강아지들만 입소가 가능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제 2차 접종밖에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고 광견병 접종까지 마치려면 최소 한 달은 더 기다려야 그곳에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아이들이 셋이니 비용 또한 엄청나게 비쌌다.
주변 사람들에게 혹시 아이들을 맡아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다. 고맙게도 지인들 중 두어 명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셋 모두를 맡아주기는 어렵고, 한 마리씩 기한을 정해서. 아이들이 서로 떨어져 있기만 해도 짖음은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괜찮은 대안이 되겠다 싶었다. 이렇게 마련한 대안(?)을 들고 K씨에게 전화를 했다.
K씨는 이런 일이 올 줄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나와 처음 통화하던 그날에도 경고했던 문제였으니까. K씨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믿을 만한 주변인들에게 하나씩 맡기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맡아줄 수 있다고 한 두 집과 우리 집이 지역적으로 매우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만약 세 아이를 함께 데리고 움직여야 할 일이 있는 경우, 내가 하루에 왕복 1000km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하는, 그 정도의 거리였다). 앞으로 해외입양을 위해 추가로 사진을 찍고 병원을 데리고 다니는 등 은근히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움직일 일들이 많을 텐데, 아이들이 각각 멀리 떨어진 위치에 살고 있으면 필요할 때 데리고 이동하는 것이 불편해질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K씨는 본인이 다니는 쉼터 중 한 곳에 부탁해서 아이들을 맡기는 것을 제안했다. 그곳은 나도 익히 알고 있던 사설 보호소 중 한 곳이었고, 당연히 쉼터 내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쉼터 운영자들이 번식장, 개농장 등에서 구조한 강아지들이었으며 나 같은 개인 구조자가 돌보다가 여력이 되지 않아 맡기려 하는 강아지들을 받아주는 곳은 본래 아니었다. K씨는 쉼터 소장님을 잘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협의한 위탁비를 매월 정확하게 납부하고, 몇 개월 내 이 아이들이 모두 해외입양을 갈 수 있도록 책임지고 보장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위탁비 준비를 위해 통장잔고를 확인하며, 소장님의 허락이 떨어지길 기도했다. 얼마 뒤 K씨의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을 쉼터에 맡겨도 된다는 허락을 얻은 것이었다. 무너진 갱도에 갇혔다가 구조대원의 음성을 들은 기분이 뭐 이런 걸까.
그 길로 아이들을 차에 태워 쉼터로 향했다. 왠지 아이들의 어미인 몽글이도 직접 보여드리고 싶고 또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몽글이도 같이 차에 태웠다. 쉼터로 운전해 가는 길에 머릿속으로 소장님께 온갖 쓴소리를 듣는 상상을 해 보았다.
호기롭게 강아지를 데려오고 그 새끼까지 받아 놓고 입양을 잘 보내겠다며 고집을 피우다가 끝까지 감당하지도 못하고 위탁처를 찾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이고 자괴감이 들었다.
끝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누구의 신세도 지지 않고 모든 걸 잘 마무리하는 건 불가능했던 건가? 몽글이를 데려온 건, 결국 나의 '실수'일까?
나는 몽글이를 데려올 자격이 없었던 걸까?
사람들은 유기견을 구조해서 돌보았다고 하면 좋은 일 했다고 칭찬하지만, 신중하지 못하게 강아지를 데려왔다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사람들은 어리석다며 욕을 한다. 몽글이가 유기견이다, 아니 일지도 모른다라는 사실은 내게 어느 정도의 변명거리가 되어주는가? 그 전에, 이 와중에도 내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나는 얼마나 못나고 이기적인 건가?
내가 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맞는가?
쉼터에 도착하여 길가에 주차를 하고 내리자 이곳에서 지내는 몇백 마리의 강아지가 외부인의 기척을 듣고 일제히 짖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앞에서 큰 짐들을 이리저리 나르고 있던 까다로운 인상의 소장님이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주차를 여기에 하면 안 된다고 하셨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봉사자도 일절 못 오게 하고 있다며 외부인 방문에 대한 경계심을 내비치셨다.
미리 연락드렸던 아무개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고, 아이들을 보여드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몽글이를 구조한 경위부터, 출산을 지켜본 과정, 짖음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돌보기 어려워진 상황까지. 끝까지 돌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염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소장님은 처음에는 날카로운 말투로 내가 쉼터로 오는 길에 상상해 보았던 몇 가지 쓴소리들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울지 말고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개 때문에 막 인생 피폐해지고 우울증 걸리고 그래서 똑바로 키우지도 못하게 되고 그러는 사람들이야. 개 구조하고 그런 거 할 땐 하더라도, 일단 내가 행복해야 돼. 이왕 이렇게 됐으니 애들은 여기서 잘 데리고 있을 테니까 (차 안에 있던 몽글이를 가리키며) 얘랑 둘이 행복하게 지내는 거, 그거에만 집중해. 그게 제일 중요해요. 아이고 요놈 우리 구름이 닮았네. “
한바탕 눈물바다 끝에 아이들을 실내 견사로 데리고 갔다. 빈 방이 하나 있었고, 세 아이들이 같이 지낼 만한 깨끗하고 넉넉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짧게 작별인사를 하고 너덜너덜해진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