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보리 Jul 23. 2023

개 키우실 분

<개.나.다.> #3 강아지 분양에 대한 고민

아이들은 몸무게가 막 1kg을 찍었고, 눈을 뜨고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이때쯤부터 제법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아직 이빨은 나지 않았지만 작은 입을 앙앙 벌려 서로의 얼굴이나 뱃살을 물고 흔들다가, 툭 하고 옆으로 쓰러지면 잠시 짧은 팔다리를 버둥거려 보는 식이었다. 몽글이는 옆에 가만히 앉아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종종 코를 갖다 대거나 아이들의 팔다리 머리를 살짝살짝 깨물곤 했다. 아마도 훈육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유식을 시작해도 된다고들 해서, 분유와 사료를 갈아서 죽처럼 만들어 주어 보았다. 이유식은 맛만 보듯 먹고, 어미젖을 찾거나 어미의 사료에 흥미를 보였다. 그래도 몽글이가 수유를 잘해서 다들 토실토실했다. 배불리 먹고 발라당 누워, 말랑한 뱃살을 내놓고 잠든 모습을 보면 세상 그렇게 무해하고 천사 같을 수가 없었다.






생후 한 달부터는 완전히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 못 돌아다니는 데가 없었다. 유아용 펜스를 구해서 거실에 넓게 설치하고 그 안에서 놀게 했다. 아이들은 씨름을 하거나 몽글이에게 덤벼들며 놀았다. ‘파이리’ 꼬리처럼 미용된 몽글이의 꼬리는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장난감이 되었다. 몽글이가 실외배변하는 강아지라 아이들이 배변패드를 쓸 것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의외로 곧잘 배변패드에 대소변을 가렸다.



몽글이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훈육하고 젖을 먹이고 대변을 치워주는 등 육아를 하다가 가끔씩 피곤할 때면 복층에 있는 내 이불 위에서 한숨 쿨쿨 자다가 다시 내려가곤 했다.






아이들의 성격도 조금씩 구별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각자 이름이 있었지만, 이 글에서는 적당한 익명화가 필요해서 1,2,3호기로 명명합니다)

첫째 1호기(검정 암컷)는 가장 순하고 얌전하고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형제들과 놀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덩치는 가장 커서 씨름을 하면 쉽게 밀리지 않았다. 배변 패드에 대소변을 가장 깔끔하게 잘 보던 아이도 1호기였다.

둘째 2호기(갈색 수컷)는 유일한 수컷이었는데, 비교적 독립적인 나머지 형제들과 달리 가장 애교가 많고 몽글이나 나에게 잘 달라붙는 아이였다.

막내 3호기(검정 암컷)는 독립심과 호기심이 가장 많아 보였다. 체중은 적게 나갔지만 삼 남매 중 캔넬 탈출을 제일 많이 했던 것도 3호기였고, 가장 먼저 다리에 힘을 주고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 모험을 다니곤 했다.






엄마는 네 마리 개를 끌어안고 끙끙거리고 있는 딸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가끔 통화할 때마다 ‘본가에 갖다 주면 대신 시장에 나가서 팔아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가 되는 것과는 별개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날, 몽글이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던 것일까. 너무나 미약한 정보들 밖엔 없지만 몽글이의 여정을 추측해 보면 이렇다.


몽글이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지만 겁이 많다. 다양한 것들을 무서워하는데, 특히 손에 길쭉한 물건(우산, 빗자루, 등산스틱 등)을 든 사람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엎드리는 등 심한 공포감을 표현하고, 큰 비닐이나 천이 펄럭거리는 것도 매우 싫어한다. 몽글이는 사람이 주는 밥을 먹으며 사람과 함께 자랐지만, 이런 것들이 종종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하는 환경에서 길러져 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날 처음 만났을 때 목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목줄 자국으로 미루어볼 때, 몽글이는 원래 항시 목줄을 차고 생활했을 가능성이 높다. 몽글이가 혼자 길 위에 있게 된 것은 원래의 견주가 일부러 목줄을 풀어준 탓일 수도 있고, 목줄이 저절로 혹은 견주 아닌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풀린 탓일 수도 있겠다. 만약 후자일 경우 원래 견주는 개를 잃어버렸다는 것인데, 그 견주가 잃어버린 몽글이를 찾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지자체나 경찰에 개를 잃어버렸다는 신고는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했다면 유기견 공고가 올라왔었을 때 몽글이를 되찾을 수 있었을 테니까.


