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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보리 Jul 18. 2023

초보 엄마

<개.나.다.> #2 다이나믹 출산 일기

몽글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출산하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전엔 몰랐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몽글이는 여러 가지로 본인이 임신했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흐린 눈으로 무시해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마 똥이 무지개색일리가 있어? 같은 느낌.




몽글이를 데려온 직후 동물병원 검진을 받고 미용실에서 빡빡이 미용을 했을 때, 수의사 선생님과 미용 선생님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젖이 조금 부어 있는 듯한데, 생리가 막 끝났을 수도 있고 입양되기 직전까지 수유 중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 임신 중일 가능성도 있으니 참고하라고. 그때는 그냥 '그럴 리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이후로도 부은 젖이 가라앉을 기미 보이지 않았고 배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지만, 몽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저체중이었기에 그저 잘 먹어서 살이 찌고 있는 거겠거니 했다. 똥이 무지개색일 리가 없잖아?








3차 접종을 맞으러 갔던 날, 수의사 선생님이 유심히 보시더니 지난번보다 배가 더 많이 부른 것 같다며,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보자고 했다. 몽글이를 데리고 처치실로 들어갔다가 5분여 만에 수의사 선생님이 씩 웃으면서 나오셨다.


"임신 맞네요. 안에 4마리가 있어요. 몽글이 축하해."


순간 한 대 맞은 듯 머리가 멍했다. 진짜 임신이라고? 축하할 일인가? 축하할 일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몽글이가 새끼 4마리를 곧 낳는다고? 근데 얘는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지? 애기 아빠는 누구지?


그럼 난 이제부터 뭘 해야 하는 거지?




수의사 선생님이 보여준 엑스레이 속 몽글이 뱃속에는 약간 벌레(!) 같아 보이는 작고 얇은 척추뼈와 갈비뼈, 그 끝에 달린 동그랗고 큰 머리뼈 4세트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4 쌍둥이가 말 그대로 몽글이의 복부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걸 여태까지 몰랐다니. 나는 어버버거리며 선생님께 다시 물었다.




"어…그럼… 이제 저는 뭘 하면 되나요?"


"(웃으며) 애기는 몽글이가 알아서 낳을 거예요. 그냥 잘 먹여 주시고, 어둡게 산실을 미리 꾸며 주세요. 애기 낳을 때 태반이 나오는데 그건 많이 먹으면 설사할 수 있으니 다 먹지만 않게 해 주세요."




이 날 예정되어 있던 3차 접종은 임신 상태임을 이유로 무기한 보류되었고, 나는 그대로 어버버거리며 몽글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로 뒤늦은, 아니 많이 늦은 몽글이 산전케어 과정이 시작되었다. 몽글이는 날이 갈수록 산실 용도로 놔둔 어두운 캔넬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부쩍 늘어갔고, 배 크기도 점점 불어났다. 생식기와 젖꼭지를 핥는 행동이 잦아지기도 했다. 사료를 '모견용'으로 바꾸고, 북어와 계란, 닭가슴살이 보양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짠기를 뺀 북어를 물에 끓이고 대충 계란과 닭가슴살을 투하한 북어국을 만들어 주었다. 몽글이는 이 보양식을 상당히 좋아했다.




'강아지 임신' '강아지 출산'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또 벼락치기 준비를 했다. 알아서 잘 출산하는 강아지도 있지만 모견이 만약 양막을 찢지 못하고 있다면 손으로 찢고 인공호흡을 해준다든가, 새끼가 나오다가 중간에 걸려 있으면 손으로 빼 줘야 한다든가, 탯줄은 배꼽에서 몇 센티 윗부분을 묶어 가위로 잘라주고, 몸을 닦고 어미젖을 물 수 있게 놓아준다든가, 새끼들이 똑같이 생겨서 구분이 어려울 수 있으니 미리 색깔별로 털실을 준비해서 목에 감아 준다는 등 알아둬야 할 것들이 많았다. (비록 실전에서는 거의 다 써먹지 못했지만.)




유튜브에서 강아지 출산장면 같은 걸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몽글이를 닮은 4마리 새끼들이 태어나면 얼마나 귀여울까 기대도 되었지만, 한편으론 새끼들을 추후에 어떻게 하여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내가 새끼들까지 모두 건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미젖을 먹어야 하는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어디든 입양을 보내야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몽글이가 들어갔었던 보호소 소장님은 몽글이가 임신 중이었다는 걸 알았을까? 알았을 수도 있고 몰랐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반반인 것 같다. 보호소에 들어간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을 경우 이에 대한 관리 매뉴얼이 보호소에 마련되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소장님께 이 부분들에 대해 다시 연락해 묻지는 않았다.








임신을 확인하고 일주일 후, 아침 출근을 하기 전에 언제나처럼 산책을 시키려고 줄을 맸는데 몽글이가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표정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다소 어두운 표정이었고, 아침식사로 준 사료도 입에 대지 않으려 했다.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강아지가 아침밥과 산책을 거부한다면 그날이 출산일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오늘이 그날인가 싶어, 홈 카메라를 캔넬 앞에 붙여두고 출근을 했다. 일하면서 틈틈이 홈 카메라를 보았는데 몽글이는 하루 종일 캔넬 안에 엎드려 있었다.




