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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보리 Jul 27. 2023

자원봉사자 K씨

<개.나.다.> #4 해외입양으로 눈을 돌리다

여기저기 올려보았던 입양공고가 무색하게, 아이들에 대한 입양 문의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지나치게(?) 많은 입양 조건이 걸림돌이 된 것일까. 아이들이 흰색이 아닌 검은색 혹은 갈색의 시고르자브종이라는 것 때문에 비교적 눈길을 덜 끌었을까. 아니면 아직 젖먹이들이라 훗날 성장하고 나서의 외모나 성격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을까.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애들 유니크하게 예쁘고, 질병에 노출되지 않아 몸도 정말 건강한데. 어리다는 건 한편으론 강아지의 어린 시절부터 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애들은 태어날 때 부터 어미인 몽글이가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고 형제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초기 사회화, 성격형성 측면에서도 상당한 장점이 있을 텐데. 이런 것들을 남들이 잘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돌이켜보 좀 더 강하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한 나의 탓도 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잘 끌 수 있도록 사진을 찍고 입양 홍보글을 쓰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게 게시하는 것도 전적으로 홍보자인 나의 역량에 달린 것이었는데, 내게 그런 역량이 많이 부족했었다는 것은 이후 해외 입양을 준비하던 과정에서야 어슴푸레하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 마케팅 같은 과목이라도 좀 들어볼 걸 그랬나.






공고를 올리고 입양 문의를 기다리면서, 입양 문의가 없다는 사실보다도 나를 더 씁쓸해지게 했던 것은 세상에 입양을 필요로 하는 강아지가 너무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포인핸드와 동물보호단체에 올린 내 입양 홍보글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새로운 입양 홍보글 때문에 빠른 속도로 뒷 페이지로 밀려나가 있었고, SNS에는 #입양해주세요 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수없이 많은 강아지들이 올라와 있었다. 견종과 나이를 불문하고 정말 다양한 강아지들이 가족을 찾고 있었고, 저마다의 사연도 다양했다. 강아지 입양을 원하는 사람보다, 입양을 필요로 하는 강아지들의 숫자가 몇십, 몇백 배는 더 많을 것 같았다.



무력감을 느꼈다. 이 많은 강아지들 중 우리 아이들을 데려가고 싶어 할 사람이 있을까. 만약 누군가 우리 아이들을 선택해 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 내 눈에야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강아지들이지만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우리 아이들이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 갖고 있는 어필 포인트란 ‘어리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필요 없고 우리 아이들을 가족으로 점찍어줄 ‘단 한 사람’만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단 하나’를 찾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듯 어려운 일들이 꼭 이것만 있던가. 연애, 결혼, 취업도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단 하나의 상대만 찾으면 될 일이지만 다들 그게 되지 않아 어려워한다. 더욱이 이 바닥 경쟁률은 몇십 대 일일지 몇백 대 일일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아지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쯤 되니 우리 아이들을 눈여겨 봐 주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세상에 이렇게 강아지를 많아지게 한 사람들이 더 원망스러워졌다. 유기와 파양, 번식장과 개농장, 중성화되지 않은 시골개들... 아지 키울 사람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을텐데. 개들은 속절없이 태어나고, 대부분 선택받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입양 홍보에 대한 뚜렷한 수확 없이, 현실에 대한 원망과 고뇌만 쌓인 채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갔다. '어리다'는 게 강점이었던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기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었고, 그전에 아이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만 조급해져 갔다.






아이들을 국내입양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조금씩 느끼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 해외입양도 고려해 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해외입양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기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대안이 없다면 그거라도 시도해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강아지의 해외 입양처와 이동봉사자를 구하는 글을 보고, 거기에 적힌 K씨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애들이 태어난 지 두 달이 되었을 무렵, K씨의 SNS 계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DM을 보냈고, 늦은 밤 그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K씨는 본인이 보호소 등지에서 구조한 강아지들을 케어하여 미국, 캐나다 등으로 해외입양을 보내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직업이 따로 있고, 이 일은 봉사활동으로만 하고 있다고 했다. 봉사지만 늘 강아지 쉼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강아지들을 돌보아야 하고, 밤이면 해외의 입양 단체와 연락을 취하는 등 낮이고 밤이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이미 입양 보내야 할 아이들이 많고 그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도 벅찬 일인지라, 선뜻 우리 아이들의 입양 주선을 도와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전화통화를 하기 전 그에게 DM으로 아이들의 사진과 사연을 미리 정리하여 보냈었지만, K씨는 일부러 그 사진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보고 나면 도와주고 싶어질 것 같다는 이유였다.



