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이 해외로 입양 가는 루트는 다양하다. 개인이 해외의 지인에게 강아지를 보내거나, 여러 홍보 채널을 통해 해외의 입양자를 물색해서 입양을 결정하고 출국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유기견 해외 입양을 주선하는 단체들을 통해 보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K씨는 캐나다의 입양 단체를 통해 아이들을 밴쿠버로 입양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개의 견종과 외모 등에 관해 캐나다 사람들이 다양한 선호를 가지고 있어, 우리 아이들을 마음에 들어 할 가정도 찾기가 비교적 쉬울 것이라고. 우리가 작성한 프로필과 사진을 국내 단체를 통해 캐나다 단체로 전달하면, 캐나다 단체에서 입양공고를 올리고 입양자를 찾아서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캐나다로 보낼 영문 프로필과 사진이 필요했다. 프로필을 작성하는 것은 정해진 양식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 양식에 답변을 적어 넣기만 하면 되었다. 남자/여자/아이/다른 강아지와 잘 지내는지, 캔넬 훈련이 되어 있는지, 에너지 레벨은 어느 정도인지, 음식과 관련한 공격성이 있는지, 산책줄을 매고 걸을 수 있는지, 차를 잘 타는지 등 반려생활에 참고할 정보를 꼼꼼하게 기재해야 했다.
특징적이었던 것은 ‘고양이와 잘 지내는지’라는 항목이 있었다는 것이다. 캐나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많이 키우기 때문에, 고양이와 잘 지낸다는 것은 상당한 가산점이 된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대체로 몽글이와 아이들을 피해 다녔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지도 친해지지도 않은 채 적당히 데면데면하게 지냈었다. 아이들도 고양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가서 꼬리를 흔들다가도 별 반응이 없으니 다른 재미를 찾아 돌아서는 정도였다. 유명한 숏츠나 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서로 꼭 붙어 우정과 온기를 나누는 수준까진 못 되더라도,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지 싶어 자신 있게 프로필에 적어 넣었다. 고양이와도 잘 지냄.
문제는 입양공고에 올라갈 프로필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처음에 K씨가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을 때, 집 안에서 아이들을 찍은 사진들 중 귀여워 보이는 사진들을 골라서 보냈다. 그러나 내 눈에만 귀여워 보일 뿐, 입양 공고에 올라가기엔 적절하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예컨대 세 아이들이 이불에 벌러덩 누워서 꿀잠을 자고 있는 사진 같은 경우, 내 눈에는 세상 천사 같고 귀여운 사진이지만 입양할 사람들의 눈에는 자칫 강아지가 아파 보일 수 있으므로 적절하지 않았다. 웅크리고 있거나 앉아 있는 사진도 전신을 볼 수 없으니 프로필 사진으로서는 불충분했다.
입양 공고에 올라갈 사진은 강아지의 체형과 외모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잘 찍힌 전신사진과 얼굴 사진 등이 필요했다. 프로필 사진이 강아지의 첫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겁먹거나 화난 표정의 사진들은 좋지 않다. 최대한 밝고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사람이나 다른 강아지들과 즐겁게 교감하고 있는 사진들이면 더욱 좋다고 했다.
집에 카메라가 없었기에 핸드폰 카메라로 여러 차례 촬영을 시도했다. 고속 촬영이 어려운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 당연히 가만히 서서 포즈를 취해줄 리 없고 쉴 새 없이 뽈뽈거리고 움직이기만 하는 새끼 강아지들은 핸드폰에 '잔상'만을 남길뿐이었다. 아무리 해봐도 그럴싸한 사진이 안 나오는 게 집안의 배경이 문제인가(아님) 싶어, 줄을 매고 집 앞의 공원 벤치에 데려다가 촬영해 보기도 했다. 한 번도 외출을 해 본 적 없었던 아이들이 벤치 위에서 엎드린 채 그대로 얼음이 되는 바람에 한 장의 사진도 건질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반려동물 전문 사진관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예쁘게 꾸미고 좋은 카메라로 고화질의 사진을 찍으면 그중에 입양 프로필로 쓸 만한 게 나오겠지. 살던 지역 근처의 사진관을 검색해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입양을 갈 아이들이고,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왔다'라고 설명했지만 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가족사진 같은 것들을 위주로 찍는 그곳 사장님이 '입양홍보용 프로필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있으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예쁘게만 나오면 되니까. 권하는 대로 배경들을 고르고, 예쁜 액세서리도 골랐다. 낯선 환경에 와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이리저리 움직여대는 아이들을 끈질기게 달래 가며 많은 분량의 사진을 찍었다. 촬영이 다 끝나고 원본 파일을 선별해서 구매했다. 일단 '선명한' 전신사진과 여러 각도의 얼굴사진을 건졌고, 꽤 잘 나온 것들이 많아 이 정도면 됐으려나 싶었다.
사진관에서 찍어 간 사진을 골라서 K씨에게 보냈는데, 이번에도 쓸 만한 사진이 전혀 없다는 단호한 피드백을 들었다. 일단 배경이 너무 인위적이었고, 목에 건 꽃 액세서리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도 빨리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먹고 싶다는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내가 찍어간 사진은 이미 내 가족이 된 반려동물의 예쁜 찰나를 남기는 용도에는 적합했을지 모르겠지만, 입양할 강아지를 찾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강아지와 함께 뛰어다니고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는 상상이 가능한, '이런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 그런 행복한 느낌의 사진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K씨의 피드백들은 일리가 있었지만, 잘해보겠답시고 찍어간 사진들이 한순간에 내 눈에도 우스꽝스러워 보이기 시작하면서 부끄러움이 몰려왔고, 사진값 28만 원이 그대로 허공에 증발한 것만 같아 억하심정마저 올라왔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냐'는 볼멘 소리마저 해 버렸다. 전화기 너머에서 K씨가 손사래를 쳤다. 아무튼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결국 아이들의 프로필 사진은 강아지 쉼터 운동장에 가서 다시 찍게 되었다.
K씨가 DSLR을 가지고 왔다. 넓은 운동장에서 냄새를 맡으며 충분히 뛰어놀고 난 다음의 아이들은, 품에 안거나 벤치 위에 앉혀도 자연스러운 표정과 포즈를 취해 주었다. 자연광 아래의 사진들이 조명을 받고 찍은 사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밝아 보였다.
이렇게 건진 사진과 영상들을 선별하여, 프로필과 함께 입양 단체로 송부했다.
얼마 뒤 캐나다 입양 단체의 SNS 계정에 우리 아이들의 사진들과 함께 프로필이 올라왔다. 좋아요도 많이 눌리고,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댓글도 많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K씨와 함께 기뻐했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작다는 것도 있었겠지만, 예쁘게 촬영한 사진과 영상도 분명 큰 몫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