이 날 나는 일도 해야 했고 본래 예정되어 있던 회사 회식도 참석해야 했다. 업무가 끝날 때까지도 몽글이는 특별한 기척이 없었다. 일단 회식을 참석해서 몰래몰래 핸드폰으로 홈캠을 들여다보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화면 속에서 몽글이가 일어나 이리저리 움직이며 빙글빙글 돌더니 엉덩이에서 주먹만 한 검은색 덩어리가 쑥 나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같이 회식을 하던 사람들에게 '강아지가 출산을 하고 있어서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생전 들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들어볼 일 없을 회식 조퇴사유를 접한 사람들의 당황스러움 섞인 배웅을 뒤로하고 횟집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집에 뛰어들어가 보니 꼬물이가 양막에 싸인 채로 캔넬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몽글이는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다급하게 손으로 양막을 찢고 인터넷에서 본 대로 입으로 양수를 빨아주었는데도 꼬물이는 숨을 쉬지 않았다. 키친타월로 몸을 닦고 인공호흡을 해주면서 몸을 계속 문질러줬다. 한참 뒤 꼬물이가 '하'하고 외마디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꼬물이를 캔넬 바닥으로 돌려놓았다.




한 시간쯤 후 몽글이는 두 번째 아기를 출산하고 있었는데, 양막에 싸인 채 한 번에 뭉텅 하고 나왔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시간을 오래 끌고 있었다. 양막은 이미 찢겨 양수가 흘러나왔고 하반신으로 보이는 부분만이 밖으로 나온 채 중간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땐 손으로 아기를 살살 돌려서 빼 주어야 한댔는데. 배운 대로 해 보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뻗자 이미 첫째를 출산하면서 극도로 예민해진 몽글이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고 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결국 손을 대지 못했다. 몽글이는 그 상태로 주저앉아 한참을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있었고, 둘째 아기가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뒤늦게 아기를 집어들고 첫째 때처럼 인공호흡과 마사지를 해줬지만, 오래도록 몸을 문질러 주었음에도 호흡은 시작되지 않았고 아기는 차갑게 식어갔다.




슬퍼할 틈도 없이 몽글이는 이어서 셋째를 출산했다. 이번에는 검은 뭉텅이가 아니라 갈색 뭉텅이였다. 중간에 걸리는 것 없이 순식간에 쑥 하고 나온 것이 보였다. 몽글이는 이제 방법을 좀 알겠다는 듯 갈색 뭉텅이를 연신 핥아 양막과 태반을 먹어 치우고 아기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셋째 아기는 무탈하게 호흡과 꼬물거림을 시작했다. 곧이어 마지막 넷째 아기(검은 뭉텅이)가 나왔다. 셋째와 마찬가지로 한 번에 무사히 나왔고, 몽글이가 스스로 케어를 했다.




이 놈의 지지배 출산 생전 처음이었다에 내가 500원 건다.




출산은 장장 4~5시간이 걸려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났고, 살아남은 세 아기들은 꼬물거리며 몽글이의 젖을 찾아 물었다.


출산이 끝나고 나서도 주변을 치워준다든가 아가들의 탯줄을 잘라준다든가 목에 실을 감아준다든가 하는, 안 하면 왠지 큰일 날 것 같은 지침들이 수두룩했지만, 이런 것들은 전부 아기와 모견을 만질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들이었다. 여전히 손을 조금만 뻗어도 죽일 듯이 으르렁거렸던 몽글이 덕분에 후속 조치를 더 해줄 순 없었지만, 아기들은 건강했고, 목에 실을 감아주지 않아도 외형적으로 얼추 구별이 가능했으며, 탯줄은 알아서 잘 떨어진 듯 보였다.








몽글이의 산후 으르렁은 그 후로도 열흘 가량은 지속되었지만, 예민해진 기분과는 별개로 제 새끼들은 온 힘을 다해 돌보는 모습이었다. 출산 시까지도 저체중이었던 몽글이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으로 낮이고 밤이고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배와 생식기를 핥아 대소변을 처리해 주는 등 육아에 전념했다. 갓 태어난 아가들은 강아지 같기보단 길쭉한 것이 뭔가 호박고구마 같은 형상이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잠을 잤고, 가끔씩 깨어나 꼬물거리며 젖을 먹었다. 팔다리도 잘 구별되지 않는 고구마 같은 녀석들이 튀어나온 고구마싹 같은 팔로 어미젖을 꾹꾹 누르며 온 힘을 다해 젖을 빠는 모습은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이 기간 동안은 몽글이를 산책시킬 수 없었다. 몽글이가 그럴 생각이 1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배변은 어떻게 하였냐고? 몽글이는 캔넬 주변에 잔뜩 깔아 둔 배변 패드를 가볍게 무시하고, 복층집이었던 우리 집 복층 계단을 올라가 그곳에 있던 내 침구 위에 대소변을 해결했다. 아기 키우는 공간 주변은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참내. 나보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출산 후 일주일이 지나고부터는 조금씩 산책을 하기 시작해서 실외에서 배변을 해결하고 왔다. 몽글이는 지쳐 보였지만 산책시간은 즐거워했다. 냄새를 맡으며 정신없이 산책을 하다가 집에 가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발걸음이 조급해져 집 앞까지 질주해서 달려가고, 집에 들어가 발을 닦이고 나면 후다닥 아이들이 있는 캔넬로 들어가 젖을 물리곤 했다.




아기들은 나날이 몸무게가 늘고 강아지의 형상 비스무레한 것을 갖추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심해지면서 눈도 못 뜬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캔넬 밖으로 탈출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몽글이는 아기들을 도로 들여놓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낑낑거리기만 했고, 내가 대신 탈출한 아기를 주워서 캔넬 안으로 넣어 주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어떨 땐 베테랑 모견 같다가도 이럴 때는 영락없는 초보엄마 같았다. 내가 집을 비웠을 때 아기들이 캔넬을 탈출할까 봐 캔넬 문 앞을 이것저것 동원해서 막아보기도 했지만 자유를 꿈꾸는 아가들은 매번 이를 뚫고 탈출을 감행했고, 한동안 몽글이와 나의 추노질은 계속되었다.




아기들은 3주째부터는 눈을 떴고,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슬슬 다시 입양의 고민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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