K씨와 통화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이 분께 착수금과 사례금으로 일정액의 돈을 드리고 깔끔하게 입양 주선 거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K씨는 강아지의 해외 입양 주선으로 영리를 취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돈을 주는 대신 그의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그는 내가 아이들을 입양 보내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알려주는 팍팍한 현실들을 듣고 내가 자진해서 입양 주선 의뢰를 철회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두 시간가량 그와 통화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K씨는, 이제는 구조한 강아지들을 절대 국내로는 입양 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구조해서 입양 보내는 개들은 대부분 흔한 진돗개나 진도믹스견이었는데,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집을 고르고 골라서 입양을 보내도 그 끝은 결국 도축이었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해외입양만 보내기 시작한 후, 그가 예외적으로 국내입양을 보낸 케이스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이름도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입양에 대한 의지를 K씨에게 지속적으로 호소했던 어떤 운동선수에게 입양을 보낸 경우가 유일했다. 그 외에는 겨우겨우 입양을 보내 놓고도 그 끝은 차라리 입양을 가지 않았던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던 일들을 그는 많이 겪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오히려 양반이라고 할 정도였다(적어도 위의 경우들은 입양할 당시에는 '책임지고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데려갔을 테니까).  그에게 다짜고짜 연락해 “묶어놓고 밭을 지키게 할 개가 필요하다” “진돗개를 산책시키는 것이 로망이었는데, 개는 시골에 두고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산책시킬 생각이다” 등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이대며 개를 보내줄 것을 종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본인이 보호하고 있는 개를 입양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쪽들도 천태만상이긴 마찬가지였다. 쉼터에 맡기고 위탁비를 내지 않은 채 잠수를 타 버리거나, 우여곡절 끝에 해외입양처를 구해 놓고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출국 절차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다 된 밥에 콧물 빠뜨리는 사태를 일으키는 사람들 등.



그는 강아지들을 돌보는 것 자체의 어려움과, 해외입양을 보내는 절차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제 막 2개월이 된 우리 애들은 아직까지는 짖음이나 집안 가재도구를 물어뜯는 일은 없지만, 머지않아 이런 문제들은 현실화될 거고(그리고 그것은 현실화되었다) 그렇게 되면 혼자 세 들어 살고 있는 나로선 감당하기 힘들 거라고 했다. 해외입양을 보내는 것은 사진을 찍고 프로필을 작성하고, 아이들을 받아줄 단체나 개인 입양자를 물색하고, 검역을 받고 출국을 시키는 매 단계마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으며 어쩌면 수백만 원 대의 돈이 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현실의 팍팍함에 혀를 내두르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한편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 분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일단 이야기를 많이 들어드리고 내가 믿을 만한 사람임을 최대한 어필하는 게 중요했다. 저 직업상 신원도 확실한 편이고요, 모아둔 돈도 쓸 준비가 되어 있구요…… 긴 통화 끝에 그가 ‘그럼 지금 아이들 사진을 좀 봐 볼게요’라고 말했을 때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가 보낸 링크를 통해 아이들 사진을 확인한 그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구요, 얘네는 아마 국내입양은 못 갈 거예요. 가더라도 100프로 도축이에요.”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국내입양을 시도해 보면서 짐작은 하고 있었던 현실을 확인사살당한 것에 불과했다. 오히려 이렇게 된 이상 해외입양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겠다 싶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통화가 끝날 무렵 K씨가 확인하듯 내게 물어왔다.

“어미도 해외입양 보내실 건가요?”

“아뇨. 어미는 제가 키워요.”

K씨는 다소 안도하는 듯했다.











* K씨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강아지의 국내 혹은 해외 입양 주선을 명목으로 많은 금액의 돈을 편취하고 강아지의 행방은 알 길이 없게 만드는 유형의 사기범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한동안 뉴스 지면을 많이 장식했던, 안락사 없는 보호소/분양소를 빙자한 신종펫샵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반려동물 맡아준다더니…파양비 수백만 원 받고 100마리 넘게 암매장" <MBN뉴스> (2023. 5. 30.) 참고]

언제나 사기꾼은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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