강아지의 임신 기간은 평균 60일 정도이다. 몽글이는 날 처음 만난 지 43일 만에, 입양된 지는 30일 만에 출산을 하였으니 역산해 보면 날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임신 상태였던 것이다. 누군가의 손에 길러지고 있을 때 임신이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유기 혹은 유실되어 길을 떠돌아다니고 있을 때 임신이 된 것인지까지는 역시 알 수 없다. 당연히 부견도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까 몽글이는 길쭉한 물건이 종종 자신을 두렵게 하는 상황에서 사람의 돌봄을 받으며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로 자라 오다가, 어느 날 어떤 이유로 목줄이 풀렸고, 임신한 상태로 길 위를 돌아다니다가 나와 마주친 것이다.

내가 몽글이의 과거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는 건 이 정도에 그친다.



요즘은 ‘시고르자브종’이라는 별명으로 품종견과는 또 다른 귀여운 매력을 인정받고도 있는 시골개이지만, 여전히 몽글이 같은 경우가 평범한 시골개의 보통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관리를 받으며 애지중지 길러지는 강아지들도 있는 반면, 대충 기르다가 대충 떠나가도 모르는, 그런 사육도 존재한다. 그것이 개에 대해 특별히 악의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게 그들이 원래 알고 있던 ‘개 키우는 방식’이었을 뿐이고, 그 이상의 관리를 한다는 건 ‘개를 모시고 사는 것’으로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일이었을지 모른다.



당연히 중성화수술 같은 것도 고려 대상에 없으니, 어쩌다 임신된 개들로부터 태어난 새끼들은 보통 이웃 사람에게 ‘나눔'되어 똑같은 시골개의 삶을 살거나, (불법이지만) 바구니에 담겨 시장 등지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잘 길러주려고 구매해 가는 사람도 있지만, 묶어놓고 집지킴이나 밭지킴이로 쓰려고 사 가기도 하고, 개장수가 사 가기도 한다.  개장수에게 구매되어 개농장으로 흘러들어 간 아이들은 아마도 쓰레기를 먹으며 살다가 개고기가 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개를 어떤 방법으로 키우는 것이 정답인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열 명이 있다면 그 열 명이 생각하는 '개 키우는 올바른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이에 대해 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기준은 있지만, 남들에게 이를 논증하고 설득하기엔 아직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여긴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남의 개 키우는 방식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 새끼가 낳고 내 손으로 받았던 새끼들만큼은 그런 처지에 놓이게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당시 내가 정한 마지노선이었다는 것이다.



시골개 몽글이가 낳은, 몽글이와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시골 강아지들. 이 아이들을 아무에게나 대충 나눠주거나 시장에 나가서 파는 방법으로 분양한다는 것은 또 다른 제2, 제3의 몽글이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모두 거두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새끼들을 입양해 줄 사람을 반드시 찾아야만 했지만,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했다. 묶어 키우지 않고, 사람 밥 남은 것 먹이지 않고, 마이크로칩 넣고 최소한 구충 및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은 해주고 길러줄 사람. 그리고 매일 산책을 시켜줄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마련한 기준들을 정리해서 입양 홍보글을 쓰고, SNS와 ‘포인핸드’ 등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올리고 몇 군데 동물보호단체에도 보내 입양공고를 올렸다.

                     








*

"방치 속 탄생-죽음 악순환...시골개 중성화로 동물보호" <애니멀라이트> (2019. 8. 4.)

이전 02화 초보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